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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 intro

  파리를 여행해 본 적이 있어? 혹자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도시로 수백년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옛날에 그 도시를 만들던 사람들이 수백년 후의 교통 혼잡을 예견하고 큰 길들과 방사형의 계획적인 도로망을 갖추어 놓은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더라. 글쎄. 수백년전의 파리를 걸어보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중세나 근대 초기의 도시들이 대개 그러하듯 아마 세느 강에는 썩은 폐수와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시가지를 이루고 도시 곳곳에는 공장들과 슬럼들, 시궁창들이 즐비한 그런 풍경들을 아마 그런 길을 걷게 될 거야. 물론 그때 역시 거리에는 쓰레기들과 개똥들이 굴러다니겠지만.

 

감이 잘 안오지?

 

뭐 봐도 모르겠다. 가 본 적이 있어야. 사실 서울도 잘 몰라. (갑작스런 푸념모드)

 

  이러한 파리의 모습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 3세이고 그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 사람이 그의 꼬붕 오스만 남작이란 놈이었어. 얘들의 주도 하에 1853년에서 1869년 사이 3차례에 걸쳐서 파리는 거대한 외과 수술을 당했고 전체 건물 수의 40% 정도가 헐릴 정도로 그 규모는 컸대. 그리고 개선문이나 grande armee, 샹젤리제나 파리 특유의 5층 아파트들 모두 이즈음해서 세워진 것들이라고 해. 얘들은 뭔 생각으로 이런 거대한 공사를 했던 것일까? 출근길에 마차가 막혀서? 150년 후에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아니면 원래 대가리들은 공사를 좋아하니까? 내가 나름 요약한다면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이 의도하던 바의 핵심은 '무언가로'부터 도시를 지킨다는 것일 거야.

 

  글쎄. 무엇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지는 이따가 알아보자구. 여튼 이 세 차례에 걸친 대공사의 결과는 글쎄 지금 파리를 여행하면서 느끼기는 힘들겠지만 지독하고 참혹한 것이었어. 도시 건물 40%가 불도저에 밀려나갔는데 그 건물의 대다수는 노동자들과 도시 빈민들이 사는 구역들이었어. 하루 아침에 집을 잃은 이들에게 어떤 보상이 돌아갔을까? 가까운 철거촌에 가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줄거야.

  혹자들은 이들이 살던 도시 슬럼이 전염병과 화재 등의 온상이 되기 때문에 이들을 재개발을 하는 편이 노동자들이나 도시 빈민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는데, 글쎄. 이 사람들은 파리 시가지에서 쫓겨나서 파리 외곽에 다시 판자촌을 만들어 다시 뿌리를 내렸어. 사실 어디로 가겠어? 그리고 그곳들은 다시 전염병과 화재의 온상이 되었지. 전염병이나 화재 예방에 그렇게까지 효과적일 거 같지는 않지?

 

  대체 전체 가구수의 40%를 길바닥으로 내몰면서까지 얘들이 지키려고한 건 무엇일까? 또 무엇으로부터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었을까? 답을 알면 도시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될 거야. 바로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은 도시의 빈민들과 노동자들 그 자체로부터 파리, 파리의 부르주아들을 지키고 싶었던 거야. 사람들은 아무 이유없이 쫓겨나고 죽어갔던게 아니라 필연적인 의도에 의해 도시에서 적출되었던 거지.

 

요컨데 나폴레옹 3세는 대(anti)노동자 요격요새도시  제3파리시를 계획했던 것이지.

 

  오스만 백작은 다음과 같은 의도로 도시를 재구성하게 돼.

  1. 일단 뽀대가 나고 넓고 군대 사열이나 행진 등을 할 수 있는 넓은 도로. 개선문 광장이나 샹젤리제 같은데 말야. 여담이지만 불행히도 이걸 만들고 나서는 딱히 프랑스가 전쟁에서 신나게 승리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이 곳들은 보불 전쟁 때나 2차 대전때 독일애들이 여기서 신나게 퍼레이드를 해서 초큼 유명해지게 돼.

  2. 전염병과 대화재의 온상인 골목길을 따라 뻗쳐있는 도시 슬럼의 분쇄. 특별히 이 사람들이 전염병과 대화재 자체를 미워했던 거 같지는 않아. 왜냐면 이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파리 외곽에 거대한 슬럼을 다시 만들었지만 그거까지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거덩. 결국 이 사람들은 질병과 화재로부터 사람을 격리시키고 싶었다기보다는 유산 계급들을 질병과 화재를 몰고다니는 인간들로부터 분리시켜내고 싶었던 거겠지.

  3. 도시 어디에서 폭동이 일어나도 대응할 수 있는 넓은 이동로의 확보. 파리에 몇 차례 있었던 혁명들은 지배 계급들에게 깊은 영감을 줬던 것이 분명해. 개선문 광장을 중심으로 길고 넓게 뻗은 도로들이 깔리기 시작했고 그 넓이는 쉽게 바리케이트를 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것이었어. 그리고 바리케이트가 쳐 지더라도 그것을 날려버릴 수 있게 대포를 운반하기에도 충분한 넓이들이었고.

  그리고 불온하고 하찮은 인간들이 새로 자리를 잡은 도시 외곽 슬럼들로부터 파리를 보호하기위해 둥글게 외곽 순환 도로가 만들어졌어. 이 넓은 도로는 화재와 전염병의 온상들로부터 도시를 격리시키고 동시에 폭동의 진원지로부터 역시 도시를 1차 격리시키며 슬럼과 슬럼을 연결시켜 보다 용이하게 진압하러 다닐 수 있는 편리한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게 돼.

 

좀비들로부터 격리된 미래의 요새 도시. 조지 로메오의 상상력은 단순히 상상력이 아니라 역사이고 현실이라고 해야 할 거야

 

  이러한 헤프닝은 파리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냐. 빈에서, 런던에서, 곳곳에서 유서 깊은 도시들은 졸지에 계획도시들로 재탄생하게 돼. 이른바 근대적 도시 계획이란 이름으로. 어떻게든 이 불온한 사람들을 수도에서 몰아내고 이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압살하고 싶다는 열망이 이 거대한 변신을 불러온 거겠지. 이 헤프닝은 과다한 조치이고 신경증적인 발작일까 아니면 거대한 재앙에 맞서기 위한 너무도 미약한 미봉책일까? 이걸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 지배계급들이 무엇을 보았느냐를 살펴봐야 할 거야.

 

  조카 나폴레옹은, 유럽의 지배계급들은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유서깊은 도시에 칼을 대고자 했을까. 1792년, 1830년, 1848년 이 도시에서는 대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을까? 인민들은 어떠한 위험한 폭약이기에 이들은 수도에서 이 폭약을 제거하려 했을까? 또 끔찍한 요새 도시가 만들어진 이후인 1870년,1968년 거대한 요새 파리는 피지배 계급을 집어삼킬 수 있었을까? 뭐 그런 이야기들.

 

1848 intro (1)


1848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연재를 예고해 놓고 쓰다만 글. (2)도 있었지만 너무 잡담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