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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유럽 좌익공산주의자의 논쟁- 당, 평의회, 노동조합

 

 

당, 평의회, 노동조합에 대한 레닌과 유럽 좌익공산주의자의 논쟁

 

  러시아와 독일에서의 혁명 과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당, 평의회, 노동조합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우선 유럽 좌익공산주의 운동의 입장을 밝힌 판네쿡의 「세계혁명과 공산주의자 전술」(1920.3.)과 좌익공산주의 운동을 비판한 레닌의 「좌익공산주의 : 유아적 무질서」의 총체적 비교를 개괄적으로 하고 쟁점이 되는 의회주의, 노동조합주의, 당관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로 한다.

  

우선 판네쿡의 「세계혁명과 공산주의자 전술」에 나타난 그의 입장을 기술하기로 한다.1)


대중이 지적으로 공산주의를 이해하기 전, 세계전쟁과 급속한 경제 몰락은 혁명을 객관적으로 필요하게 만든다. 서유럽에서 혁명의 발전은 주로 두 가지 힘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하나는 자본주의경제 몰락이고 다른 하나는 소련의 사례였다. 왜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빨리 그리고 쉽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가는 부르주아지의 취약, 농민과의 동맹, 그리고 혁명이 전쟁 중에 일어난 사실 등이었다. 유럽에서는 혁명의 필요성과 분위기의 성장과 함께 공산주의자 전위가 발전할 수 있었고, 그 전위는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코민테른에서 재집단화 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명확히 구분된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눈앞에 러시아 혁명은 새로운 질서의 원칙을 밝혀냈는데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독재, 새로운 민주 형식으로서의 소비에트, 그리고 산업, 농업, 교육의 재 조직화였다. 독일 제국주의가 1918년 11월 무너졌을 때 노동계급은 권력 장악에 대한 완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독일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보다 러시아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노동자평의회는 자발적으로 사회민주당 지도자와 민주적 의회에 그들의 권력을 이양하였다. 병사로 무장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장해제하였고 백군에 의해 분쇄되었으며 부르주아지는 무장된 시민군대로 편성되었다.

  유럽에서 혁명 발전의 느린 속도는 갈등하는 전술 흐름의 충돌을 가져왔다. 빠른 혁명 발전의 시기에는 전술적 차이는 행위로 재빠르게 극복된다. 공산당이 약하고 패배만을 경험할 때 전망은 갈라지고 새로운 행동 경로, 새로운 전술적 방법이 모색된다. 이 때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말과 행동으로 인민의 마음을 혁명화하고 명확하게 하여 결국 옛날의 개념과 대조적인 새로운 원칙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중을 실천 행동의 변두리로 몰아넣고 차이보다는 동의의 장점을 강조하게 된다. 첫 번째는 대중 사이의 명확하고 날카로운 분리를 추구하게 되고 두 번째는 통일을 강조한다. 첫 번째가 급진적 경향이고 두 번째가 기회주의적 경향이다.

  제2 인터내셔널의 역사는 기회주의 정책의 보기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코민테른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사회주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비사회주의 노동자 집단 또는 계급의 지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혁명은 소규모 혁명당에서 뿐만 아니라 대규모 대중정당 또는 노선이 다른 당의 담합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대중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당에 의해 촉발된 행위가 방아쇠를 당길 수도 있지만 결정적 힘은 대중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있는 심리적 요인, 그리고 세계정치의 위대한 사건 속에 있다.

  혁명당의 기능은 앞장서서 명확한 이해를 선전하고 대중을 통하여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과정에서 당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대중이 올바른 것으로 인식하는 계획, 슬로건, 그리고 지시사항을 제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은 가장 적절한 형태로 그들 목적을 표현하고 그 목표를 가장 정확하게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명에서의 지도력은 분명한 원칙에 서있는 세계혁명의 힘에 의해 공산당에게 주어진다.

