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벌레벌레벌

워털루 (4)

- 워털루로 가는 길

 

 

안봐도 상관없는데 중간중간 참고하면서 보는게 좋을거야. 위키 만세.

 

 

 

집요하게 옆 테이블과의 합석을 요구 중인 웰링턴 공작. 웨이터의 표정이 굳어가고 있다.
웬일로 일이 풀리는지 순조롭게 진행 중인 부킹.
나름 업소 수질에 만족 중인 리치몬드 공작 부인. 부킹 성사가 눈 앞에 왔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에 간만의 부킹은 물건너 가버리고 마는데 ...

 

0. 6월 15일

 

  드디어 운명의 6월 15일, 우리의 웰링턴 공작이 리치몬드 공작 부인의 댄스 파티에 참가해서 부킹에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 갑자기 남쪽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프랑스군의 출현에 동맹군 애들은 깜짝 놀라게 돼.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동맹군 애들은 벨기에를 쭉 가로질러 산개해 있었거덩. 갑자기 나타난 개떼같은 적군에다 지휘관은 나이트에 가 있는 상황, 일단 얘들은 흩어져 있는 애들을 집결시키기로 해.

 

  여기서 집결지가 중요한데, 일단 전방에 있는 애들은 보급로를 따라서 후퇴하면서 후방에 있는 애들을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멀리 후퇴하면 서쪽으로 (항구쪽으로) 가야하는 영국애들과 동쪽으로 가야하는 프로이센 애들의 공동작전은 애초에 물건너 가는거고 나폴레옹이 노리는대로 각각의 전력으로 프랑스군과 싸워야해.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데에서 집결하면 제대로 집결하기도 전에 프랑스군의 습격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거지. 안그래도 골치 아픈데 나폴레옹은 몽(Mons)과 나무르(Namur) 방향으로 (지도에 있어^6^; 잘 찾아봐.) 슬쩍 공격하는 척 떡밥을 던져. 멀찍이 후퇴해서 집결하지 않으면 보급로까지 위협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팍팍 들게 말야.

 

  웰링턴은 이 떡밥의 반은 물고 반은 뱉었어. 처음에 웰링턴은 몽 쪽으로 부대를 집결하라고 지시했어. 그랬다가 너무 후퇴한 감이 있어서인지 16일 새벽 집결지는 니벨(Nivelles)로 변경되었어. 무도회에서 황급하게 지휘부로 복귀한 웰링턴은 웬지 몽에 대한 프랑스군의 공격이 떡밥 같다는 것을 눈치 깐 거지. 그러면서도 소심한 웰링턴은 상당수의 부대를 보급로에 남겨두었어.

 

  반면 대범한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은 바로 앞의 프랑스군의 위협과 나무르 방향의 기만 공격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전방에 집중해서 집결하기로 했어. 천재와 바보는 한끝 차이라 구분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과연 이 집결은 좀 비범한 선택이면서도 위험한 선택이기도 한데. 리니(Ligny)쪽에 집결하기 시작한 프로이센군은 북동쪽 멀리 있던 프로이센군의 1/4이 도착하기 전에 프랑스군과 일전을 벌이게 될 확률이 높았고 더더군다나 영국군이 꽤 멀쩍히서 집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익(그니까 서쪽)에서 프랑스군이 나타나게 된다면 양면에서 협공당할 위치였기 때문이야.

 

  결국 이 상황에서 결정적인 열쇠는 카트르 브라(Quatre-bras)-웬지 원어 뜻도 4거리란 뜻일 거 같지 않아?-의 장악에 달린 셈이지. 프랑스군이 4거리를 장악한다면 프로이센군을 양방향으로 압박해서 몰아낼 수 있고 영국군이 프로이센군과 합류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거야. 반면 동맹국의 입장에서 이 4거리를 장악당하게 된다면 상황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하고 나폴레옹이 원하는 상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되는거지.

 

  요 카트르 브라를 향해 우리의 네이 원수는 즐겁게 행군하고 있었어. 지난번에 말했던 전장 공포증 증후를 보이던 프랑스 아저씨 말야. 간간히 막아서는 영국애들을 살살 발라가며 전진하던 네이 원수는 사거리 남쪽에 일단 대기하게 돼. 빨간불이라도 걸린걸까? ... 미안. 거침없이 북진하던 네이 원수의 앞에 일군의 영국군이 저항하기 시작했던 거야. 어라? 영국군? 15일 저녁이었던 현 상황에서 영국군 재집결지는 카트르 브라에서 서쪽 멀리 있는 몽이었잖아. 그럼 얘들은 누구지?

