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몸종
분류없음 2016/11/30 01:00지난 번 ADL 단상 과 상당량의 연관이 있는 일상 정리.
클라이언트 한 명의 빨래를 서포트하면서 있었던 일.
빨래는 "라운드리스케쥴"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 스스로 빨랫감을 정리하여 바구니에 넣거나 따로 준비한다. 빨래를 할 의사가 있으면 미리 스텝에게 말해야 한다. 먼저 세탁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려야 한다. 먼저온 사람부터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빨래가 끝나면 드라이기에 넣고 역시 다 마치면 스스로 빨래를 개고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세탁기/ 건조기 사용법, 빨래를 하고 끝난 빨래를 개고 정리정돈하는 법, 시간약속을 지키고 이행하는 법, 기다리는 법, 권리를 이해하고 요구하고 스스로 이행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다. 새로 세탁한 깨끗한 옷을 입으면서 청결이 무엇인지,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지도 배울 수 있다.
스텝 처지에선 한 공정 한 공정 하나하나 가르치거나 안내하고 지켜봐야 하고 몇 번씩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다 큰 건장한 사내가 빨래를 할 줄 몰라 더듬더듬거리거나 세탁기 작동법을 몰라 쩔쩔맬 때에는 하나하나 가르쳐주면서 거기에 잘한다고 칭찬까지 해야 한다. 으쓱하면서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거야, 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면 또 역시 옳지 잘한다! 해야 한다. 어쩔 때는 보고 있기 답답하고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게 답답해서 거들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꾹 참아야 한다. 스텝이 뭔가를 해버리면, 특히 여성 스텝이 이런 일을 해버리면, "응, 내가 안해도 얘네들이 해주는구나" 혹은 "당연히 여자가 그런 일을 해야지. 내 손으로 그런 일을 해야겠어!" 라며 적반하장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의존성 (dependancy) 을 키울 뿐 독립성 (independancy) 을 키우는 데에는 효과가 전혀 없는 접근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기다리고 격려해야 한다. 감정노동이다.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서 이민온 뒤 가족과 이별하고 (이별한 이유는 자세히 모른다) 혼자 살다가 여차저차해서 꽃개가 일하는 곳으로 흘러들어온 한 남자, A라고 해두자. A가 저녁 무렵에 빨래를 하고 싶다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는 다행히 세탁기 사용법, 빨래를 하고 개는 법 등을 잘 안다. 나름대로 개인청결 (personal hygeine) 도 훌륭한 편이다. 건조기가 다 돌아가서 A를 불렀다. 빨래가 다 끝난 거 같으니까 회수해야 할 것 같은데. 졸졸졸 따라오면서 자기는 곧 착한 아내 (good wife) 를 얻을 것이고 착한 아내와 살면 빨래도 안해도 되고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다며 매우 희망에 찬 말을 했다. 요즘 여자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 했더니 금방 삐친다. 그래, 네가 그럴 수 있기를 바라.
정말로 그이가 착한 아내를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