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벌레벌레벌

워털루 (1)

- 엘바로 가는 길

 

워털루 / 세르게이 본다르처크 / 1974

 

0.

 

[속보] 루이 카페 오늘 11시 단두대에서 참수

    ㄴ re : 우왓 1등 가문의 영광

    ㄴ re : 단두대가 프랑스에 단 두대 밖에 없다던데 사실인가여?

        ㄴ re : 님 좀  돌은듯

    ㄴ re : 근데 루이 카페가 뭐임? 새로 생긴 커피집임?

        ㄴ re : 아놔 신문 좀 읽고 살아라 임마

             ㄴ re : 헐, 님 저랑 결투 깔래여? 어따 반말임?

 

  18세기에 처형은 사실 일상사에 가까운 일이라서 사실 웬만한 사람의 목이 매달린다고 해서 그렇게 놀랄 것은 없었어. 근데 1793년 1월 21일 11시, 파리의 혁명 광장에서 벌어진 루이 16세의 사형은 당시 유럽을 충격과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 뭐 개가 사람을 무는거야 일상사지만 사람이 개를 물어죽이면 좀 뉴스거리가 되잖아? 이 뉴스가 전 유럽 포탈 사이트들의 1면에 도배되기 시작하자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루이 카페와 동종업종에 종사하는 친구들-그러니까 유럽의 왕들-었는데 얘들은 이 뉴스를 접하자 마자 신생 프랑스 공화국을 모르도르의 불구덩이 속으로 파괴하기 위한 원정대를 조직하게 돼. 나름 통박을 굴려보니까 반지원정대가 파리에서 국왕시해자들의 무리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혁명이 자신들의 목언저리까지 불어닥칠테니까.

 

  그리하여 거의 전 유럽이 공화국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고 바다에서는 영국 애들이 땅에서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스페인 등등 온갖 원정군들이 파리를 향한 레이스를 개시했어. 사실 프랑스가 전 유럽과 맞짱 뜨는 게 없던 일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신생 공화국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 그도 그럴것이 프랑스 전역은 자코뱅을 중심으로 한 혁명 정부와 왕당파와 지롱드파 등 그에 반하는 파벌로 내전 상태였고 유럽 최강의 육군국 프랑스군의 중추였던 장교들은 상당수 해외로 망명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 같아도 심정적으로야 혁명군의 손을 들어주고 싶겠지만 한 5만원만 베팅한다고 생각하면 ... 하긴 롯데팬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여튼 내전에 의해 분열되어 있고 중추까지 마비되어 있는 오합지졸을 무찌르고 파리로 개선하여 국왕시해자의 무리를 가로등에 데롱데롱 매다는 것이 실로 코 앞에 온 상황.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거야. 파리로 가는 문턱에서 반혁명 동맹군의 군대가 차례로 패퇴하기 시작한 거지. 방데 등 내전을 일으킨 반혁명군들 역시 차례차례 진압되었고. 반혁명 반지원정대의 눈앞에는 오합지졸의 폭도들이 아닌 지금까지 그들이 만난 적이 없던 무시무시한 사상 최강의 군바리들이 있었다고 해. 사우론 오크 뽑듯 사악한 국왕 시해자들이 땅에서 이 악의 군단을 빚어낸 것일까? 대체 얘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1.

 

  다소 생뚱맞기까지한 답은 징병제. 혁명 정부는 자신들이 통제하는 프랑스 전역에서 징병제를 실시하였던 거야. 얼라? 농사짓다가 영장 날라와서 군대로 끌려간 애들이 최강의 군대? 소집 영장이 순박한 농민떼를 사우론의 우르크하이 군단으로 만들었다고? 약간 매치가 안되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럽의 군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어.

 

  기본적으로 유럽의 왕정 국가들은 모병제를 통해 군대를 유지해왔는데 기본적으로 부랑자, 깡패, 사회부적응자, 혹은 허위 광고에 속아서 지원한 다소 삐리한 농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어. 유럽 왕국들은 이런 애들을 용돈과 술, 그리고 채찍으로 살살 구슬려서 전쟁터에 밀어넣고 있었던 거지.  그외에 도저히 모병이 불가능한 경우-가령 평시에도 병으로 픽픽 죽어나가는 영군 해군처럼-엔 아예 이런 애들을 납치해서 군대를 조직하기도 하고 때론 직업적 용병 집단을 고용하기도 하고. 이런 인생 막장들이 전혀 와닫지도 않는 국왕의 명예를 위해 싸운다 ... 듣기만 해도 싸울 맛이 안난다고 해야되나.