 

  정답은 영국군 휘하에 있는 벨기에-네델란드 연합군 애들이었어. 얘들은 뭔 생각을 했는지 독자적 판단으로 카트르 브라, 현 위치를 고수하기로 했던거야. 얘들의 전력이라 해봤자 보병 8000명에 대포 16문 경기병 50기, 반면 네이가 끌고 올라오는 프랑스군의 규모는 보병 25000명에 기병 3000 대포 60문, 말그대로 상대가 안되는 전력이었지. 여기서 네이가 공세를 취했더라면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네이는 밤이 오고 있고 일대가 옥수수밭이어서 적 규모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단 텐트를 치고 쉬기로 결정하게 돼. 뭐 벨기에-네델란드군의 똘기와 네이의 소심함은 결국 영국군에게 귀중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 셈이야.

 

1. 6월 16일 전반부

 

1.1.

 

  네이가 샤를루아(Chatelet)의 프랑스군 사령부로 와서 카트르 브라의 전황에 대해 썰을 풀자 나폴레옹은 카트르 브라를 장악하고 브뤼쉘(Brussels)쪽으로 집결하는 영국군을 추격 섬멸하기 위해 네이에게 공격을 명하게 돼. 16일의 전투는 프로이센군의 발을 묶고 영국군을 일단 패퇴시키는데 주력하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지게 된 거야. 그걸 위해 네이에게는 현재 지휘중인 병력에 4만여의 추가병력을 지원해주기로 나폴레옹은 약속하게 돼. 네이는 그 약속을 믿고 다시 카트르 브라로 총총히 사라졌어.

 

  근데 웬걸 블뤼허가 리니에서 프로이센군을 재집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16일 아침 늦게 나폴레옹 사령부에 들어가게 돼. 바로 코앞에서 프로이센군이 집결하고 있단 소식에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을 공격할 찬스라고 판단, 공격 목표를 수정하게 돼. 네이에게 지원해주기로 했던 2개 군단, 그리고 카트르 브라를 장악한 네이가 프로이센군의 서쪽에서 밀고 들어 들어와서 양면에서 협공 프로이센군을 섬멸하겠다...가 수정된 작전의 요지야. 나폴레옹의 판단은 꽤 정확하고 빨랐지만 문제는 사령부에서 네이에게 그 작전변경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고 14시가 되어서야 명령서를 보내게 돼.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다시피 참모장이 좀 어리버리했던 거지. 문제의 명령서는 16시가 다 되어서야 네이에게 도착하게 되는데 ...

 

  한편 16일 아침 네이는 군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어. 명령은 전날 구두로 들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뒷말이 있을까 싶어서 네이는 나폴레옹의 서면지시를 기다리고 있었어. 예전의 나폴레옹이었다면 2시 쯤에 일어나서 명령서들을 작성해서 적어도 6시에는 네이가 받아볼 수 있게 해줬겠지만 뭐 건강이 말이 아니었던 나폴레옹은 6시가 넘어서야 공격 지시를 내릴 수 있었고 또 참모부의 어리버리함으로 인해 8시에 송달되어 10시30분에야 네이는 지시를 받을 수 있었어. 거기에다 네이는 확실하게 이 전역에서 카트르 브라 장악의 중요성과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고 공격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게돼. 결국 네이는 16일 오후 2시에서야 군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1.2.

 

  한편 웰링턴은 카트르 브라의 교전 소식을 듣고 첨에 몽으로 정했던 집결 위치를 니벨로 변경하게 돼. 글고 다음날 아침 카트르 브라로 가서 상황을 살피는데 웬걸 프랑스 애들은 밥먹을 준비나 슬슬 하고 있을뿐 공격할 준비는 도통하고 있지 않고 있었어. 어라.. 왜 안오지? 여튼 소중한 시간을 얻은 웰링턴은 니벨로 정했던 집결지를 다시 카트르 브라로 변경했어. 글고 리니로 겁나게 달려가서 블뤼허에게서 "우리가 공격 안당하면 그쪽 도와주러 갈께"라고 약속을 받아오게 돼.

