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체화

분류없음 2014/10/24 09:11

제목: 습관의 체화體化

 

며칠 전 다운타운에 있는 한국인 마을에 들렀다. 팔구십년대 한국 소도시 읍내를 연상케하는, 그래서 어쩐지 정감이 가는 그 곳에는 중국인을 상대로 틈새장사를 하는 중국 식당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생긴 중국 만두가게. 입간판을 읽어보니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필경 그 거리에 즐비한 여느 한국인 식당처럼 고용인들에게 최저임금 이하를 지불할 가능성이 높다. 맛은? 한 번 시도해보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만두를 빚던 아낙네가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 중국어라곤 워아이니 밖에 모르니 영어로 대꾸하는 수밖에 없다. 또 다시 이 아낙네가 뭐라뭐라 중국어로 말하니 내실에서 젊은 처자가 나온다. 주문을 하고 카운터에 서서 기다리는데 그 만두아낙네가 계속 빤히 쳐다본다. 살짝 웃으면서 날씨 이야기를 했으나 쇠 귀에 경 읽기. 뚱한 얼굴로 계속 쳐다보면서 위아래로 스캔한다. 한국에 있을 때도 왕왕 겪었던 일인지라 그이의 바디랭귀지를 애써 통역한다면 "이 인간은 대체 정체가 뭐야, 남자야 여자야" 정도 되겠다. 한국에서 그런 일을 겪을 때엔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거나 불쾌한 표정으로 쏴붙였지만 여기에선 그냥 웃어준다. 웃는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의 출신 인종이 동아시안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무례한 시선과 스캐닝을 일삼는 (?) 사람들은 대부분 동아시안들이라는 거. 그 가운데 중국인, 나이드신 분들이 압도적이며 간혹 한국인들도 있다. 인디아-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지의 남아시안들은 대부분 나처럼 생긴 동아시안, 즉 걸그룹처럼 생기지 않은 동아시안에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때때로 예의 중국인들처럼 쳐다보는 코카시안들이 있긴 하다. 인종을 불문하고 여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나 이 나라 비즈니스 문화를 겪은 사람들은 저렇게 대놓고 쳐다보진 않고 눈치껏 쳐다보거나 말을 시킨다. "모자 이쁘다. 어디서 샀니?" "레고 시계 그거 진짜야? 멋지다 얘" "날씨가 정말 개떡같아 그치?" 뭐 이 정도. 지루한 통근, 통학 가운데 짧은 재미를 타인과 함께 누리는 방식이다. 내 기억으론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말을 걸거나 쳐다보다가 웃으면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 취급을 했던 것 같다. 요즘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독특한 복장의 한 백인 여성의 목부근에 새긴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개 구(狗).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견(犬)도 아니고 하필이면 구(狗). 민망했다. 나의 시선을 느낀 그 백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내 문신 멋지지? 너 이 글자 알아?" "으응, 문신 멋지다. 강아지로 알고 있는데. 나 강아지 진짜 좋아해" (사실을 말하는 것임에도 이 대목에서 약간 비겁한 느낌이 드는 건 느낌 탓인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 여인, 갑자기 자기가 왜 개 구(狗)를 문신했는지 설명한다. 둘 다 내릴 준비를 하던 차라 주의깊에 듣지 못했기도 하고, 이 여인네가 너무 빨리 얘기해 따라잡지 못한 탓도 있지만 대충 이해한 것으로는 여성을 비하할 때 쓰는 bitch 라는 말에 대한 자기 자신의 해석이다. 가끔 사람들이 bitch 라고 욕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자기는 그 사람들에게 bitch가 어때서? 라고 되받아친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는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자기 엉덩이에 암컷 강아지를 일컫는 또 다른 한자 타투가 있는데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응, 설명해줘서 고마워.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 우리는 이내 환승장에서 내렸다. 나는 전차를 타러, 그녀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狗)'는 내가 환장해하는 강아지들, 개들을 일컫는 적당한 글자는 아니다. 어감 상, 모란시장에 있을 육고기들 같은 기분이지 예전에 함께 살았던 반려견 이슬이나 동네에서 아침저녁으로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는 강아지 친구들을 이르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그 느낌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나는 가령 '개고기'라는 글자를 자기 몸에 문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는 '합리적 사고'를 하고 있었으므로 그 백인여인네를 불경하거나 의아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무언가 나와 다른, 내 생각과 다른 것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어떤 행동심리적 기제가 나로 하여금 그 여인네를 쳐다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이런 행동 --타인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는 몸에 베인 행동; 타인의 불필요한 시선을 잡아당기는-- 을 의식적으로 차단하거나 훈련을 지속하여 태도를 교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구(狗)냐 견(犬)이냐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구(狗)-견(犬)에 대한 나의 이해, 합리적이라 이해하는 나의 이해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맥락은 이 여인네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내용(contents)을 자신의 몸(body), 문자(text), 그리고 문신(tatooing)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구(狗)든 견(犬)이든 내 몸에 반영구적 글자나 그림을 새길 생각은 아직 없다. 이것은 그 여인네와 나의 차이일 뿐, 누가 옳은지 그른지 따위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엉덩이 좀 그만 봐 by Steve Langhorn

 

 

 

* 그림도 잘 올라가네. 블로그 스킨은 역시 구관이 명관. 보수 만세 

 

2014/10/24 09:11 2014/10/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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