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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5)

- 세인트 헬레나로 가는길

 

 

0.

 

0.1.

  벨기에에 머무는 동안 웰링턴은 나이트에만 들락날락 거린 게 아니라 나름 벨기에 근처에서 자신이 자랑하는 방어전을 잘 펼칠 수 있는 지형을 빠삭하게 조사해 왔대. 처음에 찍어둔 곳은 라 벨르 알리앙스의 어학원...이 아니라 능선이었는데 좀 더 북쪽에 있는 몽 생장의 능선으로 변경하게 되는데 이쪽 언덕이 좀 더 짧아서 방어하기 좀 더 수월할 거라고 판단했나봐. 둘의 공통점은 둘다 능선이었다는 점이야. 웰링턴이 자주 써먹던 전술이 언덕 뒤에 주력을 숨겨두는 거였거든.

 

0.2.

  영연합군이 자리를 깔고 있을 동안 프랑스군은 아침 8시 이미 라 벨르 알리앙스 남쪽 1.6km 지점까지 도달해 있었어. 아침 식사 후 회의에서 며칠동안 밥값이 아까운 허접한 소통 능력을 보여준 참모장 술트는 밥값을 하려고 나폴레옹에게 직언을 하게 돼.

 

  "에, 어제 프로이센군 추격하러 간 애들 불러모으죠. 걔들 추격하고 있는 것도 어영부영하다던데."

 

  뭐 사실 이 시점에서 프로이센군을 추격 섬멸한다는 구상은 물거너갔다고 봐도 좋을 때였기 때문에 나쁜 제안은 아니었어. 리니 전투 이후 뒤늦게서야 조직된 추격은 프로이센 군의 주력을 완전히 놓쳐버린 상태였고 프로이센군은 패전의 혼란을 깔끔하게 털고 워털루를 향해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황제는 이 발언에서 군의 1/3이 프로이센군을 추격한답시고 뻘짓하고 있는 것보다는 이 1/3의 지원 없이는 영국군에 승리할 수 없다는 늬앙스를 읽었어.

 

  "아 씨, 니들이 스페인에서 웰링턴한테 작살들이 나서 웰링턴을 위대한 장군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웰링턴은 별 거 아니고 걔가 데리고 있는 영국군도 당나라 군대라구. 어디 2부 리그 스페인에서 빌빌대는 놈한테 쫄아가지고..."

 

  또 전날 카트르 브라에서 영국군과 싸웠던 2군단장 레이유 역시 나름 경험을 정리해서 발언을 해.

 

  "에.. 영국군이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녜요. 공격하는 건 뭐 창의력 없는 놈들이긴한데 방어전은 좀 잘합니다. 총도 잘쏘구. 정면 돌파보다는 우회 기동하는 편이..."

 

  여기서 기분이 우울해진 나폴레옹은 회의를 끝내버렸어. 확실히 동업하기 싫은 종류의 인간이랄까. 비교적 완벽하게 그루시의 프로이센군 추격은 실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루시가 이끄는 3만을 복귀시키지 않은 건 명백한 오판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거야. 우회 기동에 대해서는 나름 변명의 여지가 있는데 프로이센군이 언제 영국군과 합류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우회기동을 펼치기는 좀 불안하긴 했어. 또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고 특히 이번 전역에서 위경련과 치질에 시달리는 황제 입장에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기동전은 좀 피하고 싶기도 했을거야. 다만 나폴레옹이 이 귀중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우회기동을 포기했던 것일까 이게 문제란 거지. 곧 경악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돼.

 

  바로 그 경악스러운 일은 전날 비가 온 땅이 마르길 기다리기 위해서 공격을 네 시간이나 연기한 것이야. 포위 기동까지 포기할 정도로 시간을 아껴야하는 상황에서 나폴레옹은 뭔 깡으로 네 시간을 날려먹은걸까? 물론 땅이 질퍽거리면 왔다갔다 하기도 짜증나고 특히 포병들은 대포를 끌고다니고 쏘고 다시 셋팅하는데 무쟈게 빡신건 사실이고 또한 포탄의 위력 역시 감소하는게 사실이긴 해. 하지만 능선 너머에 병력을 숨겨둔 영국군에게 땅이 말라있다고 해서 딱히 포격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포병 장교 출신이었던 나폴레옹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텐데 말야. 실제로도 나폴레옹의 포병은 이 전투에서 국지적으로 활약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전황에 큰 변수가 되지 못했어.

 

  그것이 자만심 때문이었건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건 나폴레옹은 주변적인 요소들을 이번 전투의 핵심적인 관건인 시간에 집중시키는데 실패했어. 루즈타임이 걸린 그라운드에서 1점차로 뒤지는 상황... 그 상황에서 체력 안배를 위해 수비 라인에서 패스를 돌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 시간들은 끝나고 나서야 뼈에 새겨지도록 아깝게 느껴지게 될 거야.

