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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비판」을 내며
이 글은 <국제혁명당서기국(International Bureau for Revolutionary Party)>의 한축인 <공산주의노동자조직(Communist Workers Organization)>이 2000년에 쓴 팸플릿「트로츠키와 트로츠키즘 (Trotsky and Trotskyism)」을 번역한 것이다. 이탈리아 좌익 공산주의에 역사적 뿌리를 둔 <공산주의노동자조직>의 혁명사상과 정치적 입장에서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를 비판적으로 평가한 글이기 때문에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공산주의의 다른 한 축인 <국제공산주의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도 큰 틀에서 <공산주의노동자조직>과 동일하다.
1920년대 초 유럽 혁명의 실패 이후 코민테른의 퇴행과 더불어 반혁명적 물결이 스탈린주의로, 파시즘으로 가시화 되면서 이에 맞서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은 지속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 속에 트로츠키와 그 추종세력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전개한 세력은 이태리로부터 전 유럽에 망명한 좌익공산주의 세력이었다. 좌익공산주의의 역사는 <국제공산주의흐름>이 출간한 「이태리 공산주의 좌파(1926-1945) : 혁명 운동사에의 공헌」에 자세히 실려 있다. 편집부는 이 책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구체적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복원하고 널리 알리는 작업은 역사학도의 책무일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고 또 실천할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혁명가의 저작을 편의적으로 암송하거나 인용하여 교조로 수용하거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 없이 절대적 언명으로 전략·전술을 이해하는 운동(연구 및 실천)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관행을 반성하자는 뜻이다.
둘째, 특히 우리 사회의 혁명운동의 역사와 실천이 일천할 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아(그것이 주체사상이건 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한 스탈린주의이건 간에)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폭넓은 역사적 성찰을 가로막고 스탈린주의의 옹호가 마치 반혁명 운동에 대한 투쟁의 푯대인 것처럼 착각하는 풍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는 본격적 논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트로츠키나 트로츠키주의도 스탈린주의의 반대 항으로만 이해되거나 몇 권의 저작, 보기를 들어 「영구혁명」「배반당한 혁명」「이행기 강령」에 대한 학습과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스탈린주의를 극복하는 전략·전술이라는 경직된 태도를 형성시켰다. 물론 우리는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가 지니는 주체적 역사 서술 방법과 혁명과정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통을 우리 사회에 실천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세력들이 여러 형태로 트로츠키의 영향을 받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시도함으로써 반혁명적 스탈린주의를 진정으로 넘어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국제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상과 조직을 정립하는 책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이를 위하여 세계혁명의 발전을 저지시켰던 반혁명운동의 흐름과 세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운동세력이 평가되어야 한다. 스탈린주의 극복의 시발점은 그 운동의 전선에 함께 섰던 모든 좌익 반대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진지 오래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트로츠키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일부 세력이외에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본격적 논쟁을 벌인 적이 없다. 이 책의 출간이 바로 이것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트로츠키와 이탈리아 좌익 공산주의 세력과의 연대와 갈등의 역사를 몇 가지 정리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1925년 3-4월 이탈리아 공산당은 3차대회에서 ‘보르디가적’인 경향을 제거하기 위해 트로츠키에 우호적인 보르디가의 글을 출판하는 것을 금지했다.
2) 1926년까지의 이탈리아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통일전선과 노동자 및 농민정부에 대한 거부
② 반파시즘 그리고 계급투쟁 영역에 근거하지 않은 정책의 거부
③ 일국사회주의 거부
④ 민주주의 방어 거부
3) 그 당시 비레닌주의와 트로츠키 반대의 입장을 지닌 러시아 좌익 공산주의 세력은 독일 좌익 공산주의의 테제를 방어했다.
① 의회 문제 : 전술문제 아닌 전략문제이지만 맑스주의와 공산주의의 반의회주의와 관계없는 생디칼리즘의 반의회주의와는 구분.
② 민족 문제 : 로자룩셈부르크 입장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해방의 승리자라는 레닌 입장 거부.
③ 노동조합 문제 : 혁명노조 거부, 노동조합내의 어떤 활동도 거부,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분적 투쟁의 참여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영구적 투쟁기관으로서의 노동조합 거부.
④ 당과 평의회 : 보르디가와 달리 로자 룩셈부르크의 입장을 받아들여 당 문제를 2차적으로 판단.
⑤ 러시아와 국가 :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러시아 혁명의 반혁명적 기원은 NEP(신경제정책)와 크론슈타트 진압이며 러시아는 국가자본주의와 관료주의로 카스트화 했음.
4) 1927년 7월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좌익분파 분리 (프랑스, 벨지움, 룩셈부르크, 스위스, 미국, 러시아와 연대)
일국사회주의를 선언한 러시아 공산당 15차대회에서 트로츠키 축출.
