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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총서: 서구소비에트 근간 안내

 [빛나는전망이론총서] 2006년 초에 발간 예정.

 

 

서구소비에트

원제: The Western Soviets, Worker's Councils Versus Parliament

1915-1920

(by Donny Gluckstein)



책의 목차


서론


1장. 페트로그라드에서의 소비에트와 혁명(Soviets and revolution in Petrograd)

2장. 위기속의 서구 제국주의(Western imperialism in crisis)

3장. 글레스고우: 기반다지기(Glasgow:Lying the foundations)

4장. 실패의 교훈(The lesson of failure)

5장. 전쟁속의 독일(Germany in war)

6장. 독일제국의 몰락(The Kaiser falls)

7장. 1918년 11월 혁명의 화학식(The revolutionary chemistry of November 1918)

8장. 반혁명과 혁명(Reaction and revolution)

9장. 이태리: 공장평의회와 그 이상의 것(Italy: Councils and beyond)

10장. 재평가와 대립(Re-assessment and confrontation)

11장. 결론(Conclusion)



서 론 개요


-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다시금 위기 속으로 들어갔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맑스의 ‘경제위기와 필연적인 계급전쟁’에 대한 예측은 현실에 의해 부정되었으며 단지 전통적인 의회민주주의적 길만이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착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의회주의적 길의 지속적 실패, 사회복지제도의 의도적 축소 등은 현재 우리로 하여금 혁명적 변화의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많은 노동자들이 의회주의를 불신과 조소로 대하고 있지만 동구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유형 이외에는 ‘투표함’에 대한 대안을 탐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노동자 평의회’를 두 체제(의회주의-스탈린주의)에 대한, 현재도 유효한, 진정한 대안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몇몇의 사회사상가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노동자 농민은, 1918년 독일, 1956년 헝가리, 1972년 칠레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청사진에 의해 혁명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중의 이익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위기가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중 민주주의’를 창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평의회로 조직된 노동자 권력(러시아에서는 이를 ‘소비에트’라 칭함)은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가장 큰 실질적 도전이었다. 이제 노동자 평의회라는 권력체는 다소 현상적으로 쇠퇴하고 있지만 노동자 평의회의 전통은 이를 반대하는 자들(반혁명세력, 개량주의자, 스탈린주의자)로 인한 모호성으로부터 재발견되야 한다.


- 이책은 현재까지의 모든 평의회 활동을 나열하는 단순한 기념비적 서술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러시아 사례조사를 첫걸음으로 하여, 나는 서구의 의회주의와 대중화된 개량주의의 조건속에서 분투한 사회주의 활동가의 평의회 사례로 집중하고자 한다. 서구 평의회 활동의 3개의 중심지(영국, 독일, 이태리)를 자세히 연구하고자 한다.


-이책은 단순한 가치중립성을 가장하지 않고자 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자와 피착취자간의 근본적 모순과 대립을 초월한 역사서가 있을 수 없음을 확신한다. 이책은 출발부터 자본주의 혁명적 철폐의 필요성을 취하고자 한다. 이는 단지 노동자 자신의 활동과 조직을 통해 이루어질 뿐이다. 노동자 평의회는 이러한 과정을 이루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이 책이 오늘날의 노동운동과 혁명적 정당의 건설, 과거 투쟁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기여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도중과 이후 유럽은 제국주의의 위기와 볼쉐비키 혁명에 맞물려 혁명적 활동의 만개를 경험하였다. 러시아, 이태리, 영국, 독일사례간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일은 혁명과정의 일반적 교훈을 끌어낼 수 있기때문이 유용한 작업이다. 단순한 국가수준의 연구는 그 나라의 특수성에 의해서만 윤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기간의 영국사례의 연구들은 노조문제와 정치로부터의 수동적 도피로 결정되어 졌다. 대조적으로 독일의 사례의 연구들을 보면 맹목적인 정치 중심주의와 작업장 수준에서의 변화의 무관심으로 특징지워진다. 명백히 이러한 일국수준에 기반한 제한된 연구관점은 본 글의 이후에서 좀 더 명확해 질것이지만 여기서의 연구목적은 일국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국경을 넘은 전 세계적 계급투쟁의 일부였는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국제적 비교연구는 특히 1905-1920년 기간에 명확히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이 전유럽 노동자 게급 투쟁간의 차이의 많은 부분을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노동자 평의회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합법적인 정치영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람시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공장과 그 안에 있는 노동자 의식의 혼란-이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자신의 관철에 종속됨-속에서 그 배면(본질)을 보아야 한다. 이곳의 사회적 관계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이며, 이곳에서는 노동자와 관련하여 자유와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 여기에 역사연구자에 있어 필연적인 문제가 봉착된다. 지배계급은 국가관료, 문서정리자, 출판업자 등 일군의 이데올로기 기제의 군대를 가져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논의 및 결정사항을 정리하고 유포시킨다. 반면 억압된 계급조직으로서의 노동자 평의회는 그들의 의사결정을 문서로 정리한 ‘의사진행록’이 거의 없다. 유급 문서정리자의 부족과 역동하는 계급 투쟁과정에 있는 관계로 인해 현장노동활동가는 자신의 사상을 문서로 표현하여 남길 수 없었다. 평의회와 현장노동활동가조직은 당조직과 같이 여유를 두고 의사결정을 기록할 정식단위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노동자 평의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보 즉 현장노동자와 평의회 간부가 만나 토론한 장소, 그러한 만남의 정규성 정도, 참석률과 대표성의 정도등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때때로 이러한 정밀하고 세부적인 정보 부족은 우리로 하여금 평의회를 실체가 없는 조직으로 오인하겠끔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문서의 부족은 노동자의 자주활동의 증거로 인해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다. 결국 노동자 평의회는 실천을 위해 기획된 조직이었던 것이다.    


- 개별공장과 산업의 현장노동자가 수행한 각각의 투쟁과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글레스고우, 베를린, 튜린에 대한 연구로 그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투쟁에 대한 전체적 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들 지역을 러시아 페트로그라드로부터 시작된 좀 더 큰 운동의 ‘한 흐름’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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