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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3일째 생각

일을 그만둔지 이제 겨우 3일이 지났다.

겨우 3일이 지났는데 난 일주일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난 상황도 아니었는데

매일매일 나가던 어느 '곳'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더불어

벌써부터 떨어지지 않은 통장잔고를 걱정하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예비된 실직도 이렇게 막막하기만 한데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난 이들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문득 가슴이 아파졌다.

 

작년 서울지부에서 롯데호텔 룸메이드 지회 간부들이 해고당했다.

외환위기이후 아웃소싱되어 외주화 되어있던 룸메이드들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근무조건을 참지못해 노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몇몇 중심 간부들이 해고들 당했다.

 

오래도록 지속된 싸움에서 몇몇 해고자들은 다른 생계를 찾아나섰고

싸움의 방향이 법적싸움으로 정리되어갈 무렵

남겨진 조합원들의 탈퇴원서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의 나는 참,

제대로 싸움장을 지키지 않은 그분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안에서 해고의 불똥이 튈까 두려워 어렵게 만든 노조를

탈퇴하는 조합원들이 한심했다.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롯데호텔과 정부는 물론

당시 나는 내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은 해고자와 조합원들을

비판했었다. 비록 그 비판이 입밖으로 내뱉어진 말이 아닐지라도

함께 일을 하며 못마땅한 내 심경이 비쳐졌겠지....

기껏해야 집회준비나 문화제 준비를 도와주면서도 내내 툴툴대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참 무식했구나 싶다.

 

아마, 해고된 혹은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중에서

여성가장도 있었을 것이고 가르쳐야 할 자식도 있었을 것인데

고작 스스로를 책임지는것으로도 칭찬을 듣고 있는 내 처지에서

감히 그 분들에게 비판의 마음을 내세웠다고 생각하니

참 어렸구나 싶다.

 

몰랐다는 어렸다는 핑계로 이제와서 당시의 내가 품었던

비판들이 상쇄되리라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이제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을때 잘났다고

이러쿵 저러쿵 따지지 않고 함께 행동할 수 있겠구나 싶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경험들과 생각들이 쌓여

타인을 이해하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싶다.

작년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올해의 나는 너무나 쉽게 이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롯데호텔 룸메이드 , KTX  새마을호 여승무원,  이랜드 조합원들

모두 다 힘내시길. 당신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다른 한 편 싸움을 접고 또다른 길을 찾는 선택을 하더라도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으니 어느 길에서든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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