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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보다.

* 스포일러가 있는 게 확실합니다.

 

"어때, 재미있었어? ... 어... 응? 씁쓸해? 뭐? 반미영화라고?"

 

지난 일요일, 영화 '괴물'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 한강대교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들은 전화 통화 내용.

누군지 몰라도, 영화의 성격을 참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설명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많이 기대는 했지만, 사실, 일가족이 한강 지하도를 헤매며 납치된 소녀를 찾는 스토리, 혹은 괴물과 정면대결하는 소시민들 이라는 예상 정도 밖에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위의 상황을 위해서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보통 블럭버스터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현재, 이곳을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이 담겨있달까.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면서도, 사회적 긴장감을 놓지 않고, 유머와 해학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면서 짜임새있는 상품을 만들어 낸 감독에게 박수를...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전작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이지만, 그만큼 신경 쓸 것들이 많았을텐데 이만한 디테일과 마무리를 생각하면, 아무 관계 없는 나 조차 뿌듯한 느낌.

정말 성실하게 만들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고 나서 영화 안팎으로 이렇게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도 최근 흔치 않았다.

 

한국 소시민 재난 영화

 

현재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중산층 이하 소시민이 당할 수 있는 재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구체적으로는 최근의 수해로 인한 피해에서 부터 추상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민생파탄 까지, 어떤 지역에서는 갑자기 미군 기지 확장해야 한다고 기껏 일구어 살던 땅에서 나가라고 하지를 않나, 어떤 지역에서는 새 집 지어 팔아야 한다고 그나마 등 붙이고 살던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를 않나.... 싸고 입에 당기는 거 아무거나 먹고 살면 아토피 걸리고, 학교, 아니 대기업에서 주는 급식 벅고 천명 단위가 한번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고... 아니, 멀쩡할 줄 알았던 백화점이 무너지거나 한강 다리가 뚝 끊어지거나 지하철에서 불이 나거나 도심 한복판의 가스관이 터지는 일들도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합동분향소는 너무너무 익숙한 풍경.

한국사회에서,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라는 한 가족이 겪을 수 있는 재난이란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지만, 감독은 스케일을 크게 가져가서, 괴물의 습격이라는 아이템을 정해버린다. 그것도, 미군이 한강에 무단불법투기한 유해물질로 인한 돌연변이 식인 괴물의 습격. 괴물이 대단하지도 않은 박씨 일가만 집중 공격할 리 없을 터, 한국사회 전반은 이 괴물로 인해 크게 동요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뭐, 사실 동요하는 건 한국 사람들이지만, 발끈 하고 껀수 잡고 괜히 나서서 처리하고픈건,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일 터, 괴물에 괴 바이러스가 있다고 선동하고, 미디어가 이를 그대로 확대재생산하면서 대중의 공포와 소극성을 조장하는 동안, WHO와 같은 국제 기구를 동원한 미국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총력전을 위해 군대와 생체무기를 한국에 도입하게 된다. 근데, 알고 보면, 바이러스는 원래 없었던 것인데, 미국은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멈출 수는 없고, 무기는 써야겠고... 대중적인 저항이 조직적으로 표출되긴 하지만, 묵살하면 그 뿐... 나중에 들키면, 우리 탓은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 뿐... 아, 너무너무 어디서 본 장면들이 아닌가. 어찌 보면 너무 뻔하고 유치한 비유법이지만, 가슴 벌떡이는 긴장감 속에서 줄곳 끼어드는 이러한 맥락은,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보기 편하면서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씁쓸한 내용들이다.

 

한국형 액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박씨 가족 일가이지만, 그리고 이들이 흔한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 구조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가족'의 이미지 만으로 설명을 하기엔 뭔가 미심쩍다.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에서 가부장이 장렬히 전사하고 나면, 현실 세계에 남건 개성있는 삼남매. 그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액션(의 비주얼과 타당성)을 선보인 두 사람이 있었으니, 과히 한국형 액션 영웅이라고 할 만한, 운동권과 양궁 선수, 화염병 던지는 사람과 활 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각종 국제 대회의 금메달을 남김 없이 줄줄히 엮어 오는 낭자군단(!)을 현실의 재난 상황에 던져놓은 것도 대단한 발상이지만, 거리에서의 투쟁과 수배 생활에 찌든 (과거) 운동권의 능력을 액션 영화로 재발견(?)한 것도 참으로 본 적 없는 시도랄까. 십수년 만에, 화염병 던지는 인물의 클로즈업이 필름에 담긴 장면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보면서, 이것 참, 웃어야 할지, 기분나빠해야 할지, 찜찜한 기분.

