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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3요소...

내 인터넷 생활의 시작은 토론방에서부터였다. 이러저러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과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때로는 다퉈가는 토론이라는 것에 맛을 들이면서 인터넷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하이텔 토론방은 물론 야후, 네이버, 네이트, 나중에는 서프라이즈와 스탠딩, 폴리티즌까지. 포털은 물론 정치사이트까지 넘나들며 거진 10년간의 인터넷 공력을 쌓아왔다. 말 그대로 인터넷 토론공력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물론 그런 토론 따위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토론을 하면 할 수록 느끼게 되는 것이 온라인에서의 토론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효용성이 있느냐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거의 대부분 아무런 결론 없이 서로 감정만 상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첨여한 주제일 수록, 토론에 참가한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토론이 치열하게 이루어졌을수록 항상 결론 없이 사람만 다치고 끝나곤 했었다.

지금 토론방에서 노는 것은 취미생활 이상의 의미는 없다. 누군가를 바꾸겠다는 생각도 없고, 뭔가를 바로잡아보겠다는 의욕도 없다. 오로지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하고,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어 들려준다는 그 이상의 생각은 없다. 그래서 괜히 심각해지고, 괜히 치열해지는 토론방은 알아서 피한다. 피곤하니까. 어차피 그런 토론방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줄 여유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들려줄 여유도 없을테니까. 대충 살펴보고 아니라 생각하면 술렁술렁 피해 나오고 만다.

어쨌든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거의 토론방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나름대로 토론이라는 것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토론. 토론을 어떻게 하면 이기고, 어떻게 하면 감정 상하지 않고 도망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다. 토론의 3요소라 하는 것은 그 가운데 토론을 즐겁게 하면서, 또한 토론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일컫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시간

토론방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그 누구도 시간 많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겨우 시간 내서 글 하나 올려놨더니 그 다음날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열 개의 글이 올라와보라. 토론할 기분이 나나. "가"라고 하는 주제 하나를 떠들어놨더니 그에 파생되는 "나""다""라""마""바"까지 끄집어내서 시비를 걸어 보라. 한정된 시간 안에 그 모든 것을 상대하려면 말 그대로 머리 뽀개진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먼저 손 털고 일어나는 쪽이 토론에서 졌다고 판단한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먼저 손 털고 일어나서 사라지는 쪽이 일단 논리에서 밀렸다라고 대부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졌다는 소리 듣기 싫어 토론방에서 죽치고 앉아 버티게 된다. 이때 가장 오래, 가장 늦게까지 토론방에 남아 버틸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사실상 최종승자인 것이다. 결국 승부의 관건은 시간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토론이 즐겁다. 할 말도 마음껏 할 수 있고, 토론방이 닫히는 것이 먼저인가, 내가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먼저인가를 기쁜 마음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감정싸움이 시작되면 상대가 마지막으로 한 욕이나 인신공격에 마지막 방점을 찍듯 최대한의 욕설과 최대한의 인신공격으로 돌려줄 수도 있다. 소위 폐인이라 불리우는 자들이 인터넷 토론방의 절대지존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2. 신뢰

신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또 하나는 타자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또한 가장 절대적인 요소들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 자기 주장을 당당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 그에게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많이 아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당당할 수도, 솔직할 수도 없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보다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물론 당연히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경우에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 따위 굳이 필요치 않다. 어차피 온라인. 기껏해야 텍스트로 욕설이나 주고받는 정도다. 직접 만나 치고 받고 싸울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은 잠시 무시해도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공격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런 것이다. 어느 종교의 경우 외부에서 비판을 하면 "신이 주신 시련"이라고 간단히 일축해버린다. "사특한 존재들이 신을 따르고 믿는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기까지 한다. 자기 자신의 옳음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토론방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비판마저도 "어리석음의 소치"로 여기게 된다. "어리석고 무식해서 저런 소리를 하고 있다"쯤으로 아구 간단히 정리하고 인식하게 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절대 옳다. 나는 절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어리석은, 그리고 무식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들의 비판 따위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다. 어차피 나보다 못난 틀린 비판들이기 때문이다.

