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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본주의를 둘러싼 논쟁

 빛나는전망 실천총서1. [세계혁명- 당, 평의회 노동조합] 중에서

 

                                 국가자본주의를 둘러싼 논쟁


  러시아 혁명 이후의 소련체제를 두고 가장 먼저 그 체제 성격에 논쟁을 벌인 세력은 유럽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국가사회주의라는 개념을 초기에 사용하다가 코민테른 2차 대회 이후, 그리고 레닌에 의한 신경제정책이 추구되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노동자평의회체제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였고 그 이후 스탈린체제가 들어서면서 반혁명세력으로 비판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레닌은 유럽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소비에트 공화국은 볼셰비키의 우 편향 하에서 “국가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지적을 놀랍게 받아들이면서 국가자본주의가 일보 전진이라는 것, 6개월 내에 그것이 확립된다면 성공이며, 1년 이내에 사회주의가 영구적인 굳건한 보루를 획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국가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이어서 그는 좌익공산주의자들의 경제학적 오류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1)

 

  첫째,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와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어떠한 종류의 이행인가를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둘째, 소부르주아적 요소가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적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소부르주아적 심리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셋째, ‘국가자본주의’라는 도깨비를 만들어 내면서, 그들은 소비에트 국가가 경제적 기초에서 부르주아 국가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레닌은 국가자본주의가 소비에트 경제체제보다 우월하다는 것, 노동자와 무산대중의 권력이 보장되는 소비에트권력에게 국가자본주의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독일의 국가자본주의를 연구하고 모방하여 그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독재적 방법을 채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몇 구절을 더 인용하기로 한다.

  

“사회주의는 최소의 현대 과학의 발전에 기반을 둔 대규모 자본주의적 기술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의 지배자가 아니라면 사회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1918년 국제제국주의라는 하나의 알 껍질 속에, 아직 부화되지 않은 두 마리 미래 병아리들처럼 나란히 존재하고 있는 일관되지 못한 사회주의의 반쪽들을 낳았다. 1918년 독일과 러시아는 한 편으로 사회주의를 위한 경제적, 생산력적, 사회경제적 조건의,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조건의 물질적 현실화를 가장 두드러지게 갖추게 되었다.”2)

“현재 러시아에서는 소부르주아적 자본주의가 만연하고 있는데, 그것을 대규모 국가자본주의로 혹은 사회주의로 이끄는 것은 양자 모두 동일한 과정이며, 또한 이 과정은 생산과 분배에서의 국가적 계획과 통제라는 완전히 동일한 중간 역을 거친다.”3)


  우리는 레닌의 글 속에서 이미 정치혁명에 성공한 러시아가 국가를 통한 계획과 통제로 후진적 자본주의를 국가자본주의체제로 재편하여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단계론적 사고와 경제적 토대에 조응하지 않는 정치권력의 선도성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결국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상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국가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등치시킨 것은 국가에 공통점이 있을 뿐 경제적 토대의 강제적 변화와 혁명건설과 완성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를 국가라는 장치에 예속시킬 수밖에 없는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 물론 맑스의 견해대로 완전하게 발전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혁명의 전제 조건이라면 부르주아혁명과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두 단계를 한꺼번에 뛰어 넘는 것은 후진 자본주의 러시아에서 가능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닌 농민에 기반을 둔 혁명은 전통 부르주아지를 분쇄하지만 사회관계로서의 자본을 분쇄하지 못한다.


 폴 마틱(Paul Mattick)은 국가자본주의를 자본의 집중, 독점, 소유와 직접 통제가 분리된 기업의 부상, 재정, 금융 조작 등의 혼합 경제 속에 국가와 자본이 내키지 않은 통합을 한 체제로 보면서 자본주의적으로는 저 발전된 국가에서의 반봉건적 사회관계 아래에서는 착취와 억압이 영속화 된다고 보았으며 러시아와 중국 혁명을 국가자본주의 혁명으로, 맑스주의는 수정된 자본주의체제를 정당화시키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4) 물론 마틱은 레닌 이후 50년간의 소련체제에 대한 검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1918년, 1920년에 이루어진 논쟁의 틀 속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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