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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체계적 문헌고찰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체계적 문헌고찰> 보건과 사회과학 36: 43-76. 이혜민, 박주영, 김승섭 (2014)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3512259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난 이 논문 이전까지 한번도 성소수자에 대한 논문을 쓴 적이 없었고 또 리뷰(종설) 논문을 써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 논문을 지도하는 일은 주제와 형식, 모든 측면에서 내게도 도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5개월전, 학부 4학년인 이혜민 학생이 찾아와 성소수자의 건강을 연구하기 위해 내 연구실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을 때, 이 종설 논문을 함께 쓰자고 내가 제안했었다. 평생 이 주제를 공부할 계획이라면, 그동안 한국에서 진행된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모든 논문들을 모아 지도를 그려놓자고, 그리고 채워야할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지점부터 연구를 시작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언제나 그렇듯 협박했었다. "아주 많이 힘들텐데, 따라올 수 있겠냐고."

 

열정은 가득하지만 학문적인 글쓰기 훈련은 (당연히) 안되어 있는 학부 4학년 학생과 매주 미팅을 하며, 논문을 진행했었다. 돌이켜보건대,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단계에서도 어려움들은 산적해 있었다. 검색어를 설정하고 검색엔진에서 쓰이는 문법을 정리하고, 논문을 선택해 나가는 차트를 그리고.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2천편의 논문에서 130여편의 논문을 추린 다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한 문장안에서도 같은 단어가 두 번 나와서는 안되고, 부족하거나 과한 단어를 사용하면 안되고, 근거가 없는 말을 해서는 안되고, 그러면서도 문장은 앞 뒤 이야기와 이어져 있으면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고, 더 나아가 전체적인 논문 구조가 명확해야 하고. 결국 30페이지가 넘는 논문의 모든 문장이 바뀌고, 모든 그림이 바뀌면서 논문은 논문다워졌다.

 

논문이 마무리 될 무렵, 이혜민 학생에게 말했다. 그만큼의 학문적인 엄격함을 지켰기에, 마지막 문단은 정말로 네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된다고. 마음껏 말해보라고. 그 문장들도 결국에는 회의를 통해 수정되었지만. 논문을 쓰는 내내 그렇게 자주 혼나면서도 그만하고 싶다는 말 한번 꺼내지 않고 논문을 완성해낸, 1저자인 석사과정 이혜민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과 같다. 논문의 마지막 문단이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 있고, 이게 뭐 새로운 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한 논문만을 바라봤던 시간이 쌓였기에 학술논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난 이런게 멋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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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해 출판된 기존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현재까지 이루어진 연구들의 내용과 주제를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필요한 연구들에 대해 제언하고자 했다. 과거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고 이를 치료하려는 인식이 지배적이던 시기가 있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지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비과학적인 편견이 만연해있다(김은경 & 권정혜, 2004).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제도적 차별에 노출되어 있으나, 이와 관련한 건강 연구는 본 연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적거나 부재한 상황이다. 성소수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We Are Everywhere)’가 말해주듯이, 성소수자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계속해서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며,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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