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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근무하는 한 친구가 차를 샀다. 차에서 들을만한 노래가 없다고 해서 나보고 노래를 CD로 좀 구워달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노래를 골라보았다. MP3로 다운받아 둔 노래가 별로 없어서 가지고 있던 CD를 복사하다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이왕 시간이 많이 걸린 김에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한 번 모아보기로 했다. Favorite라는 이름의 폴더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 노래를 모아보니, 모아둔 한곡한곡마다 사연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난 어떤 노래를 듣다보면 과거 어느 시절에 묻혀있던 한 순간이 불현듯 떠오르는 경험들을 한다. 예를 들어 난 심신의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줄창 들었던 중학교 수학여행 때의 버스 안이 생각난다. 뿐만 아니라 강산에 <그래도 9월이다>라는 노래를 들으면 암울했던 2000년의 봄 그리고 여름이 생각난다. 실연의 상처로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서 매일매일을 술에 쪄들었던 그해 봄과 여름. 난 그래서 그해 9월을 그렇게 기다렸던 것 같다. "생각난다"라는 표현은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 몸으로 느낀다고 할까. 난 강산에의 그 노래를 들을 때 그 노래를 듣던 과거의 그 시간의 경험이 그대로 되살아남을 느낀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어 뒤척거릴 때 느껴지던 자취방의 더러운 이불들의 촉감, 머리 맡에 놓아두고 마시던 이온 음료의 맛 등등.....<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장면과 흡사한 경험이랄까.
이런 면에서 Favorite 안에 모아놓은 노래들을 듣는 것은 결국 과거 기억의 한장면, 한장면을 되새기는 경험인 듯 싶다. 재미있는 건 살다보면 그 폴더 안에 새로운 곡들이 추가된다는 거다. 또 새로운 추억들이 생기고 그 추억만큼 노래도 늘어난다. 얼마 전에 임관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군악대에 저녁마다 들러서 후보생들과 함께 밴드 연습을 한 적이 있다. 훈련소라는 삭막한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밴드 연습을 하며, 후보생들과 함께 재미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난 내가 <브레스트 오프> 에서 지휘자 역할을 했던 피트 포슬스웨이트가 된 듯 했다. 날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은 날 슬프게 만들었지만, 밴드 연습을 하러가는 그 시간만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후보생들의 연주가 그럴 듯해질 때마다 난 내가 직접 연주를 하는 것마냥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임관파티를 할 때 그 밴드가 다른 후보생들의 환호를 받을 때 난 나름대로 가슴이 벅찼다. 그때 후보생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윤도현의 <잊을께>였다.
한 4년 전만 하더라도 난 윤도현을 열광적으로 좋아했었다. 대학 졸업할 때쯤에 맘 맞는 형들과 함께 자주 가던 라이브 술집을 빌려 졸업기념 공연을 했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들이 주로 <가을 우체국 앞에서>나 <너를 보내고> 등등의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윤도현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가벼워진듯하고, 말랑말랑해진 듯도 하고... 2집 때의 치열함이 없다고나 할까. 그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은 개나 소나 좋아하는 가수가 된 데 대한 아쉬움도 있고. 그래서 비교적 최근의 곡인 <잊을께>를 내가 좋아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후보생들과 호흡을 같이 했던 기억들이 남아서 그런지, 그 노래를 듣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아렸다. 이미 임관해서 이곳을 떠나버린 그 녀석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해서.
그러고 보면 꼭 좋은 노래라고 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닌가 보다. 별로 좋지 않은 노래라도 오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자주 부르고 있는 군가들도 아마 나중에는 오래 기억에 남을 듯 싶다. 땀에 쩌들었던 빨간 모자와 입안을 금방 버석거리게 만드는 연병장에서 피어오르는 먼지들과 그리고 목이 쉴대로 쉬어 금방이라도 죽어갈 듯한 처절한 목소리로 귓청을 때리던 후보생들의 음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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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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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 '자취방의 더러운 이불들의 촉감, 머리 맡에 놓아두고 마시던 이온 음료의 맛 등등' 정말 리얼하게 몸으로 느껴지는 걸.ㅎㅎ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