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플라톤적 ‘신화’의 종별성은 신화가 이야기[conte]를 순수하게 임의적으로 강요하면서 지식의 근거(reasons, 이성)를 전도하는 방식에 있다. 역사학자와 사회학자가 우리에게 특정한 삶이 그 삶을 표현하는 특정한 사고를 생산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반면에, 철학자의 신화는 이러한 필연성을 임의적인 “아름다운 거짓말(beautiful lie)”에 조회시키는데, [여기에서] 아름다운 거짓말이란 대다수 인민들(people)의 삶에서 [거짓말이자] 동시에 현실(성)인 것이다. 필연성과 우연성의 이러한 동일성, 즉 거짓말의 현실(성)은 진리를 환상으로부터 분리하는 담론의 형태로는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자세히 이야기될(recount, 다시 셈해질) 수만 있으며, 다시 말해, 담론의 위계와 구별을 중단시키는 담론적 형태로 진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철학의 특권은 ― 중요하다고 생각하든 유감으로 생각하든, 일반적으로 철학에게 요구되는 추상성과는 반대로 ― 자신의 담론에 대한 문자적 직접성(literal directness)이다. 직접성이란 그것으로 인해서 철학이 논거들(reasons)과 이야기들(narratives)의 원초적 동일성에 관한 이러한 조건을 진술하는 방식을 인식해왔으며, 직접성만이 오직 철학으로 하여금 삶들의 편제된 분할들을 주장하게 한다.
10-2. 플라톤이 <<패드로스>>에서 주장하듯이,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진리[vrai]를 말해야만 하고, 그곳이 우리가 진리[vérité]를 말하는 곳이다. 또한 바로 여기에서, 플라톤은 가장 발본적인 이야기[conte]에 의존한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을 상인으로, 또 다른 일부를 체육교관, 장인, 시인으로 전화시키는 진리의 전장, 신성한 전사, 함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플라톤이 가장 무자비하게 조건들의 편제된 분할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사태를 완전히 반대로 말하게 되는데, 플라톤은 가장 발본적으로 편제된 분할을 부인하는 것, 즉 담론의 위계와 담론의 위계가 보증하는 위계들을 철폐하는 이야기의 힘과 공통 언어의 힘에 의존한다.
11-1. 분과학문적 사고는, 우리가 우리의 영토, 우리의 대상들, 그 대상들에 상응하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회학이나 역사학, 정치학이나 문학이론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것은 또한, 통상적 의미에서, 철학이 자신을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주장하는 바이다. 하지만 분과학문들의 학문으로 자신의 지위를 기초 지으려고 하는 순간에, 철학은 기초의 기초란 하나의 이야기라는 이러한 역전을 생산한다. 철학은, 자신의 방법을 확신하는 그러한 지식들(savoir)을 향해, 방법은 이야기들을 자세히 말하는(recount, 다시 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러한 지식들이 헛되거나 공허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들이 전쟁의 무기들이라는 뜻이다, 그것들은 한 영토의 조사를 촉진하는 도구들이 아니라, 영토의 항상적인 불확실한 경계를 설립하려는 무기들인 것이다.
11-2. 사회학의 영토를 철학의 영토와 분리하거나, 역사가를 문학의 영토에서 분리하는 확정적인 경계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규정이 명확한 경계라도 과학의 대상으로서 목수의 담론을 과학 그 자체의 담론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결국에, 이러한 경계들을 긋는 것은, 이러한 질문을 경유해서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경계를 긋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는 이야기의 형식이 없다면 결단코 그을 수가 없다. 오직 이야기들의 언어만이 경계를 그을 수 있으며, 그것은 분과학문들의 근거들(reasons)에서 최종적 근거의 부재라는 아포리아를 끌어내는(forcing) 것이다.
11-2. 나는 이전에 ‘지식들[savoirs]의 시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바 있다. 지식들의 시학은, 언제나 문학이 엄격한 논증을 시도한다는 유의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게다가 그러한 입증은 탈신화화라는 나태한 논리에 속한다. 지식들의 시학은 분과학문들이 거짓된 지식들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과학문들이란 신체가 할 수 있는 것을 표명하는 여러 방식들 간의 끊임없는 전쟁, 곧 평등의 논거들과 불평등의 논거들 간의 끊임없는 전쟁에 개입하는 여러 방식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과학문들이 이야기들을 말하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분과학문들이 [공통] 언어와 공통 사고로부터 자신의 대상에 대한 관념들(presentations), 자신의 상호작용 하는 (소송)절차들, 자신의 논증 형식들을 반드시 빌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식의 시학은 무엇보다도, 묘사와 논증의 힘을 대상들, 이야기들, 논증들을 재발명하는 공통 언어와 공통 능력의 평등에 다시 기입하려는 하나의 담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식들의 미학은 평등의 방법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