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소개된 <캔디캔디>와 그 애니메이션의 열풍에 힘입어 한국 순정만화의 독자층과 그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리고 뒤이어 <베르사이유의 장미> <유리가면> 등의 해적판이 소녀들의 손아귀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맛을 본 소녀들은 더 많이 읽기를 원했고, 그 틈을 타고 해적판 및 일본소녀만화의 번안물이 그녀들의 손에 쥐어졌다. 80년대 ‘순정만화’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최초로 전유한 자신들만의 욕망을 위한 매체이자 장르, 혹은 욕망의 구조물이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순정만화는 어디쯤 있을까?
(Caution: 여기에서 제공하는 순정만화의 다이제스트는 몇몇 대형 히트작들을 완전 무시하는 등 편향된 시각과 무례한 요약, 일방적인 오독으로 가득 차 있음)
80년대 - 최초의 순정세대, 그리고 최초의 ‘여성’ 세대
80년대 중반, ‘온전한 자신의 창작 이야기’로 데뷔한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 창작순정물의 시대가 본격화된다. 이 작가들의 이름은 김혜린, 김진, 신일숙, 강경옥 등이다. 그렇게 일본 소녀만화와 독립된 한국 순정만화가 본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이때 순정만화 소비자들이었던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80년대 초·중반에 이런 만화들을 읽고 자란 소녀들이 지금의 30대 초·중반이다. 당시의 소녀들은 한국에서 ‘대량으로 직장여성이기 시작한’ 첫 세대였다. 동시에 이들은 ‘엄마로서 소비하기’, ‘주부로서 소비하기’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가지고 떳떳하게 소비하고 행동하기를 막 처음 시작한 세대였다. 그녀들이 대학에 들어갔던 시기에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즉 이 세대들은 ‘엄마와는 다르게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이 새로운 여성들을 만족시켜줄 문화상품은 당연하게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소녀만화가 그들의 욕망의 대리물이 되었다. 이 작품들의 도래는 잠재된 수요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빅뱅.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렇게 ‘순정만화’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최초로 전유한 자신들만의 욕망을 위한 매체이자 장르, 혹은 욕망의 구조물이 되었다. ‘순정만화’는 사회진출을 시작하는 여성들과 기대와 불안, 그리고 욕망의 행보와 함께 맥동하고 있었다. 진취적인 소녀들은 선행자 없는 자신의 불안한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자각하고 있었고, 그들이 나이가 들고 지식이 성장함에 따라 순정만화라는 장르도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아갔다.
한국 순정만화의 역사에서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신이 독자와 함께 성장해나가면서 ‘여성만화’로서의 역할까지 포용해나가는 진취적이고 아름다운 보기 중 하나이다. 그리고나서 순정만화는 다시 ‘소녀만화’로서의 속성으로 회귀하게 되지만. 좌우간 그 대목 중 몇 가지를 확인해보자(내 맘대로).
혁명순정물 대가 김혜린, 천재 김진의 대가족 잔혹사
김혜린은 83년 <북해의 별>을 위시한 일련의 작품으로 순정물 고유의 로맨스와 현실 사회변혁의 열정이 뒤섞인 경계에서 양쪽 다를 잡아내며 자신만의 사회파 순정물을 이끌어냈다. <북해의 별>을 당시의 운동권 학생들이 돌려 읽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한참 정국이 시끌시끌하던 88년에 ‘르네상스’에 연재한 <테르미도르>와 그 차기작인 <비천무>는 김혜린 미학의 완성이었다. <비천무>의 작화와 시가(詩歌)의 인용들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인물들이 관통하는 사회적 현실과 비참함은 한국의 현실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미리 말해두지만 영화와는 내용이 크게 다르다). 80년대 후반, 그 시기에 못사는 사람들의 혁명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었다.
김혜린이 대가라면 김진은 천재였을 것이다. 대하판타지이든 소박한 가족물에서든 김진은 한국형 대가족 내부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질서의 균열과 파멸을 노래했다. 그의 만화에서 아버지는 폭력적인 가부장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와 반목하고 가족들은 그 사이에서 공포와 증오, 자폐적인 심리를 담은 눈으로 이를 목격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살육과 몰락이 펼쳐지고 절대로 그 폭력을 멈추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의 광증이다. 게임화가 되기도 한 <바람의 나라>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신들의 황혼>)나 이탈리아 갱단(<밀라노… 11월>)에서부터 고구려 상고사(<바람의 나라>)까지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이러한 주제의식을 변주하고 펼쳐내었다. 최근 <밀라노… 11월>이 재간되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절판이 되기 전에 구할 것.
대화하는 강경옥, 한국 야오이의 선구자 이정애
강경옥이 86년 <이 카드입니까>으로 데뷔한다. 강경옥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넌 왜 나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왜 지금은 또 나를 싫어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그리고 납득하는 것이다. 강경옥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90년에 완결된 SF판타지인 <별빛 속에>이다.
강경옥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강경옥의 어두운 점과 밝은 점을 모두 아우른다. 어두운 점이라면 영화화가 거론되기도 한 <두 사람이다>와 같은 최근의 공포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항상 독백하고 생각하며 ‘내면의 필터‘를 거쳐서 사건을 받아들이는 강경옥의 인물들은 90년대의 순정만화의 경향을 미리 예시한 셈이었다.
86년에 데뷔한 이정애의 작품에서는 남성 캐릭터들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철학과 신학 등 현학을 내세우며 신과 인간이 반반씩 결합된 반신반인이다. 그들의 정념은 종교적 순수와 지식욕과 동일시된 플라토닉 러브의 변종이다. 지금과 같은 의미에서의 본격 야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정애를 한국 야오이물의 선구자라고 평하는 것은 무리없는 일일 터이다.
94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이정애의 대표작 <열왕대전기>로부터 이러한 면모를 본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물로 시작해서 구세주와 적 그리스도의 대결을 그린 이 종말론적인 작품은 명실공히 컬트의 반열에 오르며 확고한 지지층을 결집하게 되었다. 이정애의 또 다른 걸작인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의 경우 심의의 제재에 의해 몇 장면이 수정되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 순정만화가 예술적으로 커나가는 방향에서 기존 만화에 대한 인식과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쉽지 않은 소재를 자신만의 개성과 주제의식으로 완성도 있게 풀어나간 뛰어난 작가였다.
90년대 -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작가들의 등장
댓글 목록
지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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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 마지막 나온 지 한달 되었습니다.부가 정보
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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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몰랐어요. 죄송...*--*빨리 가서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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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b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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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드디어 마지막이 나왔단 말이에요? 이럴수가!!!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