 

 

1.

 

1.1.

 

  11시 30분 경, 프랑스군의 공격이 시작됐어. 프랑스군 좌익에서 제롬이 우구몽(Hougoumont) 농장을 공격해서 영국군 좌익을 자극하는 한편, 1시경부터 주력이 적군의 중앙을 돌파 분쇄하겠다는 꽤 단순한 전략이었어. 라 에 상트(La haye sante) 농가의 장악이 영국군 중앙의 수비/돌파의 관건이 될 거야. 이날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나폴레옹은 세부적인 공격 계획을 네이 원수에게 일임하게 돼.

 

  중앙의 싸움은 말 그대로 지독한 소모전이라고 평해야 할까?

 

프랑스군 보병의 공격으로 라 에 상트의 영국군 보병들이 붕괴되기 시작하고
말 그대로 북치는 소년들. 전열 선두에서 북을 치는 기분은 어떨까.
영국군은 기병대를 돌격시켜 공격나온 프랑스군 보병대들을 쓸어버려.
하지만 퇴각 타이밍을 놓쳐버린 영국 기병대는 프랑스군 창기병대에게 전멸당하게 돼. 15시까지 프랑스군의 중앙 돌파는 결국 제지되었지만 영국군은 기병전력의 40%를 잃는 피해를 입게 돼.

 

1.2.

  한편 프로이센군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고 있던 그루시의 별동대는 워털루 방향에서 포성이 터지는 것을 듣게 돼. 제라르가 그루시에게 전투를 벌이고 있을 본대와 합류하자고 제안하지만 독자적인 판단으로 명령을 어기고 싶지 않았던 그루시는 프로이센군을 찾아 여행을 계속 떠나기로 결정하게 돼.

 

  결국 그루시는 와브르 근처에서 프로이센군이 떡밥으로 던져둔 1만여명의 병력과 조우해서 전투를 벌였어. 그루시는 나름 프로이센군의 이 1만명이 본대가 영국군과 합류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게 던져둔 떡밥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명령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 떡밥을 묵묵히 줏어먹게 돼.

 

  뭐랄까 굉장히 답답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거야. 나폴레옹은 항상 모든 상황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렇기에 판단력을 갖춘 지휘관 대신에 말 잘듣는 yes맨들을 기용하길 원했어. 하지만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그 yes맨들은 가장 바라지 않던 형태로 그 책임을 나폴레옹에게 돌려주게 된 거야.

 

2.

 

2.1.

  프랑스군의 1차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고 나폴레옹은 네이에게 좀 더 구체적인 공격 지시를 하게 돼. "라 에 상트를 점령하라. 즉시!"

 

  16시 즈음 네이가 라 에 상트에 대한 공격에 돌입하려는 그때, 웰링턴은 중앙의 보병대에게 100보 정도 후퇴할 것을 명령했어. 포격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이것을 전면 퇴각으로 오해한 네이는 프랑스군의 기병 전력을 싹싹 긁어모아 돌격에 나섰어.

 

토나오는 아날로그 스케일. 여튼 네이는 신나게 달려갔는데.
네이를 기다리고 있던건 기병대에 대한 방어 준비가 완료되어 있는 보병 방진들이었어. 저런 식으로 등을 내주지 않고 빽빽히 모여있으면 웬만한 정신나간 말이 아니고서야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해.

 

  네이가 상식적인 사람이었다면 기병과 보병을 함께 돌격시켜 저 방진을 무력화시켰겠지만, 네이는 정신줄을 다소 놓고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4차례 이상 기병 단독으로 저 방진을 향해 가망없는 돌격을 계속했어. 뒤늦게 보병대의 지원이 이루어졌지만 그때는 기병대들이 진이 빠져서 돌격을 할 수 없는 상황. 결국 17시 30분 중앙에 대한 프랑스군의 2차 돌파 시도 역시 좌절되었어.

 

2.2.

  16시 슬슬 우익에서 프로이센군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루시에 의한 프로이센군 섬멸 혹은 저지는 물건너간게 확실해졌어. 관건은 프로이센군이 도착하기 전에 영국군의 중앙을 돌파하고 영국군을 패퇴시킬 수 있느냐...가 될 것이야.

  16시에 도착한 프로이센군은 우익에 있던 프랑스 군에 의해 패퇴하였지만 17시에 프로이센군은 플랑스누아(Plancenoit)마을을 점렴하고 프랑스군 우익을 위협하게 돼. 하지만 역전의 용사들인 고참 근위대(old guard)2개 대대의 투입으로 플랑스누아는 다시 프랑스가 탈환하였고 우익에서 14개 대대의 프로이센군이 일단 후퇴함으로써 급한 위협은 일단 저지하게 돼.

 

3.