  유럽에서의 혁명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가 러시아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부르주아 멘탈리티(mentality)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가 몰락한 이후에도 그들 손으로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를 회복시켜주었다. 부르주아 문화의 지배를 경험하지 않은 동구(러시아 포함)의 경우 대중의 멘탈리티와 내적 성격은 전혀 다르다. 자본주의가 동구에 들어왔을 때, 전혀 다른 물질적 조건과 전통에 직면했다. 동구는 대규모 토지자산, 가부장적 봉건제, 촌락 공산주의를 가진 원시적 농업 조건에 의해 결정되어 있었다.

  유럽의 주요 특징은 개인주의이다. 이는 노동의 초기 성향인 소부르주아와 농민 유형의 기원을 가지고 점차 공동체의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감각을 갖고 그 규율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앵글로색슨 국가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수 세기동안의 물질적, 지적 교류에 의해 오락, 예술, 부르주아 문화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각인되었고 피상적 국제주의보다는 무의식 속에 깊이 박힌 민족 단결의 감성을 유발시킨다. 인텔리겐챠(목사, 교사, 문학인, 언론인, 예술가, 정치가)는 다수 계급을 형성하고 부르주아 문화를 선전하고 자본의 헤게모니와 대중의 이해 사이에서 중개자로 행동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가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명확한 전위인 공산당이 정치적 통제를 승계하는 오직 한 가지 과업만이 남아 있다. 모든 가능한 수단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약점의 원천을 제거하고 그를 강화시켜 미래를 보장하는 혁명적 투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대중 스스로 주도권을 잡고 자신감을 증진시켜 활동하게 하여 그들 스스로 그들에게 주어진 과업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의회 활동과 노동조합 운동은 제2 인터내셔널 시기의 투쟁의 두 가지 원칙이었다. 목소리를 높이고 정당사이의 갈등에 참여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변인으로 부르주아지의 중심에 있는 의회에 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의회 제도는 왜 그것이 대중을 위한 지배체제로 부적절하고 따라서 소비에트체제로 나가야 하는가에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이고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투쟁 수단으로 의회를 활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대중이 그들 편에서 개입하고 행동하고 의사결정 하자마자 의회 투쟁의 약점은 극복된다. 의회주의는 필연적으로 혁명이 요구하는 대중에 의한 자발적 활동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의회주의는 대중에 대한 지도자의 지배를 강화하는 반혁명적 효과를 지닐 뿐만 아니라 그 지도자들 스스로 부패하게 만든다.

 

 의회에서 당은 혁명적 목적을 위하여 그 뒤에서 전 계급을 집단화하는 전위 대신에, 다른 당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지는 의회 당이 되고 그들과의 싸움에 끼어들면서 새로운 깃발 아래 낡은 사회민주주의라는 형식을 가지게 된다. 본질적 적대가 없을 경우 혁명적 노동계급과 공산당 사이에는 내부 갈등이 없다. 왜냐하면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명쾌한 계급의식과 그 통일 사이를 종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회 활동은 이러한 통일을 흔들고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계급의 통일을 이루는 대신 공산주의는 그들의 당 지도부를 가지는 의회 당이 된다.

  러시아 혁명이 위대하고 공산주의적인 것은 대중 스스로의 활동을 일깨우고 새 사회를 건설하고 지향하는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를 점화시켰다는 점이다. 1918년 11월 새로 창건된 독일공산당이 의회를 보이콧한 것은 빠르고 쉬운 승리에 대한 미성숙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의회 대표에게 실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 해방되어야 할 필요에 의해서이다. 자율적 활동의 길이야말로 평의회체제를 선언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의회 활동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으로 분할되고 진정한 국제주의적 개입이 불가능해지며 국제 자본에 대항하는 대중 행동에 있어서 민족 분할로 나아간다.

  의회 활동이 노동 대중에 대한 지도자의 심리적 장악을 구체화시키듯이 노동조합 활동은 그들의 물질적 권위를 실현시킨다. 자본주의의 아래에서 노동조합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재조직화를 위한 자연스러운 조직을 형성한다. 맑스도 처음부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전된 자본주의, 나아가 제국주의 시대에서 노동조합은 이전의 부르주아 국가와 같이 동일한 발전 경향을 갖는 거대한 단체가 되었다. 그들 속에는 관료 계급이 생기고, 그 관료주의는 자금, 언론, 경영 등 모든 조직의 자원을 통제한다. 따라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주인이 되었으며 그들과 조직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국가의 공개적 법적 지지자가 되고 국가에 의해 인정되며 ‘혁명전(前) 경제 확장’이라는 구호를 만들고 결국 자본주의 유지에 복무하게 된다.

