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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01
    strike! strike! strike!
    flyaway.hy

strike! strike! strike!

오늘의 예정은 일찍 일산으로 올라가서 집안을 깨끗이 해놓고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래야지 룸메이트도 구할 것 같아서...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도루묵.

바로 철도파업 때문이다.

오늘 오전 10시 차로 표를 사두었던 나는 부랴부랴 기차 역으로 나갔더니 오늘 KTX는 3시 반 이후로 두 대를 제외하고 전부 취소가 되었단다. 그래서 3시 반 이후로 있는 기차표를 달라고 했더니, 이미 입석까지 매진. 그러니 어쩌겠어. 내일 있는 기차표 제일 빠른 걸로 달라니까, 내일도 아침 8시와 그 이후로도 두 대던가?  하나가 있다던가? 그래서 잽싸게 8시로 표를 구매해놨다. 내일도 못 올라가면 난리는 나는데.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온 몸에 온갖 무거운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던 나는, 거기다가 귀찮은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내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화라고 하기보다는 "화를 내지 않는 나의 상태"에 대해서 오히려 궁금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이 곳 버스 노선을 나는 모른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다.

며칠 전, 용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 놓여져있는 선전지를 보았다. 그나마 적은 인원으로 힘들었던 KTX 승무원들의 숫자를 두명으로 줄인다니(물론 기차 한대당) 당연히 승무원 노조는 일어설 수밖에 없지 않는가. 여객기 한대당 어탠던트가 몇 명이던가? 내 기억으로는 6명은 넘을 것이다. 그런데 KTX 승무원은 2명이라니. 거기다가 간당 간당한 계약직이니 당연히 이들은 파업으로서 자신을 알려야 한다.

물론 승무원 노조 뿐만 아니라, 기득권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은 결속하여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 그래서 파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정당성에 대해서 이야기들 하는데, 정당성은 누구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건가? 휴가 나온 오빠와 본 영화가 바로 무니치, 뮌헨이었다. 뮌헨 올림픽 사건. 정당성을 이야기하자면 누구의 입장에서 정당성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검은 7월단이 자신의 민족을 위해(여전히 탄압받는) 한 일이다. 만약에 어딘가로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이스라엘 정부도 신문에 터뜨리기 위해 일부러 폭탄을 썼다)는 자신들의 취지와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테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할 것인가? 이것이 테러라면, 우리나라의 위대한 열사들은 전부 테러범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기득권에 향한 감시견이 아니라 기득권의 개가 되어버린 언론은 끊임없이 머리 속에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 있다. 파업은 죄악이라고.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죄악이라고.

웃기고 있네!

파업이야 말로 기득권이 주도하는 파멸을 그나마 막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파업이(테러가) 목적이 되어선 안되지만, 이를 방법으로 사회 모순을 헤쳐나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대학에서 사회학 과목을 배우게 된다면 맨 처음 배우는 것이 바로 결속을 해체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건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을 이간질시키면 그 결속은 바로 해체될 것이며, 그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힘은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뻔한 일 아니겠는가. 돈이 권력이 되고 힘이 권력인데, 그나마 인원수로 몰고 갈 수 있는 쪽이 그 결속을 해체 당한다면ㅡ 참담한 결과만을 가지고 올 것이다. 언론은 그 이간질의 수단을 자처하고 있다.귀족노조 귀족노조... 우리가 노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언론에서 떠드는 정도? 그 정도 밖에 알 수 없잖아. 간접경험으로 모든 것을 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삼성은 귀족노조라고 얼마나 욕을 먹더냐? 그런데 삼성 SDI는 노조 단체를 형성하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 노조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롯데는 어떻고 CJ는 어떠드냐. 전부 노조 단체 형성 자체를 막고 있다.

언론은 어서 정.경과 헤어져야 한다.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점점 더 간접경험으로 밖에 세상을 볼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언론이 가진 위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용자들 역시 "권위에 대한 신앙심"을 해체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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