 

  반면 영장을 받고 끌려온 프랑스군은 비교적 양질의 인간들을 징병제를 통해 무작위로 끌어들일 수 있었어. 뭣보다도 얘들은 국왕이 아니라 신생 공화국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애들과 다른 거지. 왕의 명예와는 달리 신생 공화국은 이들에게 법적 권리와 봉건적 지대 철폐, 땅 등을 약속하고 있었거덩. 그렇기에 이 친구들은 전쟁을 자신의 전쟁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단 말이지. 왜냐면 이 전쟁에서 패배는 자신들이 기껏 손에 얻은 얼마 안되는 자유와 평등, 박애를 다시 왕과 그 친구들의 손아귀로 돌려주는 것이니까. 신념을 가지고 싸우는 오크들과 채찍을 피해 다니다 정신차려보니 전선에 서 있는 호빗떼들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 는 거지.

 

2.

 

이게 그 문제의 큐롯.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당시의 패션 현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 당시 잘나가던 패션 리더들은 몸에 딱맞는 레깅스를 입고 그 위에 퀼로트라는 반바지를 입고 다녔대. 지금 기준에서야 약간 웃기겠지만 뭐 패션이라는게 다 그렇잖아. 그런데 잘나가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파리의 자영업자들이나 노동자들 그런 사람들은 촌티 풀풀 내면서 그냥 긴 바지를 입고 다녔지. 그래서 퀼로트, 요즘말로 큐롯을 입은 양반들은 걔들을 상퀼로트, 그니까 퀼로트도 안입는 놈들이라고 불렀어.

 

  이게 왜 중요하냐면 상퀼로트들이 1794년까지 혁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 가령 국왕이 군대를 소집하고 부르주아지들이 법과 관념의 세계에서 헤엄치고 있을때 얘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털어서 국왕을 굴복시켰고. 여튼 얘들은 혁명의 위기 상황마다 얘들은 적절하고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하였고 또 그걸 실행시킬 폭발력 역시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근데 퀼로트를 입은 신사들 입장에서는 얘들이 나대는 것이 그닥 맘에 들지는 않았어. 일단 패션도 구리고, 너무 급진적이다 ... 뭐 그런 문제를 떠나서 얘들이 급진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자신의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지. 가령 물가 안정을 위해 최고가격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에 앙등하는 물가에 재미를 보던 사람들이 빡도는 거고, 최고재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대부르주아들의 심기가 크게 불편해진거지.

 

생각만큼 귀여운 스타일은 아니었던 듯

 

  그래서 94년 혁명력 더운달 그러니까 테르미도르에 상퀼로트와 미묘한-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관계를 유지하던 자코뱅이 몰락하게 돼. 천것들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기쁨을 만끽하던 것도 잠시. 부르주아지들은 자신들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을 알아채게 돼. 왜냐면 온건 부르주아지들의 정책은 자신들의 주머니를 잠시 지키는데는 유용했지만 혁명을 지키는데 있어선 딱히 유용할 것이 없다는 것이 검증되었고 경제적,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었기 때문이지. 그런 상황을 틈타 황금 퀼로트라고 불리는 왕당파 깡패들까지 나타나는 등 반혁명의 움직임마저 보이기 시작해.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봉건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들은 무지무지 싫었지만 그렇다고 걔들을 제압할만한 능력과 과감함이 자신들에게는 없었어. 그렇다고 상퀼로트들의 힘을 빌리기 역시 싫었고. 결국 방황하는 부르주아지들은 공화국 내에서 가장 잘 조직되고 가장 폭압적인 분파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돼. 그러니까 브뤼메르18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보나파르트 장군으로 대표되는 장교들이 바로 그들이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붕괴했고 그 자리는 황제와 비밀경찰로 메워졌어. 다만 그 황제는 부르주아와 프랑스 국민국가의 황제였다는 점이 유럽 제국들과 더 이상 공화국이 아닌 프랑스를 구분지어줬을 뿐이지.

 

3.