  국가가 조직하는 방식은 민주적 형식에 불과하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맑스와 레닌의 주장은 노동조합에게도 적용된다. 노동조합의 반혁명적 잠재성은 인사의 변화나 급진적, 혁명적 지도자로의 대체로 파괴될 수 없다. 혁명은 그 조직을 파괴함으로써만 성공할 수 있다. 소비에트는 국가관료주의를 뿌리 뽑고 분쇄할 뿐만 아니라 노조관료주의도 분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의회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조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조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새로운 조직 형식은 혁명 과정 속에서, 그리고 노동자들이 혁명적 개입을 함으로써만 수립될 수 있다.

  노동조합 안에서 혁명적 반대세력을 묶어세워 다수를 점하고 혁명화 시킬 수 있다는 가설은 공허하다. 왜냐하면 첫째,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총연맹의 경우, 그 반대 세력이 뚜렷해지기 전에 그들을 다루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고 둘째, 혁명이 순조로운 계획에 따라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 재건은 공산당의 주요 과제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이 그들의 지적, 도덕적 잠재력을 개발할 때 그들 스스로 그것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주요 임무는 이 잠재력을 일깨우고 촉진시키는 것이다. 공산주의 헤게모니는 생산이 완전하게 공산주의 질서에 기초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비교적 장기간의 과정 이후에 가능하다. 오히려 노동계급이 공산주의를 향하여 생산체제를 의식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적 노동조합주의자인 생디칼리스트는 소비에트를 프롤레타리아 노동자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지 않고 노동계급에 기반 하여 건설된 정치가와 지식인의 체제로 본다. 그들의 목적은 공산주의의 목적과 다르다. 금융, 은행, 농업, 식민 자본으로 조직된 전체로서의 세계자본에 대항하지 않고 오직 산업자본의 형태로만 인식된 노동조합 투쟁이라는 제한된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착취기제로서의 생산을 바라보는 맑스주의 경제학에 기초하지만 더 깊은 맑스주의 이론인 역사유물론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서유럽의 경우, 정치경제적 구조는 부르주아지가 그 궁극적 쇠퇴의 이행기를 형성한 반면, 러시아는 공산주의의 방향으로 의식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이 다르다. 즉 서유럽의 경우,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시기를 형성한 반면, 러시아에서는 새로운 경제 확장의 시기로 나아갔다. 서유럽은 쇠퇴하는 문화이고 러시아는 새로운 문화이다. 러시아에서는 우호적 환경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이 가능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약하고 통일되지 않았으며 농민 대중 속에 삼켜져버렸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잠정적이고 전진만 할 뿐이다. 새로운 공산주의 세계의 심장과 힘은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전한 영국, 독일, 미국과 같이 새로운 생산양식의 기초를 가지는 곳에 있다.

  새로운 나라, 대중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고, 산업 발전의 시작이 공산주의의 단결의식으로부터 일어나는, 원자재가 자본주의로부터 유래한 가장 발전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억압이 투쟁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곳, 그러나 강력한 부르주아지의 힘이 약한 곳, 그 곳이 새로운 공산주의의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중국과 인도를 들 수 있다. 러시아는 유럽의 동쪽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서쪽이다. 지리적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러시아 혁명은 영국에 집중된 서유럽자본에 대항하는 아시아에 의한 위대한 혁명의 시작이다. 자본주의 폐절의 강고한 투쟁은 서유럽과 미국의 노동자가 아시아의 거대한 인민과 함께 손잡고 성취할 공동 과업이다. 우리는 이 과정의 시발점에 서 있다.


