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아프다

분류없음 2016/11/07 13:51

 

헤로인 중독 (Heroin addiction) 을 벗어나고자 재활치료시설 (residential rehab centre) 에 지원한 뒤에 기다리고 있는 한 클라이언트. 저녁시간을 넘긴 시각에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으로 대화를 해보니 뭔가 약물을 하신 눈치다. 버튼을 눌러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는 대신 직접 나가서 문을 열고 맞아 들였다. 잘 걷지도 못하고 눈이 풀렸고 술냄새가 펄펄 난다. 반응이 늦다. 전형적인 진정제 계통의 향정신성 마약 (depressants) 을 과도하게 했을 때 (overdosed) 나타나는 증상. 무슨 약 했니, 물었더니 헤로인이란다. 어떻게 했니, 물었더니 코로 했단다 (snorting). 술은 마셨니,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뭘 잡쉈구만. 위험신호. 헤로인과 술을 함께 하면 매우 위험하다. 순식간에 골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엔 꼭 안가도 되니까 전문응급처치 (paramedics) 를 불러서 체크업하자, 물었더니 싫단다. 배고프단다. 계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단단히 옆에 붙어서 식당으로 갔다. 메뉴는 멕시칸 음식. 먹을 수 있게 돕고 저만치 떨어져서 모니터하려는 순간 바닥으로 콰당 넘어져버렸다. 못 일어나고 눈을 못 뜬다. 바로 911에 전화. 평소엔 5분만에 달려오는 앰뷸런스가 이십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대신에 911을 통해 전문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이 양반을 이렇게저렇게 돕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었다. 처음엔 뭐라뭐라 중얼거리기라도 했는데 아무 말도 없고 숨쉬는 속도, 심박이 점점 떨어졌다. 눈꺼풀을 뒤집어보니 동공이 아예 돌아갔다. 어느 순간 숨을 쉬지 않는다. 아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911 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프트파트너에게 소리를 질렀다. 밖에서 욕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욕까지 했다. 썅 이것들 애 안와 서두르라고 씨발. 어쩔 수 없이 씨피알 (CPR) 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그 순간 경찰들과 응급처치 전문가들이 도착했다. 휴우.

 

 

다행히 십 분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의식을 찾자마자 죽게 내버려둬 다들 저리 가, 소리를 지르고 발길길을 하는 바람에 억압복과 수갑을 찬 채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수갑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너무 심하다고 경찰에게 항의했지만 앰뷸런스 요원들이 다치면 책임은 누가 지냐고 묻는다. 젠장. 경찰 중에 한 명 간호사 역할까지 겸임하는 사람이 헤로인을 코로 흡입한 게 아니라 주사를 맞은 것 같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그렇게 빨리 의식을 잃었구나.

 

 

헤로인은 정말 정말 위험한 마약이다. 마약은 다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정보를 충분히 알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활용하면 꼭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헤로인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금단 (withdrawal) 과 내성 (tolerance) 이 너무 너무 강하다. 당연히 의존성 (dependency) 도 높다. 요즘엔 헤로인보다 더 강한 화학적으로 재구성해서 나오는 아편류 진정제 (synthetic opioid analgesic), 가령 펜타닐 (Fentanyl) 이나 하이드로몰핀 (Hydromorphone) 같은 게 있기도 하지만 한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마약을 하는지 그 맥락을 들여다보면 헤로인이 더 더 극악스럽게 위험한 것 같다. 마약도 옷이나 음악처럼 트렌드가 있고 연령대, 소득수준과 즐기는 문화에 따라 소비패턴이 확연히 구분된다. 주로 중산층 백인 청소년 사이에 널리 확산된 헤로인은 한번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기 쉽다. 무엇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또다른 진정계통의 약물인 술 (alcohol) 과 함께 할 때 그 위험도는 예상할 수 없는 수치로 치솟는다.

 

 

상황이 종료되고 시프트파트너와 복기 (debriefing) 했다. 시프트파트너도 많이 놀란 눈치다. 클라이언트의 숨이 멎었을 때 나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시프트파트너는 정신분석상담 전문이고 마약에 대해선 잘 모른다. 나도 물론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공부를 해뒀고 각종 마약 워크샵에 참여한 탓에 어느 정도는 안다. 무엇보다 "안전한 약물 사용 관점 (Harm Reduction Approach)" 에 관심이 많아서 미리 배워둔 게 큰 도움이 됐다. 헤로인이 저렇게 위험한지 몰랐어. 꽃개 네 말이 맞았네. 헤로인은 정말 정말 위험해. 특히 술이랑 같이 하거나, 다른 진정제 계통 약물이랑 섞으면 더 위험해. 헤로인+술 먹고 들어온 사람은 절대로 바로 잠들게 해선 안돼. 그냥 다른 세상으로 가실 수도 있어. 다른 세상? 어디? 천국. 퇴근길에 시프트파트너가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면서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사람 하나를 살렸구나.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른쪽 팔과 다리가 쑤시고 아프다. 전에 없던 근육통. 클라이언트의 기도를 확보하느라 손으로 머리를 받쳤는데 고작 십여 분 그런 것 뿐인데 안쓰던 근육을 갑작스럽게 놀란 상태에서 썼더니 그런 것 같다. 무릎 꿇고 씨피알하느라 애썼더니 아마도 허벅지가 놀란 건 아닐까 그렇게 추측한다. 몸이 놀라고 아픈 것은 그렇다고 치지만 마음과 정신이 다치면 후유증이 길다. 인생이 너무나 고달퍼서 약물을 들이킨 그 양반의 마음과 정신도 아프겠지만 그런 양반들을 돕고 지원하는 노동자들도 무척 아프다. 한국에서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기사를 읽어서 그런지 더 아프다. 세상 더 험악해지기 전에 사회복지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빈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지 말고.

 

 

 

* 어제 쓴 포스팅을 읽은 짝꿍께서 영어 단어를 한글로 바로 옮긴 게 너무 많아 요상한 글이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요즘 말로 "보그체" 포스팅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 찬찬히 읽고 한글로 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한글로 옮긴 뒤 영단어를 붙였다. 옛날에 미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유치원 나이 무렵에 한국으로 돌아온 꼬마 아이가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나와 엄마에게 어기적어기적 걸어가 "마미 똥꼬닦아 미"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현지 시간 1822hrs.

 

 

 

2016/11/07 13:51 2016/11/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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