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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3
    도시의 테러리스트! 2탄(by 웡긔)
    깜깜
  2. 2009/02/13
    도시의 테러리스트! 1탄(by 웡긔)(9)
    깜깜

도시의 테러리스트! 2탄(by 웡긔)

(1탄에 이어) 

 

조형물 설치

 

 : 거리에 자신이 만든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이 역시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혹은 단순한 재미.

 

 조형물의 경우 '스트릿 아트'의 '아트'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mark jenkins의 작업처럼, 단순한 아트와 미시적인 문화정치의 맥락은 구분하기 힘들다.

 

 

 

 

 

 

 (출처는 확실치 않지만, 밑에 것은 GRL와 Mark Jenkins와의 Tape Sculpture 합동 작품)

 

 

 

 

 

(바로 위가 mark jenkins의 작품: 아기 tape sculpture)

 

 

Textual healing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건물의 창문에 말풍선을 달고, 알려준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풍선 안에 채워진다. 항상 이용하는 문자서비스(SMS) 기술을 이용한 상호작용 퍼포먼스.

http://www.txtualhealing.com

 

 

  

 

 

* 보통 이러한 활동을 일컬어 street art 라고도 하지만, banksy가 지적하듯이 예술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함축과 소외시키는 기능 때문에 쓰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반달리즘이나 (헤게모니에 대한) 문화적 교란행위cultural jamming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들 행위가 가진 본질적인 아트로서의 동기를 가리고, 더군다나 재미없게 되어버린다.

 

 

 

 위의 사례들이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의 일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의 상황은 어떨까? 일반적인 그래피티라면 압구정동과 홍대 일대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흔하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일반인과의 접촉을 금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밴크시로 대표되는 스탠실 그래피티의 경우, 필자가 살고 있는 종로지역에서 매우 가끔 목격하기도 하지만 거의 없다고 봐야 옳다. 오히려 한국에서 스탠실 그래피티는 공공기업이나 일반 기업체에서 자신들의 광고를 위한 방법으로 널리 쓰여진다. (사진) 스티커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아무런 이윤의 목적이 없는 경우란 찾기 힘들다. 그 외 다른 종류의 아트로서의 반달리즘은 여러 가지가 시도되고 있지만, 사실상 외국, 그것도 국제적인 도시에서 시도되고 있다.

 

 

(명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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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테러리스트! 1탄(by 웡긔)

 





 



Vandalism


 

 

 도시에서는 테러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폭탄 공격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와의 합의 없이 강요된 美, 취향, 소비조장, 세뇌광고, 감시 등과 도시의 공백이 이 테러리스트들의 목표이다. 오히려 이들은 힘과 돈을 무기로 우리 주변을 압박해 들어오는 자들이야말로 진짜 테러리스트라고 항변한다.

 

 도시의 공공물 또는 사적 재산을 의도적으로 파괴, 변형시키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 발음은 ‘밴덜리즘’이다)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용어의 정의를 분석상 ①범죄, ②정치, ③예술로서의 반달리즘으로 나눈다. 범죄학에서는 이것을 반사회적 행위 상태(ASBO), 즉 상습적으로 경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범죄의 하나로 본다. 분명 유리창을 깨뜨리고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등의 일은 어느 누구라도 테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벽에 낙서나 그래피티(graffiti)를 하는 것은 어떨까? 분명 다른 사람의 재산을 손상시키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보기 좋다면?

 

여기서 눈여겨 보는 것은 예술로서의 반달리즘이지만, 사실상 문화와 정치가 구분이 모호한 시대라고 한다면, 이 셋은 항상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우며, 아트로서의 반달리즘도 분명한 (미시적인)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사방에 지겹게 붙어 있는 광고판이나 전단지, 스티커 등을 귀엽거나 기발한 각자의 그림으로 대체하거나 변형시킨다면 어떨까. 내가 사는 동네와 이웃에 나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들은 마음대로 자신들의 상품을 현란하게 광고할 수 있는데,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나는 눈과 마음이 즐거울 아무런 권한도 없는 걸까.

 

여기 몇 가지 움직임들이 있다. 이것들이 단지 철없는 사회부적응자들의 한심한 짓거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상징적 저항의 움직임인가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공공물 변형

 

대표적인 반달리즘으로 표지판이나 간판 등의 공공물을 '재미 있게' 변형시킨다.

 

 

 

 

 

 

 

 

 

stencil graffiti

 

 Banksy는 스탠실 그래피티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보통의 것과 달리 스탠실 기법을 이용한 그래피티다. 뱅크시는 주로 고향인 영국에서 활동을 하며, 공공물 훼손과 박물관에 무단으로 자신의 그림 걸기 등의 奇行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지만, 여기서는 별로 말이 없는 그의 이야기 한 토막을 살펴보고 짧게 넘어가자. 그는 brandalism을 선언한다.