  이제 레닌으로 가본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좌익공산주의 : 유아적 무질서」는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보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빗겨가는 대응의 수단으로, 전략과 전술의 변증법적 관계를 은폐하고 잘못된 전술을 합리화하려는 수단으로, 유럽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몰이해를 가리려는 수단으로 인용되어 왔다. 진정한 공산주의의 원칙에 서있지도 않으면서 반대파를 종파주의로 몰아세우는 스탈린주의적 책략으로 사용되었다. 레닌의 글 가운데 유럽과 비교되는 몇 가지 중요한 전술을 인용하기로 한다.2) 이러한 레닌의 입장은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공식화되었고 유럽 공산주의 운동과 결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 어떤 의미에서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의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역사적 현시점에서, 모든 나라에 가깝고도 불가피한 그들 미래의 어떤 것, 그것도 무척 본질적인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러시아 모델이다.

 

  2. 볼셰비키가 성공한 근본적인 한 조건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규율은 어떻게 되는가? 그 규율은 어떻게 검증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강화되는가? 첫째,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의식성에 의해서, 그리고 혁명에 대한 그들의 헌신, 곧 전위의 끈기와 자기희생 및 영웅적 행동에 의해서다. 둘째, 일차적으로는 가장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근로인민대중들과 뿐만 아니라 비 프롤레타리아 근로인민대중들과도 연결을 갖고 가장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며, 그리고 당신들이 원한다면 어느 정도 융합할 수 있는 전위의 능력에 의해서이다. 셋째, 이 전위가 발휘하는 정치지도력의 올바름에 의해서, 곧 전위의 정치 전략 및 전술의 올바름에 의해서인 바, 이것은 가장 광범한 대중들이 자신들의 경험으로서 그 전략 및 전술의 올바름을 인정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볼셰비즘은 1903년 매우 굳건한 맑스 이론의 토대 위에서 생겨났다. …풍부한 경험이라는 면에서 세계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15년간의 실천 역사(1903-1917)를 거쳐 왔다. 왜냐하면 이 15년 동안 어떤 나라에서도 혁명적 경험이라는 의미에서 갖가지 운동 형태들 - 합법형태와 비합법형태, 평화적인 형태와 폭풍적인 형태, 그리고 의회적 형태와 테러적 형태 - 이 그토록 급속하고 다양하게 교차하면서 나타났던 것과 엇비슷하기라도 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3. 볼셰비즘은 노동운동내의 어떤 적들에 대한 투쟁에서 발전되고 강화되고 단결되었는가?

볼셰비즘이 무정부주의의 냄새가 나거나 무정부주의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오며 그리고 모든 본질적 문제에 있어서 일관성 있게 프롤레타리아적인 계급투쟁의 조건들과 요구들에 부합하지 못하는 쁘띠부르주아혁명주의에 대한 오랜 투쟁 속에서 모습을 갖추고 발전, 단련되었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20년 오늘 날, 모든 서유럽 정당들 중에서 독일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배출해내었고 다른 누구보다도 더 빨리 회복하여 새로운 힘을 얻어냈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스파르타쿠스단이나 독일독립사회민주당의 좌익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우에서 모두 보이며… 카우츠키파, 힐퍼딩파, 레데부르파 및 크리스핀파의 기회주의와 줏대 없음에 대해 줄기찬 투쟁을 벌이고 있다.

 4. 독일의 “좌익”공산주의, 지도자-당-계급-대중

레닌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지명 그룹”이 발간한 「독일공산당의 분열(스파르타쿠스 동맹)」이란 팸플릿을 비판에 대한 근거로 삼고 있다. 불행히도 아주 특권적이고 아주 안정된 합법성이라는 전통과 조건을 가진 한 조그만 나라에 태어나서 합법에서 비합법으로의 전환을 결코 본적이 없는 네덜란드 공산당의 몇몇 당원들이 혼란에 빠져서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두 개의 공산당(지도자당과 대중정당)의 대립을 당독재와 계급독재로 대비시킨 것)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당 원칙과 당 규율의 거부 - 이것이 반대파가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키는 것과 똑같다.…공산주의 관점에서 볼 때, 당 원칙을 거부하는 것은(독일의 경우)자본주의 붕괴의 전야로부터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가 중간 단계가 아니라 가장 높은 단계로 건너뛰는 것을 뜻한다.

