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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 무슨 심정으로 세상을 버린 것이냐

 

인천 만수동 향촌마을이 환경개선지구로 명명되어지고 그곳에 기거하던 세입자들은 갈 곳이 없어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투쟁할 것을 결의했고 그 사람들 중엔 연세 일흔이 넘고 여든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아직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 죽은 자 신현기씨도 있었다.


신현기씨의 나이 쉰.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버린 신현기씨에게 가족이 생긴 때는 그 사람 열한살 무렵이었다. 부모님이 생기고 형이 생겨서 한 때 마음 의지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 사람에게 자립의지를 심어주겠다고 호적을 따로 떼어 주셨다. 그래서 신현기씨에겐 법에서 정한 문서에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평소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돈벌이를 한 신현기씨는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었다. 수더분하고 내성적이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빈민이었다.


지난 3월 13일 향촌에서 철거가 시작되고 다음날 14일 신현기씨는 자신의 키보다 낮은 천장 높이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한다. 사인은 자살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법률상 무연고자인 그 사람의 시신은 그 사람을 알던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한 채 장례절차도 밟지 못하고 땅속에 매장된다. 그 사람이 세상 버린지 며칠 후 향촌에 갔을 때 사람들은 나도 죽을란다는 말들을 했다. 그 사람의 죽음을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지난 4월 29일 故 신현기 열사 49제 영가 천도제를 정암스님을 모시고 봉행했다. 불가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49일 동안 그 영혼이 이승을 떠돌며 자기가 지냈던 곳을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49제를 통해 그 영혼을 영혼들의 세계로 인도해 주게 된다. 


천도제를 지내던 그곳 향촌에서는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 계속 들려졌다. 채워진 방문안에서 화재로 죽어간 어린이들의 노래같은 그런 핏빛 고통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사람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아니었을까.

-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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