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의권력

분류없음 2016/08/03 03:54

 

 

아주 흥미로운 국문 기사 하나를 접했다.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이 지난 100년 사이 20.1㎝나 폭풍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세계 200개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이라고 한다. 영국 임페리얼컬리지 연구팀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는 여기에서, 그것을 다룬 가디언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로서 지난 몇 년 간 혼자만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한 가설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선 것 같은 즐거운 Kibun.

 

 

1.

물리적으로, 그러니까 주먹으로 남자들과 더 싸웠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을 깨달은 건 창피하지만 스물이 훨씬 넘어서였다. 아니 그 전에 약간의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는 했다. 아마 십대 후반, 남동생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 전에 남동생과 종종 주먹다짐을 하곤 했는데 언제나 내가 이겼다. 그런데 어느날, 그러니까 그날 또 싸우다가 아구창을 한 대 맞았다. 결국 이기긴 이겼는데 남동생에게 맞은 아구창이 무척 아팠고 통증이 며칠 갔다. 아 이 놈이 많이 컸구나. 그날 우리 둘의 싸움을 말리던 엄마께서도 한 군데를 다치셨다. 그 뒤로 우리 둘은 싸우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에서 교육투쟁 농성을 하던 밤, 가까스로 강간을 모면한 그날밤 그 예비역 남성과 싸우다가 또 아구창을 맞았고 이번엔 된통 맞았는지 어금니가 산산조각났다. 안경을 쓴 그이는 격투 과정에서 나에게 맞아 눈썹을 오센티미터 꿰맸는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깨달았다. 더 이상 물리력으로 어른 남자들과 싸워선 안되겠다. 이러다가 틀니를 하고 말지. 아마 죽을지도 몰라. 슬펐다. 아마 이 시점부터 근력/ 체력에서 여와 남의 차이는 생득적이라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일종의 자기합리화.

 

 

2.

또 십 년 뒤. 이름난 한 페미니스트 교수 K와 술자리를 갖게 됐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성차이 (gender differences)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체력적으로 남성집단이 원래부터 강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얘기를 했다. 교수 K 는 원래부터라면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냐, 원시공산제시대부터냐, 등등의 질문을 했다. 나는 당연히 그렇지 않겠냐고. 사냥과 채집의 생산활동, 출산과 양육 등등 불라불라 떠들었다. 그러다가 이 양반이 가만히 질문을 했는데 자세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러하다: 만약 잉여생산을 (그러니까 예를 들어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한 집단의 성이 독점하거나 과점하여 소비하고 이 행위가 대를 이어 몇 천년 동안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그 독과점 집단의 신체발달/ 근육의 질과 양 또한 상대적으로 비례하여 성장하지 않겠냐고.

 

 

3.

어린 시절, 명절에 외갓집에 가면 육류/어류 등의 음식을 우선적으로 소비하는 순서는 외삼촌, 외삼촌의 장남, 외삼촌의 차남이 1순위-3순위였다. 이것은 거의 고정적이었고 그 때만 해도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던 외할머니는 육류를 잡숫지 않으셨고 나도 고기를 먹지 않았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음식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 또한 큰 영향을 미치긴 미쳤다. 의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외갓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나이들면서 알게 됐다. 특히 K 교수와 만난 그 뒤로 잘 관찰해보니 여느 집마다 고기를 굽거나 "요리"를 하면 가장, 아들, 딸, 엄마 순서로 배정하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도메스틱 질서에서만 이런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니었다. 회사나 학교, 여타 사적인 모임 등에서도 덩치가 큰 남자나 아저씨들 중심으로 밥상권력이 재편된다. 고기를 굽거나 시중을 드는 사람은 대부분 어린 사람들 (주로 여성들) 일 가능성이 높고 그 어린 여성이 고기를 굽거나 이런저런 잡일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그 고기를 쳐묵쳐묵한다. 그 남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쳐묵쳐묵해도 되는 지위에 있거나 남자라면 그래도 되는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에 만났던 한 여성 활동가는 집에서 동태탕을 끓이면 동태살이 그득한 부위를 오빠와 남동생에게, 꼬리 부위는 자신에게 주는 할머니와 싸운 적도 있다고 했는데 그 때마다 할머니께서 생선은 꼬리가 맛있다, 고 하셔서 기가 막혔다고 했다. (응? 어두육미 아닌가?) 

 

학교식당이나 급식시설을 갖춘 회사에서는 남성에게는 밥이나 반찬을 더 주고 여성에게는 그에 비해 적은 양을 준다. 배식하면서 필요한 양을 미리 물어보지 않는다. 지레짐작한다. 스스로 급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전의 일이다. 요즘에는 이런 일은 없겠지.

 

"공대여자밥" 이란 말이 있었다. 여학생이 밥을 많이 먹으면 "너 공대 다니냐" 는 농담이 실제 현실에서 유력하게 쓰이고 개그로 취급받던 그런 때가 있었다. 요즘에는 이런 일은 없겠지.

 

사내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된다. 곧휴가 떨어진다. 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데 나는 궁금한 게 부엌에만 들어가도 똑 떨어질 정도로 간신히 붙어있는 거라면 평소에 불안해서 어떻게 살지 그게 참 궁금하긴 하다) 음식을 장만하는 일엔 고약할 정도로 진저리를 치면서 그 음식을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일엔 열심이다.

 

이런 불편등한 질서와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고착되어 몇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면 상대적으로 음식배정 순위에서 밀린 집단이 유전학적으로도 근육발달 측면에서도 왜소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4.

흥미로운 것은 지난 백 년 동안 한국 여성들의 키가 20센티미터나 성장해 성장속도에서 1위를 보인다는 그 부분인데 지나친 가정이지만 - 억지이겠지만 만약, 적어도 최소한 임진왜란 뒤 지난 몇백 년 동안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수준으로 영양섭취를 했다면 아마도 "180 아래는 루저" 라는 말을 했다고 십자포화를 맞고 산화한 여성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다는 그런 생각. 따라서 당연하게도 메갈리안 같은 "극단주의자"도 없었을 거라는 그런 생각.

 

 

 

2016/08/03 03:54 2016/08/03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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