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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뇌(電腦)코일

다 봤으니 몇 자 적어 놓으련다. 


 하고 싶은 말은 칭찬, 칭찬, 칭찬 뿐이다. 정말 가진 게 많은 애니메이션이다. 연출과 작화 모두 흠잡을 데 하나 없고-흠 잡기는 커녕 감탄하기 바빴다-, 학원 코메디, 미스테리, 사이버 펑크 등 다양한 장르적 특징을 잘 버무려 놓은 데다가, 셋 중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어서 충실한 종합 선물 세트를 받는 기분이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것은 모든 요소 가 '전뇌 안경'이란 소재와 딱 들어 맞게 연결 되어서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전뇌 코일>>의 세계에선 정보 송수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일상 공간에 전뇌 공간을 덧 씌우고, '전뇌 안경'을 통해 그렇게 일상과 겹치게 전뇌 공간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캡쳐한 화면에서 보이는 미사일은 안경을 쓴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설정). 내겐 이 설정이 상당히 재밌었는데, 내가 다른 작품들에서 본 사이버 스페이스는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구분돼 있는데 반해 <<전뇌 코일>>에서는 이 두 세계의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뇌 코일>>은 이 독특한 설정을 마음껏 사용해서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는데, 학원 코메디의 성격을 갖는 전반부에선 주인공들의 모험을 '전뇌 안경'의 비주얼적 가능성을 통해 박진감 있게 묘사하고 있고, 후반부에선 미스테리 속에 소재가 던지는 인간학적인 질문을 잘 풀어내며 사이버 펑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전반부의 분위기가 취향에는 훨씬 맞긴 하지만, 후반부의 구성에 높은 평가를 주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인데, <<전뇌 코일>>은 소재에 함몰되지도, 그렇다고 진부한 인간학적 관점을 추상적으로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가 저런 문제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데, 두 개의 세계가 두 개의 액션 스타일을 낳을 뿐인 <<매트릭스>>야 말할 것도 없고, 의체와 네트를 통해서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논하는 <<공각기동대>>도 인용을 통해 17세기 유물론식 문제를 평면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두 영화에선 세계의 이원성은 그저 배경으로 놓여 있을 뿐 주인공들을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끌어 가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트리니티에 대한 네오의 사랑은 매트리스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결 같고, <<공각기동대>>의 네트는 미지의 공간일 뿐이다. 반면에 <<전뇌 코일>>은 소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위에서 <<전뇌 코일>>에선 현실과 가상 공간의 애매함이 다뤄진다고 했는데, 이야기가가 전개됨에 따라 아이들의 놀이터일 뿐이었던 전뇌 공간은 놀이 이상의 진지한 체험, 타인과의 소통의 공간이자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가상 세계가 인물들이 심리적인 갈등을 겪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삶의 공간으로 그려짐으로써, 단순한 배경이나 설정이 아니라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상 세계란 소재도 전적으로 드라마 내적인 과정 속에서 마무리된다. 작품의 후반부, 부모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 믿으라"며 안경을 뺏어갔을 때, 아이들은 "마음이 아픈 곳에 진실이 있다"면서 안경을 쓰고 다시 한 번 가상 세계로 들어가는데, 나는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기술의 진보란 인위성과 인간 영혼 또는 육체의 순수함이라는 대립적인 테마를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진보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한 주인공들의 감정이 전개의 구심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기술 변화가 초래하는 변화를 받아 들이며 새로운 문제에 진지하게 마주하려는 감독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안경을 벗지도 쓰지도 않고, 이마 위에 걸치고 있는데 여기서도 감독의 낙관적인 생각이 엿보인다. 그 낙관이 대책 없는 긍정은 아니란 것은 애니메이션을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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