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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기고글.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0309.html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단식을 12일째 진행하고 있다(9월11일 현재). 쌍용자동차에서는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된 이후, 지난 6년간 무급휴직자와 해고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 28명이 숨졌다. 그중 절반인 1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업률 늘어나도 자살률 줄어든 스웨덴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 연구팀은 실업률과 자살률의 관계를 검토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2009년 의학저널 <랜싯>에 게재했다. 유럽 26개국에서 실업률의 증가가 어떻게 자살률에 영향을 주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그중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스웨덴을 비롯한 몇몇 북유럽 국가에서는 나머지 국가들과 달리 실업률과 자살률이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어 1991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자의 10%가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도 스웨덴의 자살률은 오히려 꾸준히 감소했다(그래프 참조).

연구팀은 그 주된 이유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Active Labor Market Program)에 대한 국가의 투자에 주목했다. 스웨덴에서는 노동자가 직장을 잃으면, 그로부터 30일 이내에 정부 고용지원센터에서 실업자를 위한 ‘개인별 활동 계획’을 작성하고 6주에 한 번씩 직업 트레이너를 만나서 구직활동 방향을 상담하도록 되어 있다. 실업자가 구직활동을 꾸준히 하는 동안, 지원센터 프로그램의 매니저는 기업과 협력하며 최근에 해고된 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기회를 찾아낸다. 직장을 잃은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래서 그들이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더 던진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스페인처럼 실업이 자살 위험을 증가시키는 나라에서 국가가 얼마만큼의 돈을 더 투자하면, 실업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에서, 1인당 100달러를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추가적으로 투자하면 실업률 1% 증가에 따른 자살률의 증가를 0.4% 낮출 수 있다고 보고한다.

물론 그 돈으로 해고노동자의 삶이 온전히 나아질 리는 없다. 더군다나 교육·의료·주거와 같은 삶에서 필수적인 재화가 보장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100달러의 추가적인 투자는 노동자의 삶에 매우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투자는 한 사회가 해고노동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자세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쌍용차에 국가는 무엇이었나

지난 6월, 2009년 해고된 뒤 6년째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제1065호 이슈추적 ‘공장으로 돌아가야 건강해진다’ 참조). 건강 연구자인 내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계속해서 발생한 자살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했을까. 그러나 연구를 하면서 질문은 달라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경로로 실업이 자살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그 과정에서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15명 중에서 6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32명(27.8%)이었으며, 정부의 고용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직장을 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명(8.7%)에 불과했다. 해고노동자를 위해 제공하는 정부의 구직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경력을 살리지 못한 채 여러 일용직을 전전해야 했다.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없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해고 결정은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고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했을 경우에 한해 이루어지도록 법은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결정에 핵심적 근거를 제공한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는 왜곡된 것이었다(민주노총 법률원·오준호 <노동자의 변호사들-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사건 10장면> 참조). 감사보고서는 2007년 69억원이던 쌍용자동차의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불과 1년 뒤인 2008년에는 5177억원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부채비율이 1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해 쌍용자동차는 정리해고가 필요한 부실기업이 되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해고자 중 고용센터 통한 재취업자 8.7%뿐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면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리고 1997년 1만4963명이던 정리해고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거치며 1998년 12만3834명으로 10배가량 급격히 증가한 이후, 아직까지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득중 지부장의 단식은 한국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노동자들에게 한 걸음 더 뒤로 가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이렇게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가 자신의 몸을 비우고 있다.

 

김승섭 고려대학교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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