5) 트로츠키와 연대했지만 보르디가 테제, 코민테른 2차 테제를 지지하고 러시아 반대파와 트로츠키가 방어한 코민테른 3차, 4차대회 테제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이탈리아 분파가 아니라 “코민테른의 좌익 분파”로 규정함. 이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① 코민테른 좌익 분파의 구성
② 임시 중앙위원회 구성
③ 격월간 「Prometeo」출간
④ 기회주의와 기회주의자에 대한 투쟁(공산주의선언, 코민테른 1, 2차 대회의 테제, 로마 테제, 이탈리아 공산당의 전국대회 테제, 5차대회에 보르디가가 제출한 테제, 코민테른 프랑스 지부의 릴리대회에 좌파가 제출한 테제, 보르디가의 모든 저작)
⑤ 당면목적 (코민테른에서 축출된 동지의 재통합, 트로츠키 의장 아래 6차대회 개최 촉구
6) 1929년 2월 추방당한 트로츠키 중심으로 국제 좌익 반대파 결집
① 트로츠키와의 서신교환과 터키방문
② 아르헨티나, 쿠바, 칠레의 좌익은 트로츠키를 대표로 제안
③ 1932년까지 폴란드에서 스페인까지 “볼세비키-레닌주의자”로 스스로를 부르는 소그룹이 존재
④ 그러나 이들 세력은 이질성이 큼 (소련의 외교정책 등)
7) 이탈리아 좌익은 국제 반대파에 동의하지만 트로츠키와의 견해 차이를 숨기지 않았는데 1929년 「Prometeo」20호에 트로츠키에게 공개서한을 보냄. 9월 25일 트로츠키는 답장을 보내고 이탈리아 좌파가 프랑스에서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대표라고 인식하고 1928년의 “좌파의 강령”을 칭송함.
8) 1930년 4월 파리에서 열린 국제 좌익반대파 대회에 Prometeo가 불참하자 트로츠키는 이탈리아 좌파에게 “민족적-공산주의자”인가 “국제주의적 경향”인가를 묻는 질의서를 보냄.
9) 1930년 6월 3일 답장에서 “① 우리는 우리를 국제 노동 운동의 일부로 생각한다. ② 코민테른 창설 이후 우리는 좌파경향에 속해 왔다. ③ 우리 경향의 국제 분파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조직이 한 그룹주위에 상이한 국가로부터 온 인사나 집단의 인위적 결합체가 아니라고 맑스주의로부터 배웠다”라고 반박함.
10) 1930년 6월 19일 트로츠키의 세 번째 편지에서 둘 사이의 간극이 더 벌어짐. 정치적 강령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좌파와 달리 트로츠키는 국제 조직 창설보다 그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봄.
11) 1932년 트로츠키는 이탈리아 좌파와의 관계유지를 거절함.
12) 1933년 2월 트로츠키는 “보르디가주의자는 좌익 반대파의 유기적 부분인 적이 없다” “Prometo집단은 국제 좌익반대파에 속한 적이 없다” “볼세비키-레닌주의의 유일한 지부는 신이탈리아 반대파 (New Italian Opposition)이다”라고 하고 ‘보르디가주의’와 선을 그었음.
13) 이들의 근본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① 스페인 문제와 민주적 슬로건
트로츠키가 「스페인 혁명과 공산주의자의 임무」에 “공화국 슬로건은 자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슬로건”이라고 한 것에 대해 이탈리아 좌파는 “트로츠키가 코민테른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체제를 포기했다고 비판하고 제국주의 시대에는 전쟁 아니면 혁명이라는 하나의 구호 밖에 없다”고 주장함.
② 독일 문제와 통일전선
1931년 트로츠키가 독일공산당과 독일사민당의 통일전선을 주장한 것에 대해 이탈리아 좌파는“중도주의 혁명”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비판함.
③ 분파와 당 문제
1931-32년에 러시아 국가에 모든 공산당들이 복속한 것에 대해 이탈리아 좌파는 모든 나라의 좌익 분파의 실질적 발전이 당이며 혁명적 상황에서만 존재할 인터내셔널의 인위적 구성이 당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함.
14) 1933년 이탈리아 좌파에게 제기된 근본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① 프롤레타리아트 국가로 아직도 규정되는 러시아 국가의 본질.
② 중일 전쟁을 시작으로 1931년 이후 제국주의간의 경쟁시기의 중요한 문제인 “민족해방 투쟁의 본질”
③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시기의 혁명당의 역할과 사회주의 이행기의 본질.
④ 1914년 이래 노동자 투쟁, 프롤레타리아트 경제조직의 형태, 노동조합에서 이탈리아 분파의 활동.
2006. 8월
빛나는전망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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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돌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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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트로츠키의 일대기와 사상에 대한 책(Biography, 독일어)을 구입했는데,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한국어가 출간되어 기쁩니다. 내용도 비교적 자세한 것 같고 흥미롭습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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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변혁하자는 운동에서 경험주의도 위험하지만 맹목적으로 지식주의에만 빠져있는 것은 운동에 대한 고민도 없이 오히려 운동을 퇴행시키고 역사발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