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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통신비밀, ‘보호’인가 ‘보관’인가?

 

[기고] 통신비밀, ‘보호’인가 ‘보관’인가? / 홍지은

한겨레 기사등록 : 2007-04-04 오후 05:29:01 기사수정 : 2007-04-04 오후 06:22:40
» 홍지은/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2006년 정보보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정보화 역기능은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침해’(74.6%)다. 이런 우려를 덜고 프라이버시 보호 방안을 고민해야 할 국회와 정부가 엉뚱하게도 휴대폰과 인터넷에서 국민 감시를 확대하려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전기통신 사업자가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갖추고 개인의 인터넷 로그기록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했다. 수사기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분신이 되어 버린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대한 감시를 조장하는 이번 개정안은 통신비밀 ‘보호’가 아닌 통신비밀 ‘보관’을 위한 입법인 셈이다.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인 휴대전화 감청 허용을 두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통신사업자를 통해 감청을 하게 함으로써 수사기관이 직접 장비를 설치해 사용하는 불법 감청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수사기관의 불법 감청을 좀더 광범위하게 이뤄지도록 하려고 아예 전기통신 사업자들이 직접 감청할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다. 감청 장비를 가진 주체가 수사기관에서 전기통신 사업자로 바뀜으로써 불법이 합법의 탈을 쓰는 상황을 두고, 불법 감청을 막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2005년의 통칭 ‘엑스(X) 파일’ 파문 당시, 국정원 등 수사기관은 2002년 3월까지 국민의 휴대전화를 불법적으로 도청했던 전력이 밝혀진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와 진상규명도 없는 상황에서 휴대전화 감청을 재개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개정안에서 전기통신 사업자가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기록 등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보관을 의무화한 내용은 사실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사이버 감시 체제 구축을 뜻하기에 그 심각성이 더한다. 인터넷 로그기록이란 인터넷 이용자들이 어디에서 언제 접속을 했으며, 어떤 사이트로 옮겨가고, 어떤 파일을 내려받고 누구와 채팅을 했는지 등 개인의 모든 인터넷 이용기록을 말한다. 이미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의 폐해가 만연한 상황에서 특별한 보안책도 없이 모든 국민의 통신내용을 12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보관하게 하는 것은 수사기관이나 전기통신 사업자에 의한 개인정보의 남용과 누설 위험성을 한층 높일 뿐이다. 또한, 이는 국민의 통신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통신비밀보호법에 영장주의를 도입한 2005년의 법개정 취지에도 어긋난다.

인터넷 이용기록과 같은 통신내용을 수사기관에서서 관리하는 상황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선거 시기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가 인터넷 이용자들의 정치토론을 위축시켰던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또한, 올 7월부터 발효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포털 사이트에도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여기에 개인의 인터넷 이용기록 추적이 더해진다면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사라진다. 그리고 그 효과는 당장 연말의 대통령선거 때 인터넷 이용자들에 대한 수사기관의 무차별적인 단속과 이로 말미암은 이용자들의 ‘자기 검열’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와 정부는 지문날인 제도와 주민등록 번호만으로도 부족해서 또 하나의 원형감옥(파놉티콘)에 국민을 몰아넣고 있다. 여론을 살피는 과정은 물론 없었다. 개인 사생활권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이를 망각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즉각 폐기해야 한다.

홍지은/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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