 

  명령까지 어기면서까지 전략적 요충지를 지켜낸 벨기에-네델란드 군의 선전과 새벽부터 오전 내내 성실하게 시간을 보낸 웰링턴의 덕으로 영국군은 16일 오전 내내 카트르 브라에 한줌에 불과하던 병력을 보강하는데 성공했어. 2시 네이가 공세를 취할 즈음에는 거의 대등한 병력을 카트르 브라에 투입할 수 있게 된거야. 최악의 우유부단과 늦장으로 간만의 찬스를 날려버린 프랑스 애들과 좋은 비교가 될거야. 물론 나폴레옹이 그것을 두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소심하고 명령서만 목을 빼고 기다리는 yes맨, 무능한 참모부, 모두가 자신이 만들어내고 인선한 인사들이었고 중요한 순간 발목을 잡는 건강 역시 자기 관리 부족에서 찾아오는 건데 말야.

 

1.3.

 

  나폴레옹이 리니를 향해 군을 움직이고 있을 때, 우리의 블뤼허와 유쾌한 프로이센 친구들은 리니에 그냥 짱박혀서 집결하고 있었어. 블뤼허는 나름 통박을 굴려서 하천과 마을을 끼고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는데 ...

 

무쟈게 갖고 싶다. 비싸겠지?

 

2. 16일, 카트르 브라 전투

 

  2시경 시작된 프랑스군의 공격은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네델란드-벨기에 연합군의 전열은 순식간에 붕괴되기 시작했어. 아마 공격을 한두시간만 더 서둘렀더라도 영군군은 무너지기 시작한 전선을 복구할 수 없었을 거고 카트르 브라는 프랑스군이 장악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프랑스군이 전선을 돌파하기 시작할 즈음에 웰링턴과 함께 영국군 증원 부대가 도착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프랑스군의 돌파를 성공적으로 저지했어. 네이는 다시 2차 공격에 나섰지만 좌익의 공세는 그럭저럭 성공적이었지만 우익은 거의 완벽하게 저지당했어. 네이는 좀 당황했지만 그에게 오기로 했던 지원병력이 도착하면 영국군의 방어를 분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프랑스군의 주공은 리니에 있는 프로이센 군으로 집중하기로 변경된 상태였고 네이에게 약속되었던 지원병력들은 리니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어. 카트르 브라의 상황이 완전한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 다음에야 이 사실이 네이 원수에게 전달되었고, 이에 우리의 네이 원수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된 거야. 그래서 네이는 리니에 거의 도착해 있던 지원 병력에 전령을 보내 이들에게 즉각 카트르 브라로 이동할 것을 명령하게 돼. 당연하게도 리니에 거의 도착해 있던 지원병력들은 제 시간에 네이와 합류할 수는 없었지.

 

  결국 카트르 브라에서의 프랑스군 공세는 완전하게 실패했고 반면 영국군은 후속 부대들이 슬슬 도착함에 따라 숫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어. 영국군의 반격으로 공세 시작 지점까지 프랑스군은 후퇴하게 돼. 이로서 1. 영국군은 이전까지 흩어져있던 병력들을 모두 집결시키는데 성공했고 2. 카트르 브라를 완전히 장악하여 동쪽으로 이동하여 프로이센군과 합류하거나 서쪽으로 이동하여 항구로 후퇴하거나 북쪽으로 이동하여 브뤼셀을 지키거나 ... 등등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어. 더 이상 나폴레옹의 전략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열쇠를 얻은 거지.

 

 

3. 16일, 리니 전투

 

  블뤼허는 강과 마을을 끼고 방어 라인을 구축했어.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이 방어라인에 의해 프랑스군이 공격해오기도 힘들었지만 동시에 프로이센군 역시 반격하기 힘든 지형이라는 것을 블뤼허는 간과하고 있었어. 그리고 나폴레옹의 군대에는 유럽 최강의 포병대가 있다는 것 역시.

  나폴레옹은 대규모 포병 공격으로 프로이센군을 타격한 후 병력을 한 곳에 집중해서 프로이센군의 방어라인을 뚫고 카트르 브라 쪽에서 도착할 네이와 네이에게로 갈 지원군과 함께 협공, 적 전력을 일거에 궤멸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어. 과연 오전 내내 서쪽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네이가 별 탈 없이 4거리를 장악하고 이동 중이라고 판단했어. 물론 그때쯤 네이와 친구들은 밥을 먹고 있었겠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나폴레옹은 자신감 있게 한 마디 해.

 

말했었지? 위키 만세!

 

  "3시간! 3시간이면 결판이 난다. 네이가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면 프로이센군은 단 한명도 도주할 수 없을거야!"