 

  18시경 네이 원수는 영군군 중앙에 대한 3차 공격에 돌입했어. 이번엔 보병과 기병. 그리고 포병의 합동 공격이 이루어졌고 오후내내 끈덕지게 버티던 영국군 중앙은 붕괴되기 시작해. 비록 오후 내내 삽질만 했지만 제대로 된 공격이 이루어지자 프랑스군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 그리고 18시 30분, 드디어 라 에 상트 농가가 함락되었어.

 

이 농가의 함락을 통해 영국군 중앙 돌파의 교두보가 마련되었어. 네이는 즉각 이 농장에 포병대를 배치시키고 300m안쪽에 줄지어 있는 영국군에게 집중 포화를 날릴 준비를 하는데...

 

  더더군다나 이 시점에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이 몰려올 경우 그것을 저지할 예비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어. 웰링턴은 좌우익의 남는 병력을 박박 긁어서 중앙에 집중시키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프랑스군의 공격이 온다면 중앙의 붕괴는 피할 수 없게 될 거야. 웰링턴은 패전을 직감했어. "블뤼허가 오던가... 밤이 오던가..." 하지만 초여름, 밤이 오려면 꽤나 멀었던 거야.

 

  하지만 공교롭게도 중앙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던 네이 원수에게 역시 적군 중앙을 돌파할 예비 병력은 존재하지 않았어. 나폴레옹 본대에 있는 제국근위대를 네이는 지원받기를 원했고 그래서 문자를 날려.

 

[황제 폐하. 헬프 좀 보내주시져. 병력이 없음]

 

[아놔. 장난침? 이게 무슨 스타냐? 배럭에 미네랄 넣으면 병력이 나오는줄 알어?]

 

  뭐 보낼 수 있는 병력이 있으면 빨랑 보내줘야했겠지만 나폴레옹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어. 2.2.에서 설명했듯이 제국근위대는 프로이센군의 우익에서의 공세를 막느라 바빴었거든. 19시가 되어서야 제국근위대는 예비대로 복귀했고 네이가 병력 지원을 요청한지 한시간이 지나서야 지원군을 보내줄 수 있었어. 웰링턴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프로이센군은 이미 영국군을 구원하고 있었던 셈이지.

 

진격하는 제국근위대. 영화에서 보면 개떼같은 아저씨들이 군가 틀어놓고 걸어오는데 꽤나 무서워보인다. 실제로도 유럽 리그를 휩쓸었던 프랑스 육군의 최정예이니만큼 상대하는 입장에서 토나올 법도 하다.

 

  18시 45분 웰링턴의 좌익에 프로이센 군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웰링턴은 좌익의 병력을 중앙으로 대폭 돌릴 수 있었고, 프랑스군 우익 쪽에 프로이센 군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나폴레옹은 술렁거리기 시작한 우익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익에 나타나기 시작한 프로이센군을 그루시의 프랑스군 별동대라고 병사들에게 사기를 치고 근위대의 공격을 준비시켰어. 드디어 제국근위대는 19시 30분 공격을 시작하게 돼. 하지만 같은 시간 웰링턴은 제국근위대의 공격을 저지하기에 충분한 병력을 좌우익에서 끌어올 수 있었어. 공격이 한시간만 더 빨랐으면 이 전투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폴레옹도 이때쯤이면 오전에 허비했던 4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결국 영국군의 급조된 예비대는 제국근위대의 공격을 막아냈고 이어 프랑스군 우익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블뤼허의 본대에 의해 프랑스군은 무너지기 시작해. 거기에 영국군이 반격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프랑스군의 패배는 확정되었어. 동맹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제국근위대가 분투한 덕에 나폴레옹은 무사히 전역을 탈출했지만, 대부분의 프랑스군은 그러지 못했어.

 

 

뒷이야기.

 

  나폴레옹은 전투 직후 형 조세프에게 "모두다 잃지는 않았어. 병력을 다시 모으면 그래도 15만은 될 거야."라고 꿈과 희망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편지를 썼어. 하지만 물리적으로 15만의 병력이 파리 근처에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부르주아지들과 민중들은 이미 파산한 나폴레옹에게 투자하고 싶은 생각은 일호만큼도 없었어. 측근들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독재를 선언하라고 부추겼지만 이제와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결국 브뤼메르 18일은 다시 재현되지 않았고 나폴레옹은 다시 퇴위하고 이번엔 서아프리카의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정처없는 유배를 떠났어. 그리고 살아서 유럽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어.

 

  프랑스 민중들은 스스로의 힘이 아닌 나폴레옹의 군사적 모험에 도박을 한 결과로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는걸 지켜봐야 했어. 유럽은 빈체제의 반동 속으로 빠져들었고 유럽 제국의 민족주의와 부르주아적 사회 재편은 철퇴를 맞았어. 프랑스 민중들이, 그리고 유럽의 민중들이 이 날의 패배, 아니 보나파르트 독재 이후 내내 억눌려졌던 자발적 에너지를 회복하기까지는 15년을 더 기다려야될 거야.

 

워털루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