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호메로스적 인간
... 호메로스적 인간은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놀랄 만큼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어떤 부분 또는 기관이 행동하거나 고통 받으면 인간 전체가 행동하거나 고통 받는다. 그러므로 감정과 행동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없다. 예컨대 포보스(phobos)란 낱말은 공포와 패주를 동시에 의미하며, 트레오(treo)란 낱말은 동시에 '두려워하다'와 '달아나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누구든 슬픈 일을 당하면 눈물을 흘린다. 말하자면 호메로스적 인간은 햄릿(Hamlet)처럼 의지와 행동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그의 의지에는 이미 행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의지가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인간은 그의 행동과 일치하며 그의 행동에 의해 완전히 파악될 수 있다. 그에게는 어떤 숨겨진 내면성 같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적 인간은 외계를 향해 활짝 열려있다. 따라서 그는 말과 행동을 통해 아무 유보 없이 자아를 실현하듯 자기에게 주어진 몫 즉 운명이라면 죽음조차도 흔연히 받아들인다. 예컨대 아킬레우스는 "내 운명은 신들이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지 받아들이겠다."("일리아스" 17권 118행, 22권 365행)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얻게 될 불멸의 명성의 대가가 죽음임을 분명히 알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메로스적 인간은 주어진 가능성 안에서 자신이 원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행동할 뿐,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행동하다가 파멸의 심연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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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뒷세이아"의 새로운 가치관과 서사시의 종말
호메로스적 인간의 이러한 특징은 "일리아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오뒷세이아"에서는 이미 그러한 인간상이 결정적인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 때문에 수많은 영웅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데 반해,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뒷세우스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와 끈기로 운명을 개척해 나감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그러므로 "일리아스"가 오직 용기와 명성만을 추구하던 옛 가치관을 이상화했다면 "오뒷세이아"는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새시대의 가치관을 이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아킬레우스가 이상주의자라면 오뒷세우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따라서 "오뒷세이아"의 세계는 현실에 더 가까우며, 이러한 리얼리즘은 어쩔 수 없이 작품 전체에 다른 성격을 부여하게 된다. ...
"일리아스"의 이상화된 세계는 영웅들의 자아실현을 위한 장이다. 따라서 등장인물은 외부세계를 향해 활짝 열려있다. 그러나 다양하고 복잡한 "오뒷세이아"의 세계는 언제든 인간의 자기보존이 위협 받는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 세계다. 따라서 인간들은 외부 세계에 대해 폐쇄적이다. 이렇게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보존이 우선하는 폐쇄적 세계에서는 불신과 변장과 거짓말도 생존을 위한 합법적인 수단이 되며, 어떤 수단을 쓰든지 끝까지 살아남는 강인한 자만이 위대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뒷세이아"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가치관은 서사시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서사시는 본직적으로 영웅시며 그 장중한 문체와 박력 넘치는 운율도 평범한 일상 세계를 노래하기에는 적합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을 통해 일상 생활에서의 여러가지 지혜와 교휸을 얻고자 한다면 굳이 서사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에 적합한 다른 장르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헤시오도스의 교훈시와 그리스의 서정시다. 일상생활에서의 지혜와 규범을 말해주는 헤시오도스의 교훈시에는 여전히 서사시의 운율이 사용되고 있으나 개인의 내면 세계를 조명하려는 서정시에서는 서사시적 문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그리하여 "일리아스"에서 하나의 전체이던 인간은 "오뒷세이아"를 거쳐, 헤시오도스의 교훈시와 서정시에 이르러 외면과 내면으로 완전히 양분되는 것이다.
-천병희 옮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중 에서 천병희의 해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단순 무식한 '해설' 소화.
오뒷세우스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한 인간형.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내심으로 은근히... 혐오하고 경멸했던 것 같다.
근데, 일리아스적 인간. 어쩐지 익숙해..
나의 단순성을 인정하기로 했다. 고전적인 인간형.
고전을 분해해온 천병희의 시선은 지금 이 순간을 분석하기에도 일견, 적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