  ... 뭐랄까 명령부터 제대로 내린 다음에 이런 확신이 나와야하는게 아닐까.

 

  프랑스군의 포격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블뤼허의 방어선은 붕괴하고 프랑스군이 꾸역꾸역 돌파하기 시작했어. 근데 서쪽에선 아무도 오지 않고 있었어. 속이 탄 나폴레옹은 아껴두고 있던 프랑스군의 정예, 제국근위대를 공격 준비시키는 한편 서쪽의 네이와 지원군들을 향해 단체 문자를 날리게 돼.

 

[님들 빨리 좀 오시져.]

 

  이 문자가 네이에게 도착할 때는 네이가 신나게 웰링턴에게 발려서 후퇴할 타이밍만 찾고 있던 17시 쯤이었으니까 그의 답문자는 뭐 쉽게 상상할 수 있을거야. 여튼 얘들을 기다릴 틈이 없다고 판단한 나폴레옹은 제국근위대를 붕괴하기 시작한 프로이센 진형으로 진격시키기로 해. 이 공격이 그때 들어갔다면 포위섬멸만큼은 아니었겠지만 프로이센군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공격이 시작할 즈음인 17시 30분, 프랑스군 좌익의 뒤쪽에 정체불명의 부대가 나타나기 시작해.

 

  이 듣도 보도 못한 애들 때문에 제국근위대의 공격은 캔슬되었고 프랑스군 좌익 전체가 술렁거리게 되고 심지어 전열을 이탈하는 병사들까지 나타나게 돼. 얘들은 그니까 위에 지도에 괴상한 궤적을 그리고 이동하고 있었던 데를롱(d'Erlon)군단이었어. 그니까 네이에게 지원되기로 했던 군단이자 중간에 나폴레옹에게 소환되어 원래대로라면 프로이센군의 서쪽 후방에 나타나야할 애들이지. 하지만 나폴레옹이 악필탓에 명령서의 목적지를 와뉼레(Wagnele)가 아닌 와녜(Wagnee)로 이해하여 생뚱맞은 방향에서 나타난 거야. (지도에선 와뉼레에 제대로 도착한거처럼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약간 아래 쯤이래) 뭐 딱히 명령서를 의심하지 않았던 데를롱은 전령을 보내 자신들의 정체를 알리지 않았고.

  더 골때리는 것은 그렇게 거의 도착했던 데를롱 군단은 네이의 급전을 받고 다시 카트르 브라로 돌아가버렸단 거야.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가 다시 총총히 사라지는 아군이라... 소위 X맨이라고 하던가. 여튼 이들이 카트르 브라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전투는 결판이 난 상황이었고. 결국 16일 데를롱 군단은 아무것도 못하고 이리저리 하루종일 걷다가 하루를 공친 셈이야.

 

  다소 삽질은 햇지만 18시 30분 다시 제국근위대의 집결이 시작되었고, 19시 30분부터 시작된 집중 포격 이후 프랑스군의 공세가 재개되었어. 결국 프로이센 진형은 완전히 붕괴했고 블뤼허는 가망없는 기병 돌격으로 이 공세를 막으려 했으나 완전히 저지당하고 자신 역시 낙마하여 말에 깔려있다가 간신히 구출되는 등 참패를 당하게 돼. 리니에 집결했던 프로이센군의 3/4는 정처없이 패주하는 신세가 되었어.

 

4. 6월 17일

 

