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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장 - 2009/12/01 21:05

몇년전에  심리학 공부를 시작할 즈음에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다.

 

어머닌 반색을 하시며

"그거 공부하면 이제 월급도 좀 많이 받고 돈도 버는거냐?"고 물으셨다.

곧 마흔이 될 자식놈이 민주노총에서 상근을 하며

이른바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게 못내 걱정스럽고

그런 자식의 앞날이 미덥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뭔가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반가우셨던 것같다.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모르는바 아니었지만

"어머니. 돈을 더 벌진 못할것 같은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순 있을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너도 이제 나이가 적지않은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냐?

앞날도 걱정해야지!"라고 어머니는 한숨섞인 핀잔을 쏟으셨고

나는 지지않고

"어렸을 적에 어머니 아버지가

 '열심히 공부해라! 많이 배워야 더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배워서 남주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부모님 가르침대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고 말씀드렸다.

 

"너한텐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너 학교 다닐때 네가 가방매고 집을 나서면

나는 네 책상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했었다. 10년 넘게.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었지.

그래서 가끔은 후회도 한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해서

네가 지금처럼 힘들게 사는 것만 같아서.."

 

어머니는 진심으로 속상하신듯 싶었다.

아들내미의 순탄치않은 삶이

당신의 책임이라고, 당신의 기도탓이라고

그렇게 자책을 하고 계신것 같았다.

 

밥을 먹다 울컥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푸욱 숙인채 허겁지겁 밥을 입에 퍼넣었다.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사랑과 기도가 저를 키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워서 남주라는 부모님의 그 크신 가르침

평생 잊지않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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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 21:05 2009/12/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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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1 19:30

썩으러 가는 길
 - 군대 가는 후배에게

 

 

열여섯 앳띤 얼굴로
공장문을 들어선 지 5년 세월을
밤낮으로 기계에 매달려
잘 먹지도 잘 놀지도 남은 것 하나 없이
설운 기름밥에 몸부림하던 그대가
싸나이로 태어나서 이제 군대를 가는구나
한참 좋은 청춘을 썩으러 가는구나

굵은 눈물 흘리며
떠나가는 그대에게
이 못난 선배는 줄 것이 없다
쓴 소주 이별잔밖에는 줄 것이 없다
하지만 철수야
그대는 썩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푸른 제복에 갇힌 3년 세월 어느 하루도
헛되이 버릴 수 없는 고귀한 삶이다

그대는 군에서도 열심히 살아라
행정반이나 편안한 보직을 탐내지 말고
동료들 속에서도 열외 치지 말아라
똑같이 군복 입고 똑같이 짬밥 먹고
똑같이 땀 흘리는 군대생활 속에서도
많이 배우고 가진 놈들의 치사한 처세 앞에
오직 성실성과 부지런한 노동으로만
당당하게 인정을 받아라

빗자루 한 번 더 들고
식기 한 개 더 닦고
작업할 땐 열심으로
까라면 까고 뽑으라면 뽑고
요령 피우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아라
고참들의 횡포나 윗동기의 한따까리가
억울할지 몰라도
혼자서만 헛고생한다고 회의할지 몰라도
세월 가면 그대도 고참이 되는 것
차라리 저임금에 노동을 팔며
갈수록 늘어나는 잔업에 바둥치는 이놈의 사회보단
평등하게 돌고도는 군대생활이
오히려 공평하고 깨끗하지 않으냐
그 속에서 비굴을 넘어선 인종을 배우고
공동을 위해 다 함께 땀 흘리는 참된 노동을 배워라

몸으로 움직이는 실천적 사랑과
궂은 일 마다않는 희생정신으로
그대는 좋은 벗들을 찾고 만들어라
돈과 학벌과 빽줄로 판가름나는 사회 속에서
똑같이 쓰라린 상처입은 벗들끼리
오직 성실과 부지러한 노동만이
진실하고 소중한 가치임을 온몸으로 일깨워
끈끈한 협동 속에 하나가 되는 또 다른 그대
좋은 벗들은 얻어라

걸진 웃음 속에 모험과 호기를 펼치고
유격과 행군과 한따까리 속에 깡다구를 기르고
명령의 진위를 분별하여 행하는 용기와
쫄따구를 감싸 주는 포용력을 넓혀라
시간 나면 읽고 생각하고 반성하며
열심히 학습하거라
달빛 쏟아지는 적막한 초소 아래서
분단의 비극을 깊이깊이 새기거라

그대는 울면서
군대 3년을 썩으러 가는구나
썩어 다시 꽃망울로
돌아올 날까지
열심히 썩어라

이 못난 선배도 그대도 벗들도
눈부신 꽃망울로 피어나
온 세상을 환히 뒤흔들 때가지
우리 모두 함께
열심히 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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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 19:30 2009/12/0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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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1 19:28

이불을 꿰매면서

                           박노해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은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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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 19:28 2009/12/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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