  투쟁 속에서 단결된 철의 당 없이, 일정 계급의 모든 정확한 사람들의 신뢰를 누리는 당 없이, 대중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그것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당 없이, 그와 같은 투쟁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5. 혁명가들은 반동적인 노동조합에서 활동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의 러시아에서 지도자-당-계급-대중의 관계 및 노동조합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와 프롤레타리아트 당독재의 태도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곧 독재는 소비에트들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하고 이 프롤레타리아트는 볼셰비키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데 최근 당 대회(1920년 4월)의 자료에 따르면 볼셰비키 공산당의 당원은 61만 천 명이다. 자신의 활동에 있어서 당은 직접적으로 노동조합에 의존하는데 지난 대회(1920년 4월)의 자료에 따르면, 이 노동조합은 지금 400만 이상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형식적으로 비당파적이다.

  우리는 독일 좌익들의 거만하고 매우 박식하며 겁나게 혁명적인 지껄임, 곧 공산주의자들은 반동적 노동조합에서 활동할 수 없고 활동해서도 안 되며, 그러한 활동을 거부해도 좋으며 노동조합으로부터 탈퇴하여 썩 쾌활한(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은 매우 젊은) 공산주의자들이 발명한 참신하고 순수한 “노동자 동맹”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는 따위의 지껄임을 마찬가지로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허튼소리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당에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노동조합이 필수불가결한 “공산주의 학교”이자 프롤레타리아트독재 수행을 위한 예비 학교로서 나라의 전 경제생활의 운영을 (개별 직종들이 아니라)노동계급에게, 다음에는 모든 근로인민에게 점진적으로 이양시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불가결한 조직이며 오랫동안 계속 그렇게 남으리라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의 일정한 반동성은 프롤레타리아트독재 하에서는 불가피하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기본 조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였음을 뜻한다.

  서유럽에서는 노동조합적인, 편협한, 이기적인, 철면피 같은, 탐욕스런, 속물적인, 제국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제국주의에 매수당해 타락한 노동귀족층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력하게 형성되었다. …반동적인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거나 후진적인 노동자 대중을 반항적인 지도자, 부르주아지의 앞잡이, 노동귀족, 또는 ‘부르주아 화한 노동자’의 영향력 하에 내버려둠을 뜻한다.

  6. 부르주아 의회에 참여할 것인가?

주지하듯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와 같은 탁월한 정치지도자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독일의 좌익들은 의회주의를 이미 1911년 1월에 “정치적으로 폐물”이 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 독일(과 네덜란드)의 좌익들은 자신들이 계급정당이 아니라 서클이라는 것을, 대중정당이 아니라 지식인들과 지식인들의 가장 나쁜 속성을 흉내 내는 소수 노동자 집단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독일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의회주의는 “정치적으로 폐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폐물이 된 것을 계급에게 폐물이 된 것으로, 대중들에게 폐물이 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르주아 의회들이 장기간 존재했느냐 아니면 단기간 존재했느냐가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들이 소비에트 체제를 받아들이고, 부르주아민주주의 의회를 해체할(또는 해체를 허용할)준비가 얼마나(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실천적으로)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의회는 노동계급의 선진적인 혁명가들에게 아주 가증스런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이 악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할 때 이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범죄적이기 조차 하다. …전술은 혁명운동의 경험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특정 나라의(그리고 이웃 나라들과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모든 계급 세력에 대한 냉정하고 엄밀한 객관적 평가 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모든 특정 조건들은 현대 서유럽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와 같은 또는 그와 유사한 조건들이 손쉽게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일련의 다른 원인들을 제쳐두고라도 바로 이 때문에 서유럽이 우리가 그랬던 것보다 사회주의혁명을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렵다. 혁명적 목적을 위해 반동적 의회를 활용하는 어려운 과제를 뛰어넘음으로써 이 어려움을 피해보려고 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짓이다.