4.1. 호구필타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했던 얘기인데,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 전투에서 패배한 쪽이랑 승리한 쪽의 피해를 대조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고 해. 오히려 승리한 쪽의 사상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해. 다만 전투의 결과로 한쪽은 대오가 완전히 무너진 채 패주하게 되고 한쪽은 조직력이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거지. 클라우제비츠는 이 대오가 무너진 애들을 끝까지 추격해서 산산히 가루가 될때까지 까고 까고 또 까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싶었던 거야.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을 리니에서 패주시킴으로써 승리를 굳힐, 그러니까 프로이센군을 추격하여 전멸시키거나 적어도 영국군과 합류할 수 없는 지점까지 패퇴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 지금까지 삽질한 것을 한번에 만회하고 애초의 전략적 목표-각개격파-를 달성할 수 있는 찬스. 그러나 16일 리니 전투가 끝나고 프로이센군이 패퇴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어떠한 추격도 조직되지 않았어. 그리고 그 다음날 오전에 역시 나폴레옹은 시체가 가득한 벌판을 왔다갔다하며 우중충한 마음을 싸이에 정리해서 올릴뿐,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일본 야구 격언 중에 호구필타(好求必打)란 말이 있어. 좋은 공이 날아왔을 때는 반드시 휘둘러란 얘기야.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쉬운 건 아니어서 격언이 되었을 거야. 노리던 공이 날아오지만 초구라서, 혹은 카운트에 아직 여유가 있어서, 혹은 이런저런 망설임 때문에 휘두르지 못하곤 하잖아. 하지만 노리던 공을 놓치고 나면 어느새 카운트에 몰린 상태에서 잡스런 공이나 쳐야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법. 왜 나폴레옹은 차려진 밥상을 마다했을까? 지금까지 전역에서 프랑스군은 수많은 삽질을 해왔지만 그건 부족한 정보, 소통 상의 장애 등에서 오는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지만 적어도 리니 전투 직후의 이 삽질은 결단력 부족에 기인한 것이었어. 과연 간만의 좋은 공을 어이없게 놓쳐버린 나폴레옹에게 내일의 해는 뜨게 될까? 글쎄.

 

4.2.

 

  귀중한 시간을 얻은 프로이센군은 말에 깔려 빌빌 거리는 블뤼허를 대신하여 지휘봉을 잡은 그나이제나우의 지휘 아래 후퇴하기 시작해. 프랑스군의 추격이 없었던 상황이라 프로이센 애들은 남은 병력을 온존시킨채 조직력을 회복할 기회를 잡았어. 다만 후퇴를 지휘하던 그나이제나우는 콩가루 동맹국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고 그래서 특별히 영국군과의 공조 따위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게 문제의 소지가 있었어. 실제로 그는 최종 집결지를 프로이센군의 보급지인 동쪽 멀리있는 리에주(Liege)로 잡았고 최종집결지까지 프로이센군이 후퇴했다면 아마 이후 전역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공동작전은 물건너 가게 되었을 거야. 근데 16일 밤, 후퇴를 위해 급조된 회의에서 워낙에 어둑어둑하여 지도가 잘 보이지 않았대. 그나마 지도상에서 알아볼만한 곳을 찾다가 워털루 바로 동쪽인 와브르(Wavre)로 1차 집결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

 

4.3.

 

  한편 나폴레옹은 17일 오후 네이의 전투보고서를 받고서야 영국군 주력이 카트르 브라에 있다는 것을 눈치까게 돼. 나폴레옹은 급히 군을 정비하여 카트르 브라로 향했어. 네이가 영군군의 발목을 잡아준다면 남쪽(네이)과 동쪽(나폴레옹)에서 협공하여 영국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나폴레옹은 판단한 거지. 그리고 오전의 우중충한 정체를 벗어나 그루시에게 군의 전군의 1/3로 프로이센군을 추격할 것을 명령했어. 이 시점에서 프로이센군의 조직적 퇴각은 거의 이루어진 상황이라 확실한 뒷북이었지만 말야.

 

  웰링턴 역시 블뤼허가 처절하게 깨졌다는 뉴스를 확인했고 카트르 브라에 얼쩡거리고 있다간 협공을 받을 우려가 크다는 것을 알아채게 돼. 프로이센 애들이 작살난 상황에서 동쪽으로 가서 합류하는 건 물건너 갔고 북쪽으로 가서 일단 브뤼셀을 방어하고 프로이센군과 합류를 모색해보기로 일단 계획을 세웠어. 하지만 여기서 네이의 프랑스군이 공격해온다면? 그럼 카트라 브라에 발이 묶이는 거고 프랑스군의 양면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겠지. 웰링턴의 운명은 네이의 손바닥 위에서 애처롭게 춤을 추고 있었어.

 

  웰링턴이 1분의 망설임도 없이 후퇴를 결정한 시점에서 ... 네이는 1분의 망설임도 없이 부대에 취사를 명령한 후 밥을 먹었어. 나폴레옹은 빡이 좀 돌아서 네이에게 당장 공격을 재개하라고 명령했지만 네이의 부대가 공세에 나서고 나폴레옹의 본대가 도착했을 즈음엔 웰링턴은 이미 흔적도 없이 후퇴한 상태였어. 웰링턴은 그대로 북상해서 자신이 예전부터 점 찍어둔 곳에 방어선을 쳤어. 바로 워털루에.

 

워털루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