 

Brandalism : “…그들은 당신 삶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한 방 날린 뒤 그렇게 사라진다. 그들은 높은 빌딩 위에서 감시하고 우리를 작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버스에 붙은 건방진 코멘트들은 우리자신을 하찮고 섹시하지 않으며, 재미있는 일은 항상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는 암시를 준다. 그들은 TV를 통해 당신의 애인이 별로라고 생각하게 하며,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기술들을 이용해서 집요하게 당신을 괴롭힌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손댈 수조차 없다. …깽판을 부려라(screw that!). 공공장소의 어떤 광고라도 원하는 대로 해치우자. 그것을 떼던지 변형시키던지 마음대로 하라. …기업들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이 세상을 재배열하며 바꾸어 가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허락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도 (광고를 망치는데 있어) 그들에게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 (banksy: wall and piece, 2005)

 

‘brandalism’은 뱅크시가 특히 마구잡이 광고로 일상생활에 관여하는 기업들에 대한 깽판을 추동하면서 만든 단어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으로는 ‘puma’라는 브랜드를 파마, 피나, 치마, 임마, 엄마, 쿠마, 튜나 등으로, bean pole을 ‘bean gone’ 등으로 바꾸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마저도 사실 또 다른 상품이 되기도 한다. 시장경제는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이용을 할 수 있는데, 특히 ‘커트 코베인’이나 ‘체 게바라’같은 인물들도 티셔츠, 목걸이, 핸드백, 뱃지 등으로 잘 팔리는 자본주의 아이콘이 되었다. 뱅크시는 말한다. “사람들은 혁명가처럼 입으면 실제로는 혁명가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듯 하다.”

 

 

 

 

 

(위 모든 사진은 뱅크시 작업; 마치 내가 찍은 것처럼 서명이 붙었지만 당연히 퍼온 것. 카피레프트쪽이니 퍼도 무방. http://www.banksy.co.uk/)

 

 

 

 

 

 

 

 

stickers

 

 보기 싫은 광고 스티커 위에 자신이 만든 예쁘고 기발한 스티커를 포개놓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 현대의 낙서는 반달리즘이 된다. 물론 이런 짓거리로 코끼리 다리만큼 탄탄한 사회구조가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상 생활영역에서 만큼은, 내가 생활하는 이 공간만큼은 저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작고 보이지 않는 테러는 이데올로기·마케팅 수법·문화가 블렌딩된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분명한 듯하다. 한 예로 미국의 CAUSS라는 단체는 아마도 자유주의적인 시민정신을 발휘해 거리의 모든 불법적인 광고(“street spam”)를 떼어버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와 달리 단순한 재미와 꾸미기 위해 스티커를 직접 만들어 도시의 빈 공간에 붙이는 사람들도 많다.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예쑬’을 배우고 싶다면 이곳을 참고하라 :

 

스티커 만들기 강좌 : www.showmesomeart.co.uk

CAUSS : http://www.causs.org/what_is_street_spam.html

 

 

 

 

 

 (처음꺼는 내가 직접 찍었음, london,2006)

 

 

 

 

 

billboard liberations

 

 광고판의 ‘해방’. 이건 보다 스케일이 큰 작업이다. 이 경우에는 행위가 갖는 정치적 함의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외

 

 

 

guerilla gardening

 

 : “우리는 도시의 방치된 공간에 면허나 허락 없이 씨와 묘목을 심습니다. 우리와 함께 이 도시를 반달라이징합시다!” http://publicspace.ca/gardeners.htm

 

 

 

 

 

 

LED 투척

 

: 공공영역을 풍부하게 만들 모든 자료와 정보, 컨텐트를 공유하는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들의 실험적 연합체인 The Eyebeam Openlab의 가히 혁명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 ‘Graffiti Research Lab(GRL)’의 대표적인 발명품.

 

 아이빔 오픈랩은 현대 기술을 우리의 삶과 예술에 바로 응용, 연결시키는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민간단체다. GRL은 그들의 프로젝트로 하나로 거리예술을 위한 기술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의 목적은 “기업들과 상업적인 문화로부터 개인들을 그것을 변경하고 자신의 환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원조해주는 것이다.”

 

 LED 투척은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발명품 중 하나로 이미 블로그나 you tube와 같은 곳에서 알려진 바 있다. 이 것은 길 위의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고(make people think), 자신의 환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일명 발광다이오드라고도 하는 LED를 전지와 함께 엮어 말 그대로 ‘투척’하는 것으로 이것의 위력을 알고 싶다면 아래 주소의 동영상을 보라. 그리고 이곳의 깜짝 놀랄 발명품들을 직접 확인해주시길 :

 

LED Throwies : http://graffitiresearchlab.com/?page_id=17#video

아이빔 : http://research.eyebeam.org/

GRL : http://graffitiresearchlab.com/

 

 

 

 

 

 (2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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