…무엇보다도 의회 내에서 지도자들을 시험해보지 않고서는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비판 그것도 가장 날카롭고 가차 없으며 비타협적인 비판은 의회주의나 의회 활동에 대해서가 아니라 의회 선거와 의회 연단을 혁명적 공산주의적 방식으로 활용할 줄 모르는 그런 지도자들에 대해서 -활용하지 않으려는 자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가해져야 할 것이다.

  7. 어떤 타협도 안 된다?

순진하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타협 일면을 허용하면 우리가 불굴의 투쟁을 벌이고 있고 벌여야만 하는 사회주의와 혁명적인 맑스주의, 곧 공산주의 사이의 경계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쁘띠부르주아민주주의자들(멘셰비키를 포함하여)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부르주아민주주의와 소비에트 체제, 개혁주의와 혁명주의, 노동자에 대한 사랑과 프롤레타리아트독재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동요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올바른 전술이란 이러한 동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다. …어떠한 타협도 없고 어떠한 유연한 대응도 없다는 성급한 결정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는데 방해가 될 따름이다.

  우리가 아니라 분명히 적에게 유리할 때 싸움을 거는 것은 죄악이며, 혁명적인 계급의 정치 지도자가 분명히 불리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유연한 대응을 꾀하고 협조나 타협을 할”수 없다면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8. 몇 가지 결론

이제 노동운동의 역사는 갓 태어났고 강력해지고 있으며 승리로 나아가는 공산주의가 주로 무엇보다도 자신들의(곧 각 나라의) “멘셰비즘” 곧 기회주의와 사회배외주의에 맞서서, 둘째로는 이를테면 그것을 보충하는 형태인 좌익공산주의에 맞서 곧 싸움을 벌여야 한다. 첫 번째 투쟁은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의 싸움처럼 분명히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나라에서 전개되었다. 두 번째 투쟁은 독일, 영국, 이탈리아, 미국(적어도 세계 산업노동자조합과 무정부주의적 생디칼리즘적 역할의 일정부분은 거의 일반적이고 그리고 거의 공통적으로 소비에트체제를 인정하면서도 좌익공산주의의 오류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한때 생디칼리스트들이었던 한 분파가 역시 소비에트체제를 인정하면서도 정당과 의회정치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서, 말하자면 의심할 바 없이 세계적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나라의 공산주의 노동운동의 국제적 전술을 종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성의 제거나 민족적 차이의 소멸이 아니라 공산주의 기본 원칙들(소비에트권력과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을 적용하되, 이런 원칙 하나하나를 올바로 변형시키고 민족 내지 민족적 국가적 차이에 맞게 올바르게 조정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각국이 동일한 국제적인 과제들, 곧 노동운동내의 기회주의와 좌익교조주의에 대한 승리, 부르주아지의 타도, 소비에트공화국과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수립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식에서 어느 것이 민족적으로 특이하고 민족적으로 차이 나는 것인가를 추적, 연구, 모색, 예측, 파악하는 것, 바로 이것이 모든 선진 나라들(물론 선진 나라들뿐만 아니라)이 겪고 있는 역사적 시기의 기본 과제이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인 똑같은 오류를 더 서둘러 바로 잡고 유기체에 고통이 덜 하도록 더 빨리 치유하기 위해 힘써야만 한다. 우익교조주의 뿐만 아니라 좌익교조주의 또한 오류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공산주의에서도 좌익교조주의의 오류가 우익교조주의(이를테면 사회배의주의와 카우츠키주의)의 오류보다 천배나 덜 위험하고 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좌익공산주의가 아주 어린, 겨우 싹트고 있는 경향이기 때문이다.

