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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신문] 이 잔인한 수치 오류가 아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157

 

<이 잔인한 수치 오류가 아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유병률을 처음 확인했을 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데이터 분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싶어 통계분석을 다시 확인했는데 결과는 그대로였다. 2009년 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2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5명(50.5%)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다.

 

같은 측정도구를 사용해 진행된 미국의 한 연구는 1990년 1차 걸프전에 참여한 군인들의 22%가, 이라크 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군인들의 48%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쌍차 노동자들의 50.5%라는 수치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전쟁포로로 잡혔던 경험만큼 정리해고와 옥쇄파업에서 겪은 일들이 인간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그들은 그동안 어떤 시간을 견디어 내야 했던 걸까. 그들이 치러야 했던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그 잔인한 숫자가 오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쌍용자동차에서는 2009년 이후 26명이 뇌출혈로, 심장마비로, 당뇨 합병증으로 차례대로 죽어갔다.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두려움에 사람을 피하며 고립에 시달리던 이들이 삶을 스스로의 손으로 마감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에는 해고된 ‘죽은 자’와 그의 아내가 있었고, 해고되지 않고 공장에서 일하던 ‘산 자’도 있었다. 2009년 4월 발표된 2,646명의 정리해고 안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눴지만 결국 그 모두를 병들게 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혹독한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십수 년을 일한 회사에서 납득할 수 없는 해고통지서 한 장만으로 ‘죽은 자’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좌절과 얼마 전까지 함께 땀흘리며 일하던 동료들을 이용해 자신들을 ‘이기적인 존재’로 매도하게 만든 회사에 대한 배신에 가슴 아파하며, 경영부실로 인한 일방적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재취업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까지 감내하고 있다.

 

해고는 노동자를 병들게 한다. 수없이 많은 의학 논문들이 해고로 인한 생계곤란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 건강을 악화시켜, 심장마비, 우울증, 자살행동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이는 사망률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싸움은 해고로 인해 직장을 잃었을 때 기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그 짐을 해고자와 그 가족이 온전히 떠안게 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의학적으로 가장 위험한 상황은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못할 때다. 자신의 몸에 난 생채기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는 그 상처가 곪아 감염이 진행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방치되기 십상이다. 작년 초 KT에서 8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되었다. 그런데 너무도 조용하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는 상황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고용불안이 가장 극심한 나라에서 노동자 해고를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경제부총리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아프지만 그렇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는 TV로도 뉴스로도 그 고통을 만나지 못한다. 다만 각자 견디고 버티어 성공하라고 한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일상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이들의 귓가에 확성기를 틀어놓고 말한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굴뚝위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싸움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삶이 점점 더 불안해지고 그 고통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다. 이창근과 김정욱, 그리고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싸움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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