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리뷰

분류없음 2024/02/14 10:04

제목: 간만의 리뷰 

부제: 넷플릭스 연작 에일리어니스트를 보고 (약스포) 

 

 

요즘 넷플릭스에 푸-욱 빠져 있다. 달에 한 번 요금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전혀 들춰보지 못했던지라 새세상이었다. 마치 뭐 맛있는 거 있나, 하며 유버잇츠를 들여다볼 때처럼 타고타고 가다보면 전혀 생각치도 못한 컨텐츠를 발견하기도 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 (The Tale of the Princess Kaguya, 2013)"를 찾았을 때처럼 뛸 듯이 반가운 것도 있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국민학교 초등학교 시절 옆집의 옆집에서 빌려본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한 권이던 일본 전래동화 편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한동안 헤아릴 수 없는 아련함에 시달렸다.

 

에일리어니스트 (The Alienist) 도 이러다가 발견한 아이템 가운데 하나였다. 딱히 평소에 관심을 두던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던 나를 붙들어 맨 것은 그 제목, 타이틀이었다. "에일리어니스트” 는 19 세기에 쓰이던 터미놀로지로 말 그대로 "에일리언 (외부에 연결된 사람; 다른 세계의 존재; 타자)" 을 연구하던 사람을 일컫는다. 에일리언이라 함은 19세기에 외계인이 지구 밖에서 왔을 리는 만무하니 말그대로 외부와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정신질환" 자를 일컫는다. 요즘도 "에일리언" 은 쓰이는 듯하지만 "에일리어니스트" 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대신 "심리학자 (psychologist)" 라는 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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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외국인이 학위를 수여하는 고등교육 기관에 다니거나 합법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거주등록을 하고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 때 신분증으로 발행하는 것이 ARC (Alien Registration Card) 였다. 지금은 RC (Residence Card) 로 불리운다. 최근에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외국인등록번호 (A-number) 라는 말을 아직도 쓰지만 문서상에 대놓고 기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구어로, 업계 용어 (잘곤; jargon) 로 광범위하게 쓰이고는 있다. 아마도 몇 년 뒤엔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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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를 보자마자 십년 전 쯤에 보았던 영화 "히스테리아 (Hysteria, 2011)" 가 생각났다. 불안정한 감정의 파고 (주로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를 겪는 여성들을 설명하기에 마땅한 것이 없던 빅토리아 시대, 그들을 치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히스테리아". 사실인지 아닌지 나로선 규명할 도리가 없지만 상당히 그럴싸해 보이던 이야기였다. 정신적-신체적 질병이던 히스테리아를 다뤄내기 위해서는 여성들에게만 있는 자궁을 다스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 자궁을 (사실은 질이나 외음부를) 직접 손으로 마사지하여 환자의 고통을 (?) 완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바이브레터가 개발됐다. 의사들의 손목이 남아나질 않아서. (믿어나 말거나) 어쨌든 20세기 후반 APA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의 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에서 없어질 때까지 히스테리아는 “정신질환” 이었다.

 

 

에일리어니스트 (The Alienist) 에서도 여성들의 분투가 나온다. 코르셋을 입지 않겠다는 여주 (사라 하워드 Sara Howard, 다코타 패닝 Dakota Fanning 이 연기했다) 가 코르셋을 벗을 때 그녀의 등에 깊이 각인된 코르셋 자국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뉴욕경찰 최초의 여성직원 (바닥 청소하는 사람을 빼고) 이던 여주인공, 사라를 성희롱하는 남자 경찰들과 그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일하는 사라. 서프라제 피켓을 앞세우며 여성의 권리를 외치고 공권력의 폭력에 맞서는 여성들. 일과 사랑에서 무엇을 택할지 양자택일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뇌하는 여주인공. 생각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여자였다. 

 

 

에일리어니스트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들 모두 "결핍" 과 "트라우마" 를 겪어냈고 살아남았고 여전히 그 상처와 싸우며 분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 어릴 적 주양육자에게서 학대 혹은 방치를 겪으면서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insecure attachment) 사람들이 서로 보듬거나 혹은 서로 상처를 후벼파면서 하지만 결국엔 연대를 만들어내는 (fruitful partnership) 과정이 보기에 좋았다. 

 

에일리어니스트는 소설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인지 플롯도 대단히 탄탄하고 싱겁게 흘러가지 않는다. Caleb Carr 의 소설 두 권 The Alienist 와 Angel of Darkness 가 각각 시즌 1 과 시즌 2의 베이스가 되었다. 소설을 쓴 작가의 배경 탓인지 역사적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실도 교묘하게 잘 융합되어 있어서 보는 동안 깜짝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거나 시대를 무시하고 인물을 끌어쓴 일들이 많았다. 요즘 친구들이 보면 간혹 헷갈리겠다 싶다. (아 나는 왜 드라마를 다큐로 받는 걸까)

 

 

덧붙이자면 극 중 에일리어니스트, 라즐로 크라이슬러를 연기한 다니엘 브륄 (Daniel Brühl)은 영화 "굿바이 레닌" 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던 알렉스였다. 어디서 많이 본 양반인데 대체 누구지, 찾아보곤 반갑기도 하고 2004년인가 2005년인가 극장에서 놓친 "굿바이 레닌"을 보기위해 불법다운로드를 감행했던 기억이 나 상념에 젖었다. 벌써 이십 년이 지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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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덧: 극 중 라즐로 크라이슬러는 오페라 광이다. 토론토에 온 뒤 파트너와 꽃개 또한 오페라를 사랑하게 되어 연간 3 - 4 편은 항상 관람하곤 하는데 지난 2월 4일 돈 지오반니 (Don Giovanni, Mozart) 를 본 뒤에 에일리어니스트를 보니 마침 돈 지오반니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이 낯설지 않다. 시즌 1 에피소드 10 편에 나온다. 결국 죄지은 자는 지옥으로 간다는 권선징악 메타포일까. 경찰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한 설정 (18세기에 창작된 오페라이지만 19세기에도 여전히 획기적인 무대장치, 펑- 하고 연기가 나면 귀신들이 나오는) 으로 쓰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근대적인 메타포같아 잠깐 따분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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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등록증 견본 사진은 구글에서 퍼왔고 나머지는 IMDb 에서 가져왔다. 

 

 

 

 

 

2024/02/14 10:04 2024/02/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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