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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새벽
새벽 네시에 깼다 어제 저녁 8시부터 잠이 들었던 탓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시차적응에 성공한 것 같다. 주섬주섬 아이패드를 챙겨 호스텔의 라운지로 내려가 밀린 잡무를 처리하고 나니, 어스럼히 밝아오는 새벽의 뮌헨 거리가 나를 유혹했다. 수염이 수부룩한 호텔의 종업원에게 '지금 밖은 위험하니?'라고 물었더니 그는 위험할법 하냐면서, '대인저! 대인저!' 하며 오히려 놀린다. 두 손을 번쩍 쳐든 모습에 나도 피식 웃는다. 3년전 다녀왔던 중남미에서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꼭 호텔의 철문 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곳은 독일. 열명중 8명이 총을 들고다니던 엘살바도르도, 맨발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잠을 자던 니카라과도 아니다.
대충 옷을 챙겨입고 아직은 추운 뮌헨의 새벽거리로 나섰다. 뮌헨의 거리는 여전히 낯설고 복잡하다. 거리를 보수하는 사람들, 식당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중앙역의 빵집들은 벌써 진열장 가득 샌드위치를 내놓았다. 빵집이 많아서, 이곳저곳 살피며 가격을 체크한다. 승강장에 들어서자, 막 도착한 기차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나는 독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뮌헨'하면 떠오르는 것은, 전혜린? 뮌헨 올림픽? 정도가 전부다. 때문에 뮌헨의 시내를 돌아봐도, 어 저거.. 미술사책에서 봤는데? 정도의 건축물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뮌헨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고, 또 내가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왔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텐데.
그러나 다음에 다시 뮌헨에 올수 있기를 바랄뿐, 오늘은 어서 다음 도시로 떠나야 했다. 우리의 목표는 퓌센. 로만틱 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우선 퓐센에 도착해야 했다.
아, 관광을 목적으로 뮌헨에 가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뮌헨에는 자전거 투어가 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관광지를 돌며 해설사에게 해설을 듣는 투어인 모양이다. 가격이 얼마인지, 어디서 시작하는지 모르겠지만. 꽤 재미있어 보였다.
부자동네, 슈타른베르크
퓌센은 뮌헨의 남쪽, 알프스 산맥의 아래 위치한 도시(인듯하)다. 여행에 필요한 몇가지 물건을 산 우리는 우선 뮌헨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 중에 슈타른 베르크에 가기로 결정했다. 날씨는 맑았고, 슈타른베르크로 가는 자전거 길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가득차 있는 forstenrieder 공원을 지나며 우리는 정오의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를 부러운듯 힐끔거렸다. 공원은 왠만한 도시보다 컸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거의 15Km는 달렸던 것 같다. 무릎이 조금씩 아파올때 즈음 잔잔하고 평화로운 호수 슈타른베르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의 Starnberger see에는 이미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한 가득이었다. 도시와 가까운 호수가에는 약간의 쓰레기도 떠다니고 사람들도 많아서 물도 꽤 더러웠지만,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곧 "수정처럼 영롱한" 물결이 찰랑이는 맑은 호수가 보였다. 호수의 잔잔함에 감탄하기도 잠시, 곧 으리으리한 부자동네가 나왔다. 달리면서 만났던 집 전부가 단정하고 예뻤지만 슈타른 베르크의 집은 무언가 달랐다. 차고가 다섯개라든가, 마당이 마당이 아니라 그냥 벌판이라든가, 이것은 집이라기보다 오히려 저택이라고 불러야 할것같은. 척 봐도 비싸보이는 차는 물론이고, 하여간 그냥 으리으리했다. 잘사는 독일안에서도 진짜 부자동네에 들어선 것 같았다.
호수를 빙 둘러쌓고 있을 줄만 알았던 우리의 자전거도로도, 어느 부잣집의 사유지점거(?)에 의해 막ㅎ혀버렸다. 어쩔수 없이 다시 찻길로 나가 달리길 잠시, 호수의 풍경이 아쉬웠던 우리는 기회를 틈타,, 호수의 자전거 도로가 다시 시작되는 듯한 지점이 보이자 냉큼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럴수다. 이제 영원히 우리의 것이리라 생각했던 자전거도로는 안전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이 또한 어느 대저택의 사유지 주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조망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어쩔수 없이 우리는 다시 찻길을 향해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고 말핬다.
그나저나, 왜 부자들은 높은 곳에 살고 싶어하는 걸까? 부들부들 떨려오는 내 무릎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거기에 부자동네라서 그런지 슈퍼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진작에 떨어지고 물을 사야했지만 슈퍼가 없었다. 목은 마르고, 물은 없고, 간절히 나타나길 바라는 슈퍼는 오르고 올라도 보이진 않으니, 양 옆으로 펼쳐진 화려한i 대저택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어쩔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를... 20분쯤 흘렀을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있던 카페에서 맥주한잔.
정상에는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작은 레스토랑 하나가 문을 열고 있었다. 종업원이라곤 칠십은 되어보이는 느림뱅이 할아버지와 오십대정도로 보이는 활기찬 할머니밖에 없던 그 레스토랑은 단체 관광객이 막 휩쓸고 나간 모양인지 어딘가 어수선했다. 할아버지는 춤추는 듯 느리게 움직이며, 사람 없는 테이블의 빈 접시들은 치우고 있었다. 더운날 일본을 여행하던 중 마신 맥주 한잔에 취해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겨우 올라온 언덕에서 주어지는 상금같은 맥주한잔의 유혹을 어떻게 내가 뿌리칠 수 있을까? 거기에다 캠프사이트까지 앞으로 십오키로 남짓 남아있는 상황, 힘을 내서 더 달려가기 위해서 휴식이 필요했다. 우리는 주저없이 주스와 맥주를 주문하고 말았다. 맥주?! 상상했던 만큼 맛있지는 않았지만, 한 모금 홀짝일때마다 취기가 오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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