 

  보나파르트 장군, 그러니까 이야기의 주인공 나폴레옹이 권좌에 올랐고 전 프랑스 군의 통수권자가 됐어. 근대 국민국가와 그 산물인 당대 최강의 국민군대, 그리고 알렉산더 이후 최고의 전략/전술가이자 근대 전쟁에 획을 그은 나폴레옹의 화학적인 결합은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발휘하게 돼. 나폴레옹과 프랑스 대육군(grand armee)은 수차에 걸쳐 결성된 반 프랑스 동맹군을 번번히 박살내 버린 거야. 마렝고에서 아우스터리츠에서, 울름에서, 예나에서, 바그람에서, 나폴레옹을 만난 유럽의 왕과 장군들은 한여름의 롯데마냥, 결승전의 홍진호마냥, 깨지고 깨지고 산산히 가루가 될때까지 깨졌어. 정신차리고보니 제국은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을 사실상 통제하는 수준까지 팽창해 있었지.

 

  나폴레옹은 이 눈에 가시인 영국을 발라내버리고 싶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어. 지금이야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되지만 그땐 영국에 가려면 배를 타야했고 바다는 영국 해군이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당시 영국 해군은 전세계와 맞장을 깔 수 있을 정도였고 그래서 나폴레옹 역시 프랑스-스페인 함대를 규합해서 좀 찝쩍거려볼려다가 트라팔가르에서 넬슨한데 걸려서 아작이 나버려. 살짝 열받은 나폴레옹은 영국을 굴복시킬 수 없을까 며칠 통박을 굴리다가 베를린 칙령이란 걸 발표해. 이른바 대륙봉쇄령이란 거지.

 

 

  대륙 봉쇄는 쉽게 말해 프랑스와 그 동맹국들은-그러니까 유럽 대륙 전체-영국 및 영국과 무역하는 중립국과 무역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산업 혁명이 진행되어 슬슬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 하려는 영국 자본주의의 숨통을 억눌러 굴복시키겠다는 것이 나폴레옹의 구상이었던 거지. 그럼 영국에 지금까지 납품하던 유럽의 하청업체들은 이제 어디로 물건은 납품해야 할까? 혹은 영국제 TV나 세탁기를 구입하던 나라들은 이제 어디서 물건을 사와야 하는 거지? 나폴레옹과 프랑스 부르주아지들은 쉬운 해답을 제시하였어. 바로 프랑스 자본에게 그것을 맡기라는 거야. 대륙 봉쇄령은 영국을 굴복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를 유럽의 공장, 나아가 세계의 공장으로 나아가게 하는 비전을 담은 로드맵이었던 거지.

 

  대충 듣기에는 그럴듯한 비전이었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아마 영국은 굴복하고 영어는 제2외국어로 몰락했을지도 몰라. 실제로 영국 경제는 심각한 위협을 받았고 근근히 영국 경제의 붕괴를 막아왔던 신대륙과의 무역 역시-유럽과의 무역이 막혀 있던-미국과 전쟁 직전까지 분위기가 가면서 위태로워지고 있었다고 해.  하지만 이 원대한 계획은 다소 현실적인 뒷받침이 부족하여 끝까지 밀어붙여지지 못했는데 뭣보다도 프랑스 자본이 영국을 대체할만큼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어. 쉽게 말해 유럽 애들이 원자재를 잔뜩 팔려고 내놓아도 프랑스 애들이 그걸 다 구입할 만큼 생산력이 뒷받침이 안되었고 또한 유럽애들이 원하는 상품을 다 생산할 처지도 못되었던 것이지. 프랑스 애들은 이 현실과 이상의 갭을 하청업체들-그러니까 유럽 여러 나라들-의 부담으로 돌파하려 하였어.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러시아가 프랑스 상품에 고액의 관세를 때리고 영국 및 중립국과의 무역을 재개하려 함에따라 대륙봉쇄는 실질적으로 붕괴되었던 거지.

