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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해란 '현재의 현존' 그 자체에 제한되는 존재탐구가 아니라 타자로서 존재하고 있는
'나'를 위치짓게 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는 현존의 형이상학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만약 '나'의 본질이 부재와도 같다면 '나'는 결국 타자로서 존재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이것은 '부재의 현존'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에 있어 존재가 죽음을 본질적으로 숨기고 있듯이
리꾀르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존재의 형태들은 부재를 숨기고 있다.
(윤대선: 레비나스와 리꾀르의 시간 이해-타자성과 재현- , 해석학 연구 Vol 18. 48쪽)
글에 살을 붙이려고 리꾀르에 대한 논문들을 뒤적여 보다가 발견한 구절.
상호주관적 네트워크가 설립되는 지점에서, 불가능을 체현하는 것으로서의 주체라는 이미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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