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끄적끄적

기본소득론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판적인데 통틀어서 얘기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 같다. 여러 논거들 중에서도 두 가지 지점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드는데 아직 충분히 검토하진 못했지만 일단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자면.

-어떤 사람에게 어떤 복지가 필요한지 따지고 집행하고 점검하는 비용이 불필요하게 많이 소모되어 복지제도의 강화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비효율적 시스템을 축소하고 '이를 화폐지급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자들 중에 같은 이유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질성을 기반으로 우파와의 협력을 통해 기본소득을 실제 제도로 정착시키자는 주장도 접할 수 있는데 이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복지제도에 대한 논의는 '돈'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얼마나 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한정할 수 없다. 그건 오히려 복지제도가 후퇴한 결과라고 해야할 것이다. 아무리 자본가 국가라 할지라도 복지제도를 통해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종류의 급진적 비판(국가권력 장악을 거부하는)과 기본소득론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본소득론에서 이러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국가권력의 문제는 삭제된 느낌이다. 한겨레21에 등장하는 어떤 논의들은 작은 정부와 내수촉진을 원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기본소득론을 주장하는 분들 중에는 기본소득 우파 버전을 경계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분들도 있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이 주장에 더 힘이 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국여성학회에 기본소득에 대한 시간이 있었는데, 토론자로 나선 분이 "임금소득과 기본소득이 5:5가 되면 성별분업(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성별위계였을 수도)에 엄청난 균열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반응이 좋지 않았다. 플로어에서 한 분은 '기시감이 느껴진다'며 비판했는데, 아마도 성별권력의 문제를 여성들이 임금노동에 진입하지 못하는 데에서 주로 찾은 과거 상당수의 좌파들의 논거와 유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득이 성별권력에 미치는 영향이 없지 않겠지만 엄청난 균열에 해당하는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은 월 30만원 기본소득을 받으면 임금노동관계에서 자본을 거부하거나 자본에 저항하는 힘을 노동자에게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해 다루지 않거나, 아니면 그것을 소득에 의해 필연적으로 변화될 것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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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23:07 2014/06/07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