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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네쿡은 맑스주의자로 노동운동을 시작하여, 맑스주의자로 죽었다

 

옮긴이의 말 


"판네쿡은 맑스주의자로 노동운동을 시작하여, 맑스주의자로 죽었다“

(Anton Pannekoek, Paul Mattick 1960).


노동운동에서 격동의 시기인 1873년 네덜란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판네쿡은 생애 동안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성장하여, 사회개혁운동으로 전환, 최후로 독립된 계급운동을 포기하고 자본가의 도구로 전락하는 노동운동의 변화과정을 이론가로뿐만 아니라 실천가로서 목격하며, 최후까지 계급 없는 사회의 출현을 갈망하는 이론적 작업을 계속한다. 


판네쿡의 기본사상은 “물질적 생필품의 생산이 사회의 주요구조를 형성하며, 정치관계와 사회투쟁을 결정한다는” 맑스의 의견과 일치한다. 판네쿡은 계급투쟁이 결정적인 사회변화를 이끌며, 사회적 생산 수준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평의회공산주의 사상을 집대성한 저서가 『노동자평의회』이다.


『노동자평의회』에서 판네쿡은 자본가계급의 핵심적 지배도구인 의회를 통한 개혁을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거부하며,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국가자본주의로 파악하여,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자 하였다. 판네쿡의 새로운 방향의 주요점은 노동조합, 당, 국가처럼 노동대중 위에 군림하는 조직과 조직의 지도부에 의하여 계획되고 구상되어 노동대중에 의해 실천되는 실천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대중조직으로 평의회 조직이다. 이는 노동조합, 당, 국가 조직을 규정하던 근본적인 원칙의 부정이다. 즉, 신비화된 당과 국가, 그리고 신비화된 실체로서의 지도자에 대한 부정이다. 이는 조직내부의 직접민주주의이며, 직접민주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다양한 종류의 평의회적 공동체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는 의식적이고, 자주적이며, 자발적인 행동양식을 가진 대중들에 의해 건설되고, 유지되며, 발전할 수 있다. 판네쿡은 이러한 유기적 능력을 가진 노동대중은 자발적 실천인 지도부의 승인 없이 발생하는 직접행동과 현장점거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새롭게 탄생한 유기적 능력을 가진 노동대중에 의해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공동체에서 노동의 성격은 변화하게 된다. 증가된 생산력과 급속한 기술진보에 기반하는 노동은 생존수단에서 자기표현으로 변형되며, 작업의 전 과정에 대한 지식은 의기충전, 정신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별을 완화하여, 종국에는 폐지할 것이다.  


판네쿡의 이론은 완성된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판네쿡의 기계론적 유물론과 과학은 절대성을 부정하기에 당연하다. 판네쿡은 인간이 해방된 새로운 사회는 지난한 변증법적 과정이며, 노동대중들의 실행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판네쿡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언론의 자유를 통한 의식과 자아활동의 발전을 중요시한다.


판네쿡의 반신비주의, 반권위주의 사상, 민족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노동자 대항 의식에 대한 강조는 그람시의 대항 헤게모니 사상에 기초를 제공하였다.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판네쿡의 평의회공산주의 이론은 1968년 이후의 신좌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노동자평의회』에서 판네쿡은 “생산주의적 맑스주의”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판네쿡은 공장 중심의 노동자평의회 조직이 전체 사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판네쿡이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작업 현장으로부터 전체 사회로 뻗어나가는 민주변혁이었다.  



판네쿡은 『노동자평의회』를 2차 대전 독일 점령기인 1942년에 쓰기 시작하여, 1947년에 완성한다. 1장부터 3장은 1942년, 4장은 1944년, 마지막 5장은 전쟁 후에 추가된다. 나치에 의해 대학에서 해고된 판네쿡은 학습한 이론과 실천에서 얻은 경험을 하나의 완성된 체계로 서술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영어판과 내용이 조금 다른 네덜란드어판은 1946년 출간된다. 영어판은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출간되는데, 미국에서는 출판사를 찾지 못하였으며, 영국에서는 사상적인 견해 차이 때문에 거부당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폴 매틱이 호주의 좌파 공산주의에 속하는 도슨(J.A. Dawson)과 연결시켜주어 1950년 호주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노동자평의회』 1장은 노동대중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2-4장은 노동대중이 투쟁하는 조건을 결정하고 있는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경향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장은 앞으로 노동대중이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투쟁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이 한국의 현재 상황에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노동조합과 당으로 조직된 노동대중의 미래에 대하여,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진정한 해방을 위한 새로운 노동대중 조직의 형상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2005년 10월 9일

                                                   황 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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