  독일과 영국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 하나의, 똑바른 길만을 인정한다고 그리고 유연한 대응, 협조, 타협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보자. 그러면 이것은 공산주의에 아주 심각한 해독을 끼칠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이미 끼쳐왔고, 지금도 끼치고 있는 오류가 될 것이다. 우익교조주의는 오로지 옛 형식의 인정을 고집하였고 새로운 내용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히 파산하였다. 좌익교조주의는 어떤 옛 형식을 무조건 거부할 것을 고집하고 있으며, 새로운 내용이 온갖 형식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며, 또한 모든 형식에 통달하는 일, 최대한 빨리 한 형식을 다른 형식으로 보완하고 한 형식을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며 우리 계급이나 우리 노력으로 생겨나지 않은 온갖 변화에 대해 자신의 전술을 적용시키는 것을 배우는 일이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안톤 판네쿡은 레닌의 글과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결과를 보고 자신의 글「세계혁명과 공산주의자 전술」의 후기를 덧붙였다.3)


  모스크바의 상임위원회와 지도자들은 코민테른 2차 대회를 지배한 경향의 결과로 완전히 기회주의로 돌아섰다. 이러한 정책은 독일에서 처음 나타났는데 이는 라덱이 이념적, 물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의회주의 전술을 주창하고 독일 공산주의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고 결국 독일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키고 약화시켰다.

  레닌은 영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의회 선거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의 성원과 반동적 노조 지도자가 포함된 노동당에 참여할 것을 권고했다. 레닌의 팸플릿의 중요성은 내용에 있지 않고 저자에 있다. 왜냐하면 논쟁이 독창적이지 않고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미 사용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그것을 시작한 것이 레닌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오류는 서유럽의 조건, 당, 조직 그리고 의회 실천을 러시아와 동일시했다는 점이며 그것이 구체적 정책의 산물로 중대한 때에 나타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기본은 소비에트연방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고 콜챡과 데니킨의 반동적 폭동이 러시아 철강 산업의 기초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기계, 기차, 공구가 경제 재건설을 위해 필요했으며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되지 않은 산업이 이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세계 국가들과 평화로운 교역이 필요했고 특히 협상국(영국)과 그러했다. 반대로 그들은 자본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원자재와 식료품이 필요했다.

  모든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준비하는 공산당 연합인 코민테른은 러시아 정부의 정책에 의해 공식적으로 묶여있지 않아야 하고 러시아와 독립적으로 자신의 과업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분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당면한 경제적 욕구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더 깊은 경제적 적대감이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미래의 혁명을 준비하는 급진적 공산당이 아니라 러시아편을 들고 정부에 의무를 다하는 조직화된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이었다. 또한 모스크바는 그 영향력이 결정적인 대규모 노동조직의 전통적 관점과 방법에서 크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서유럽의 공산주의자 전술을 강조해야만 했다. 그들은 KAPD(독일공산주의노동자당)의 급진적 전술을 바라지 않았고 독립파(카우츠키)와 KPD(독일공산당), 그리고 노동조합에 의한 정부를 필요로 했다.

 구별 점은,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고 자본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외적 혁명과, 대중을 내부적으로 혁명화 시키고 그 안에서 노동계급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공산주의 가설을 굳건히 손에 움켜쥐는 공산주의혁명 사이에 있다. 진정한 투쟁은 지도자 영향을 억제하고 지도자의 힘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기회주의는 지도자들과 동맹을 맺고 새로운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코민테른은 옛날 조직과 그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그 헤게모니를 강화하여 혁명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으면서도 “공산주의혁명”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러시아와 비슷한 정치 체계가 소비에트체제에 기반을 둔 노동자 관료주의에 의해 통제되면서 다른 유럽국가에 존재한다면 세계 제국주의의 권력은 유럽에서 깨어지지만 보존될 것이다. 러시아의 정책에 반대하는 비판적 문제제기는 진정한 공산주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러시아가 서유럽 노동자 관료주의와 연대하고, 대중에 대한 적대와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적응을 한다면 러시아는 공산주의의 길로 가는 순간을 없어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노동자 정부”는 공산주의 재건의 힘을 해방시킬 수 없으며, 10월 혁명 이후의 러시아와 달리,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 대중이 농민과 함께 막강한 힘을 형성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재건의 실패는 반동을 쉽게 불러일으킬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그 체제를 폐절시키는 힘을 새롭게 키워야할 것이다.

 

 빛나는전망 실천총서1. [세계혁명- 당, 평의회, 노동조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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