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영상으로 운동하기

            이런 종류의 글쓰기는 마치 늙은 퇴기의 회고담같다. 또는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벼락스타의 스포츠지 연재물, ‘뜨기까지의’ 고생담 같다. 따라서 매우 곤혹스러운데, 첫째 (황지우시인의 ‘늙기 전에 죽자’를 경구처럼 떠받드는) 나는 아직 ‘충분히 늙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직 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분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주어지는 기회를 통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로 글쓴이가 새로운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글쓴이가 갑자기 ‘비디오액티비스트’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 보인 반응은 ‘이게 뭐야’였다. 다시 ‘영상미디어운동가’라고 고쳐 말하니 ‘그걸로 운동이 되냐’란다. ‘문학운동’, ‘학생운동’을 함께하다 글쓴이가 ‘정보통신운동’, ‘청소년운동’ 등등을 거치는 동안 길을 달리하긴 했지만 친구들이 이렇게 ‘무식해 졌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곧 나는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나 결혼식 비디오를 가끔 돌려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낄낄거리는 것이 영상문화체험의 전부인 것을 내가 생각 못한 것이다. ‘네가 그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결혼식 비디오를 찍겠다는 거도 아닐 텐데 너 하는 꼴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글쓴이가 동료들과 ‘광주영상미디어센터’라는 간판을 내걸자 십시일반 했던 고마운 동무들이다.

그러나 친구들의 이 말이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말속엔 ‘광주에서?’라는 뜻이 담겨있음도 알게되었다. 광주의 문화정책은 전통적인 예술장르에 집중되어 있어 새로운 무엇을 시도하는 것이 어려운 조건이다. ‘광주에서 비디오로 운동을 한다.’ 이게 내가 아직 뜨지 못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사파티스타의 마르코스가 새삼 일깨워준 것처럼 ‘말은 우리의 무기다’. 이는 문학청년이던 시절부터 내내 추구하던 바다. 따라서 나에게 남한 변혁운동의 몰락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부터 온 내재적인 원인 때문이었으며, 정보통신-커뮤니케이션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인터넷에 진보적인 방송국을 만들면 어떨까 등등의 공상만 일삼던 시절이었지만 미디어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하던 시절이었다. 대안교육과 청소년운동에 관심을 갖던 내가 갑작스레 영상미디어운동으로 선회한 것도 이 ‘말’ 때문이었다.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면, 1998년은 남한 청소년들이 영상으로 자신들의 ‘말’을 시작한 때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고딩영화제’와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가 맹위를 떨칠 때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던 나는 곧바로 ‘청소년영화모임 출아’를 조직했고 이를 통해 이제 영상이 청소년에게뿐만 아니라 우리모두에게 ‘말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특히나 2000년에 있었던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영상프로그램은 지역민을 대상으로 초보적인 영상제작교육을 시켜 그들이 직접 영상물을 제작하게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운영팀으로 참가했던 나는 시민들의 영상창작 욕구에 놀라고 영상을 다루는 그들의 솜씨에 놀랐다. 수강생들이 제작한 23편의 작품을 상영하면서 영상운동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민이 영상으로 자신의 발언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제적, 기술적인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으로 장비의 가격과 기술이 낮아졌다지만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기관과 무엇보다 장비가 필요했다. 영상미디어운동이 ‘영상예술센터 건설운동’으로 집중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궁극적으론 21세기 공공문화인프라의 핵심인 미디어센터가 세워져야 되겠지만, 우리의 문화정책이 산업적 마인드에 기반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서울의 ‘미디액트’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글쓴이는 도무지 공무원들의 마인드를 믿을 수 없어서 ‘독립’미디어센터를 만들었다. 꼭 공무원들의 마인드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역영상운동은 많은 문제들에 봉착해 있다. 창작의 문제, 교육의 문제, 시설․장비의 문제와 돈벌이와 오락, 또는 예술로만 대접받고 있는, 그래서 미디어가 될 수 없다는 온갖 편견들 등이 있다.

이쯤에서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사람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라고 한다면 진실성이 있어 보이나? ‘재미있어서’라고 한다면 ‘마누라’한테 저녁밥 얻어먹길 포기해야 할텐데! 글쓴이는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 며칠을 보낼 것이다. 어찌됐건 나는 아직 ‘충분히 늙지’ 않았으므로.

 

아마, 2004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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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01:38 2006/04/1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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