그나저나, 칸느에서 그렇게 좋아했다던 해외 관객과 언론들은 도대체 이 인물을 어떻게 파악한 것이었을까? 이렇게 숨고 도망가고 전투하는 능력에 단련될 수 밖에 없었던 80년대 운동권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었을지...

 

 

 

결국 괴물은 무엇인가

 

사실, 이놈도 불쌍하다.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쓰리디로 매끈하게 만들어진 그 생물이 악의 화신이라거나 증오의 대상이 되기는 쉽지 않다. 배고프고, 외롭고, 지치겠다... 오바이트 하는 괴물, 등 돌리고 졸고 있는 괴물을 보고 있으면 약간의 연민도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실, 니놈이 무슨 죄가 있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등, 신파영화의 관용구도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렇다면, 평범한, 아니 평범을 넘어 비루하기 까지 한 인생들을 무시무시한 괴물에 맞서는 투사로 거듭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볼 때는 감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미국. 혹은 미국과 그의 친구들, 비루한 인생들의 일상과 희망을 발톱의 때 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논리와 존재 조건을 향해 무식하게 돌진하는 세력들.

 

대중의 움직임이 아쉽다.

 

물론, 모든 것을 담아내기는 힘들었고, 그럴 생각도 아니었겠지만,

괴물의 존재를 맞닥드린, 아니 괴물의 존재가 드러나고 난 뒤 미국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어이 없는 대응에 직면한 대중들의 분노와 저항을 충분히 담아 내지 못한 것은 너무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나쁜 놈들의 나쁜 짓은, 짧지만 강력하게, 특유의 연출 감각으로 충분히 전달된다. (사실, 영화를 본 사람들 끼리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면은, 비싸게 주고 만들어 온 괴물의 모습도, 인기 배우들의 액션 장면도 아닌, 군경에 붙들려 아무 근거 없는 뇌수술까지 받았던 송강호가 바이러스가 들었다는 자기 피를 무기로 수술실에서 탈출하던 순간, 송강호가 갖혀 있던 컨테이너 박스 밖에서 바베큐를 구워먹고 있던 미국들의 모습이 담긴 신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저항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꽤나 피상적이고 의무적이라는 느낌. 거기 까지 고민하기엔 감독의 경험도 상상력도 신뢰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을까.

 

여하튼, 꽤 되는 영화

개봉 첫 주말,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내면서, '괴물'은 수치로 이야기되는 영화가 된 느낌이다. 제작 초기에는 스타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데코레이션 된 신비한 영화로, 칸느 이후엔 세계 언론이 격찬하는 좋은 영화로, 그리고 개봉 직후 까지의 마켓팅에서는 최고의 기술이 동원된 힘들지만 뿌듯한 영화로, 그리고 이젠 어마어마한 관객을 동원하는, 안보면 소외되는 영화로...

뭐,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다. 단지 납량특집으로도 충분히 기능을 할 만한 영화니까. 그리고 그걸 넘어서는 약간의 고민과 인식을 쉽게 던져준다는 점에선 좀 더 낫다는 생각이니까. 상당히 안전하고, 겉핥기에 불과할지라도, 보는 동안 상당한 설득력과 공감과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에선 확실하다.

많은 대중들과 만나는 상업 영화들이, 이정도의 사회적 인식은 가지고 있어야 재미도 있고 흥행도 되고 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쉬리 이후 기본적으로 흥행이 되려면 남북관계에 대한 시각 쯤은 깔아주고 가야 한다는 정설도 생기긴 했지만, 지속적로 한국 현대사회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담아온 봉준호의 인식은 강우석 보다는 훨신 세련된 것이 확실하고, 사회적 감각을 살짝 놓은 듯 한 박찬욱 보다 성실하게 보이는 관계로, 벌써 부터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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