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선수로서의 김동수에 대해서 딱히 아는 바는 없다. 그가 선수로 활약하던 밀레니엄 극초반 즈음해서는 난 스타를 안봤으니까. 나름 정점에서 은퇴한 그는 해설가로 온게임넷에서 일하고 있는데 딱히 해설을 잘한다*1)란 느낌은 안들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작은 네모 안이 김동수.
일하다가 심심해서 임요환의 악행에 관해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그의 홈페이지에 링크를 타고 들렀다. 그러다 우연찮게 '제2의 임요환을 위해서'라는 그의 글을 보게 되었다.
http://garimto.ivyro.net/bbs/zboard.php?id=fast&gg_diary=200808&setdate=20080801&no=734
사실 그의 의견에 대해 많은 부분 이견이 있지만 그래도 근래 스타판에 관해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참신하고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다소 길고 산만한 (미안) 글의 전제는-대부분 스타팬들이 동의하듯이-스타판이 망해가고 있다는 것이고 그 원인을 흥행성 있는 선수를 남길 수 없는 구조에서 찾고 있다.
... 이대로 가다간 파멸입니다. 제2의 임요환은 커녕 이스포츠 자체의 숨통을 목조르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비시즌이 없는것은 골프에 비교하고, 단기간 경기수가 많은것은 야구에 비교하는식은 곤란합니다. 단기간 동안 많은 경기수를 보여주고 싶다면 그만큼 충분한 휴식기간을 가져야하는 것이고, 특정한 휴식기간 없이 지속적으로 경기를 진행하고 싶으면 그만큼 간격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이 구조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현장이 아니라 그 어떤 선수도 살아남을 수 없는 필멸의 악순환 구조일 뿐입니다.
나도 스타에 관련한 포스트를 쓸때마다 이야기하지만 스타판의 선수 생명은 기이하도록 짧다*2). 그 생명 단축의 비밀은 기본적으로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가혹한 경기 일정에서 출발하는데, 김동수 말마따나 골프처럼 시즌/비시즌 구분이 애매하고 야구처럼 기간당 경기수가 많다. 2개의 개인리그와 1개의 팀리그, 그리고 잡스런 이벤트 매치로 가득차 있는 일정을 소화해내기 위해 선수들은 상식 이상의 훈련량을 소화해야 한다.
대체 그 어떤 선수가 이 스케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잘하는 선수는 잘할수록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합니다.계속 소화할 수록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합니다.
잘하는 선수가 쉬는 일은 한가지 뿐입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길 뿐입니다.
경기력을 상실하고 더 이상 경기를 펼칠만한 힘이 없는 경우 뿐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방법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경기를 펼쳐야 합니다...
그것 자체로도 선수 생명은 단축되지만 한 선수가 기이한 체력과 근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훈련량과 일정을 소화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잦은 경기는 당연하게도 그 선수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과 전략 누출로 이어진다. 반면 당장의 경기 준비에 바쁜 게이머는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거나 스타일을 교정할 여유를 거의 갖지 못하고 기계화/화석화된 전략에 의존하다, 공략당하고 패배하고 도태된다.
신인들이 반짝 빛나다가 광속으로 추락하고 다른 신인으로 교체되는 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무수한 젊은 친구들이 미래를 차압당했고 팬들은 스타를 잃었다. 결과적으로 업계 전체의 멸망으로 귀결되고 있다.
비 시즌기간에는 그 어떤 리그도 열지 말아야 합니다.
주5일제는 정부가 법적으로 그어놓은 선입니다.
그 이상의 업무는 효율을 높이지 못한다는 논리입니다.
두세달정도는 충분히 선수들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두세달뒤면 실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논리는 노예를 부리는 사람이나 할 법한 소리입니다.
일주일 내내 일을 시켜야 마진이 떨어진다는 건 악덕 기업주나 할법한 소리입니다.
김동수는 이러한 스타판의 위기의 타개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하나는 연령 제한제와 유소년 리그의 도입, 그리고 주당 경기 횟수 제한과 비시즌 휴식기의 보장이다. 개인적으론 그가 이야기하는 연령제한제 도입의 근거엔 동의할 수 없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미성년 게이머의 장시간 노동(훈련), 학습권 제한을 생각한다면 최저연령제 도입은 필요하다고 본다. 뭐 경기 일정 관련해서는 취지에 당연하게도 동의하고:)
글만큼이나 재미있는건 이 글이 스타리그를 애청하던 노조 상근자가 쓴 글이 아니라 20대를 게임판에서 선수로 해설자로 보낸 사람이 썼다는 것이다. 협회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가령 프로리그 일정 강화라던가-에 대해 관계자의 한 사람으로 고민하다, 소모되고 도태되어 버려지는 또래의 동료 게이머에 대해 고민하다, 멸망해가는 이 바닥에 대해 이 바닥에 밥줄이 걸린 해설자로서 고민하다 그는 여기까지 이르렀다. 배후 세력의 조작에 의해서가 아니라 팍팍한 현실의 탈출구를 찾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놓게 되었고, 촛불집회 등 세상의 다른 측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서점에서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를 찾게 되었다. (근데 절판 되었단다:ㅔ) 사막에도 풀이 자라는 법이고 희망은 어디에서나 싹을 틔우는구나 싶다.
문제는 이 문제 의식을 어케 풀어내느냐인데, 과연 한 은퇴한 선수의 문제 의식은 선수들의 문제 의식으로 번질 수 있을까. 혹은 이들의 시도가 팬들 전체의 공감으로 번질 수 있을까. 과연 스타판에 선수협이 생길 수 있을까. 혹은 e스포츠 산별 깃발을 언젠가 메이데이 전야제에서 볼 수 있을까. 바램과 망상이 섞인 생각을 해봤다. 현실은 언제나 가혹하지만 사막에도 풀은 자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