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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007년 3월.

내 방 책상위에 놓여진 달력 속 3월은 하루하루 엄마 몸에서 나오는 담즙의 양으로 채워지고 있다.

위장에서 시작된 암은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고,

간을 침범해 담관을 막아 엄마를 노랗게 만들었다.

병원에서는 엄마의 배를 뚫어 관을 넣고 주머니를 달았고, 나에게 담즙이 얼마나 나오는지 매일 기록하라고 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3월이었고,

달력을 보니 내가 매일매일 적어놓은 엄마의 담즙양만 빼곡하다.

 

길었던 지난 겨울을

우리는 전주 모악산 골짜기에서 보냈다.

말기암 환자들이 모여드는 한방병원의 단칸방에서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산을 오르내리고, 쑥뜸으로 몸을 지지고, 쓰디쓴 한약을 먹었지만

이른 새벽의 공기를 가르며 질러대던 '할 수 있다'의 공허한 외침만 남겨 놓고 그곳을 나왔다.

 

눈이 많이 오던 날 아침이었다.

황달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엄마를 차에 태우고

몇달만에 잔뜩 늘어난 짐을 가득 싣고

꽁꽁 얼어붙은 눈길을 조심스래 내려오고 있었다.

맞은편에서는 '병원가서 치료하세요'라고 간단한 한마디로 지난 몇달의 결과를 이야기 해주던,

한방병원 원장의 차가 오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얘기했지만

원장도 엄마도 아빠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치료는 더이상 없다는 걸.

 

그 겨울의 어느 날

우리는 '도전 골든벨'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아는 문제가 나올 때 마다 소리내어 맞추고 있었다.

"다음 문제 입니다...현재 한국인 사망1위의 질병으로 그 원인은 식습관, 흡연, 스트레스..."

순간 엄마도, 옆에 있던 나와 아빠도 침묵했다.

텔레비젼 화면 속에는 아이들이 화이트보드에 쓴 정답 '암'이 클로즈업 되어 흔들리며 우리를 위협했다.

참 싸늘했던 우리의 침묵.

 

한방병원을 나와 양방 진료를 받던 날,

몇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 단 몇 분 만날 수 있는 병원의 담당의사

우리에게 더이상 할 말도 없을 그 사람과의 형식적인 정기진료 끝에 엄마는,

고맙습니다

라며 여윈 손을 내밀어 그를 잡았다.

개면쩍어 하던 의사의 표정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진통제와 소화제 처방을 받기위해 만난 담당의사의 환한 웃음이 밉다.

이제는 엄마에게도 알려야 할 것 같아

의사가 준 위장약은 항암약이 아니라 소화제라고 아빠는 이야기 했지만

엄마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병원 대기석 의자에 마른 꽃잎처럼 앉아있는 엄마가 보였다.

알고 싶지도, 믿으려 하지도 않는 엄마의 정신적인 혼란을 자꾸만 정리하려 드는 우리는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탕에서 나오며 엄마는 이야기 한다.

내 몸을 보면 너무 불쌍해.

파푸아 뉴기니 사람이 되었잖아?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엄마는 이야기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옛날에는 탄 음식도, 상한 음식도 잘만 먹었는데.

 

집 앞 산에 다녀온 엄마는 이야기 한다.

소나무 숲에 누워있으면

새들이 내 머리위로 날아와.

시원한 바람이 불어.

하늘 위로 비행기도 지나가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 기도를 하다 엄마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소리없이 운다.

예수님이 날 사랑해서 데리고 가려고 해도

지금은 안된다고 했어.

아빠도 언니도 있지만,

아직은 너한테 엄마가 있어야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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