 

  나폴레옹은 해결책을 내놓아야했어. 언제나 그랬듯이 나폴레옹은 쉽게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그건 이 체제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기 위해 써 왔던 손쉬운 해결책, 그러니까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거지. 하긴 항상 밥먹고 쌈질만 해왔으니까 관성이 붙을 법도 할거야. 여튼저튼 프랑스군 25만을 비롯한 60만명의 대부대가 러시아로 진군하기 시작해. 그리고 언제나처럼 승리하고 프랑스로 개선했느냐 ... 면 물론 그렇지 않지. 그랬다면 지금쯤 프랑스어가 제1외국어일테니까. 나폴레옹은 1812년 겨울동안 이 60만의 원정군을 말 그대로의 의미로 홀라당 까먹게 된 거야.

 

4.

 

  러시아 원정의 패배를 두고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추운 날씨 탓을 줄곧 하였는데 이는 전형적인 핑계라고 할 수 있어. 반성이 없는 인생의 패배자들이나 할만한 발상이지. 실상 러시아 원정의 패배는 이미 프랑스 군대와 나폴레옹 정권 자체의 한계에서 그 파멸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해야할 거야. 당시 다른 군대도 그렇지만 프랑스 군대 역시 전통적인 중세적 방식에 의해 보급 문제를 해결해왔어. 좋게 얘기하면 현지조달, 쉽게 말해서 약탈을 통해 대부분의 물자를 수급하는 거야. 인구밀집 지역이었던 중부 유럽에선 이 방식으로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지만 인구 밀도가 낮은 러시아에서, 그것도 60만의 대군이 그렇게 하기는 뭐랄까 다소 무리가 있다고 해야겠지. 이미 니에멘 강을 건너면서 군 전체는 심각한 보급 문제에 직면했고 말들이 굶어죽고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해. 실상 겨울이 오기도 전에 원정군은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거지.

 

  더욱더 큰 원인은 나폴레옹 정권 자체에서 찾아야 할 거야. 나폴레옹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 초기에만 해도 혁명의 전도사로 각국 부르주아지들과 농민들에게 받아들여졌대. 그러나 1812년에는 이미 그 환상은 산산조각나 있었지. 영국의 부르주아지들이 프랑스 혁명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프랑스 부르주아지들은 유럽 각국의 부르주아지 혁명 혹은 개혁에 냉담하였고 자국 시장의 발전을 위해 프랑스 치하 국가의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외면하였던 거지. 총을 든 침략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구나! 이건 마치 미국이 이라크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거랑 비슷한 거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한 거지. 뭐 러시아에서도 역시나 나폴레옹은 원정 내내 농노제 폐지 초안을 잠시 만지작 거리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었어.

 

5.

 

  이렇게 나폴레옹은 패배했고 프랑스군은 치명상을 입었어. 나폴레옹의 주먹 아래 숨을 죽이고 있던 유럽 왕국들은 다시금 힘을 되찾고 지긋지긋한 나폴레옹 제국 붕괴를 위한 동맹을 조직하게 돼. 의리는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것이라서 항상 나폴레옹의 주먹 앞에 콩가루였던 이들의 동맹은 나폴레옹의 주먹에 힘이 빠진 이때만큼은 굳건한 것이라서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군을 아작내고 동맹국은 결국 파리에 입성하게 돼. 영화는 여기에서 시작해. 나폴레옹 휘하 원수들이 나폴레옹에게 퇴위를 끈덕지게 요구하고 나폴레옹은 끈덕지게 퇴위를 거부하지. 뭐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고집만으로 세울 수 있다면 누가 고생하겠어. 결국 나폴레옹은 무조건 퇴위를 승락하고 엘바 섬으로 가는 배에 오르게 돼. 프랑스는 삼색기 대신 부르봉 왕가의 하얀 문장이 지배하게 되고 한때 유럽 통합 1짱이었던 나폴레옹은 30x20km의 게딱지만한 섬의 군주로 몰락하게 돼.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영화가 나오지 않았겠지? 하지만 역사는 이 이야기가 시시하게 끝나고 영화가 시작 5분만에 끝나기를 원하지 않았던 건지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통통 굴러가고 있었던 거야.

 

-1.

 

  뭐랄까 대충 쓰고 치워도 될 전쟁 이야기를 길게 쓰게 됐다. 전쟁 이야기는 너무 마이너틱한 취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글쎄 그냥 쓰고 싶은 거 쓰고 쓰기 싫으면 관두고 편하게 사는게 좋을 거 같아서 쓰기로 했다. 계획하고 있는 연재도 대충 연장선상에 있는 거니까 대충 연습 삼아서.

 

워털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