대개 토론을 잘한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보면 표가 난다. 다른 사람을 먼저 무시하고 시작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을 철저히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고, 그 사람의 인격과 자격까지 검증해낸다. 그리고 토론 내내 그것을 적용시킨다. 무식한 놈. 어리석은 놈. 생각이 잘못 박힌 놈이라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열받는다. 비웃고 조롱하며 무시하기까지 하는 데에야 견딜 재간이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확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3. 열정

토론은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감으로 한다. 이것이 옳다는. 이것이 절대 옳다는. 반드시 이 옳은 것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그러한 서로 다른 정의감이 충돌하는 것이 바로 토론이다. 당연히 토론에서 이기는 것도 그러한 정의감이 강한 쪽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절대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

사실 나만 하더라도 토론 도중 논리에서 밀리는 것을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논거에서 딸리는 것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논리에서 밀리는 것은 내가 머리가 나빠서일 것이고, 논거가 딸리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적어서일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단지 내 머리가 나쁘고, 아는 것이 없을 뿐인 것이다. 당연히 논리에서 밀려도, 논거가 딸려도 어지간해서는 결코 승복하는 법이 없다. 토론 도중 책을 찾아 공부해가면서 토론에 임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시간과 감정, 노력의 한계로 손 털고 일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버틴다.

실제 토론방에서 강한 사람들을 보면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 종교 등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특히 종교에 관련된 토론에서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아무리 논리를 들이대고, 아무리 근거를 들이대더라도, 상대의 승복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스스로 먼저 지쳐 일어나고 말 뿐이다.

박정희 추종자들과의 토론이나, 노무현 지지자들과의 토론 또한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김대중 지지자들과의 토론이 그랬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단단한 성벽에 대고 머리를 박아대는 듯한 절망감. 무한루프다. 끝내는. 같은 말 반복하고, 같은 논리 반복하고, 결국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다 지쳐 쓰러지고 만다. 버티는 사람은 그와 비슷한 수준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인지 요즘 토론방에 가보면 박정희 추종자와 노무현 지지자만이 남아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무섭도 종교조차도 그들 앞에서는 한 물 갔다고나 할까? 새로운 토론방의 주류라 하겠다.


생각해보면 20대 중후반, 한창 토론방에 빠져 있을 때, 나 또한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토론에서는 밀려본 적이 없다. 설사 아흔 아홉 명이 전부 반대편에 있고, 나 혼자 그들을 상대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 할 지라도 결코 주눅드는 법이 없었다. 시간도 넉넉했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반드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정의감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때는 토론방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그 살벌함과 그 냉엄함이 짜릿할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시간의 무서움을 알게 되면서, 나 자신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게 되면서, 무엇보다 옳다는 것이 무언지 그르다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토론방이라는 곳이 전처럼 즐겁지 않게 되었다. 피곤하다고나 할까? 질렸다고나 할까? 그보다는 무섭다는 말이 더 옳을 듯하다. 무섭다. 토론이라는 것이 이제는 조금은 무섭다. 왜 해야 하는 지,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 지 모르기에 더욱 무섭다.

그래서 지금은 토론방에 가더라도 토론을 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글만 올리고 나온다. 읽든 말든, 받아들이든 말든,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린 채, 나의 역할을 글 하나 올리는 데에 한정지어버린다. 때로 그 이상을 요구하거나, 그 이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그조차도 포기해버린다. 글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피곤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워서. 취미생활로 즐기고자 취미생활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은 할 수 없기에 그리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직도 나름대로는 토론방이 재미있다. 글 하나 올리고 슬쩍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내 글과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다. 때로는 동의해주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욕설을 퍼붓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꽤 열받았을 상황도 이제는 왠지 재미있는 단막극을 보는 듯 흥미롭고 재미있다.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방관자로서의 재미랄까? 덕분에 지금도 토론방에서 잘 놀고 있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가 아리라 구경하기 위해서. 철저히 구경꾼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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