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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 슈지는 어디로 간걸까?

* 이 글은 cine21<피와 뼈> 입북 환송식 장면 삭제한 채 개봉 에 관련된 글입니다.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는 꼭 극장에서 보고싶은 작품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최양일 감독의 연출작을 극장에서 볼 기회다!하는 생각도 있었고, 꽤나 훌륭했다는 기타노 타케시의 연기를 보고싶기도 했다. 줄거리나 뼈대가 되는 인물 설정도 상당히 흡인력이 있어 보여, 오랫만에 힘있는 작품을 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연자들의 면면에 끌린 면이 크다. 결과적으로도 이 영화는 재능있는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할만 하다.
(한동안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설렵하다 보니 배우들이 착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괜찮은 내용과 연출력으로 이 정도의 캐스트를 요리한다면 정말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피와 뼈]는 전후 일본에 건너간 재일한국인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의 일대기로, 이 김준평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내키는 대로 살다 간 사람이다. 후반에 이 인물을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대사를 들을 수 있는데, 사실 일본에 뿌리박힌 '괴물(몬스터? 이 분야의 대표적 인물은 만화'몬스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에 '괴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지만...)'의 이미지와는 좀 다른,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랄까... 기타노 다케시의 코멘트 중 "의외로 순진한 인물"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여하튼, 돈과 섹스에만 탐닉하면서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인데, 이 인간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부인 이영희 (스즈키 쿄카), 아들 마사오 (아라이 히로후미) 딸 하루짱 (타바타 토모코), 사생아 다케시 (오다기리 조), 조총련 커뮤니티의 여러 인물들 (이 중에 중요한 인물로는 사회주의자인 찬명이 있다.)
역시 재일한국인이었던 양석일의 원작에는 김준평이라는 인물의 삶이 전후 일본, 특히 조총련 커뮤니티의 흥망성쇄(?)와 긴밀하게 엮여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대부분이 생략된 채로 인물만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감독은 두 시간으로 줄이면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원래 관심사가 정치-사회적 문제 보다는 인간의 문제라고도 하는데,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나름의 효율적 긴장을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빛나는 여러 배우들 중에서도 영화가 끝나고 난 이후 까지 찜찜하게 남아있었던 배우는 카시와바라 슈지. 그는 이와이 슈운지가 만든 [러브레터]의 순정만화 속 주인고 같은 남자배우로 한국에서도 한때 꽤 인기를 끌었던 카시와바라 타카시의 동생이다. 형 보다는 훨신 부드럽게 생겼고 표현에도 여유와 유연성이 있다. 슈지의 역할은 찬명인데, 재일조선족 커뮤니티의 일원이자 지식인이고 사회주의자이다. 동생의 표현으로는 남성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캐릭터랄 수도 있는... 모범(해방을 위한 모범이랄까?)적이고 지적인 전후 지식인의 모습으로 슈지는 꽤 어울리는 배우였다.


그가 가장 빛나던 순간은, 불단에 대고 "나무아미타불"을 외면서 김준평이 죽기만을 바라는 이영희에게 "해방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요"라고 슬쩍 한마디를 건네며 미소짓는 장면이었다.
김준평의 어묵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나, 일본공산당의 일원으로 파출소 방화사건을 주도하다가 감옥에 다녀온 이후 까지도 하나짱과 로맨틱한 감정을 교류하고 있었으면서 한번도 제대로 표현도 안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는데,

그나저나, 문제는, 하나짱이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이영희는 암에 걸려 버리는 등 일가족의 상황이 변화하는 와중에 갑자기 이 인물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혼의 결심하기 이전의 하나짱과 암을 발견하기 전의 이영희의 대화에서도 "이혼하고 돌아와도 돼. 찬명도 있고..."라는 식으로 언급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엔가 슬그머니 사라져서 하나짱의 장례식에도, 이영희의 장례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슈지는 어디로 간걸까?"라고, 동생과 함께 영화가 끝난 뒤에도 궁금해했었다. 우리가 슈지를 좋아하니까 특별히 궁금해했던 걸까? 꽤 중요한 인물인데 (화면에 등장하고 있던 시간이나 인물의 특수성에 있어서) 이런 식으로 처리해도 되나? 하고...

그러다, 씨네21 토막 기사를 통해 슈지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성대한 환송식을 하면서 북한으로 떠난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수입사에서 이 장면을 완전히 들어낸 채 극장에 걸었기 때문에, 찬명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사라진 꼴이 된 것이었다.
그 장면이 남아있었더라면 최후의 김준평이 북으로 떠난다는 설정도 덜 어색하고, 하나짱이 더 이상 삶에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자살한 데에도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었을텐데...
기사에서 인용한 수입사의 입장은 애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러저러한 말못할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인공기와 인민들의 환호, 조총련 커뮤니티의 파워(?)를 묘사하는 장면을 담아서 개봉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리라는 짐작 쯤은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캐릭터 하나를 바보만드는 이런 결정을 수입사에서 자의적으로 내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기가 찬다.

뭐, 이렇게라도 슈지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게, 감독이 그렇게 영화를 막 만들었으랴. TV 드라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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