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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2
    노래는 아름다워야만 할까?
    처절한기타맨
  2. 2008/06/02
    사회정의는 질서에 우선한다(2)
    처절한기타맨

노래는 아름다워야만 할까?

  • 등록일
    2008/06/02 18:52
  • 수정일
    2008/06/02 18:52

소나기와 천둥 벼락이 치고 있는 월요일

사람들 잠시 쉬라고 비가 몹시 내린다. 근 일주일을 밤새면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위를 막느라 지친 전경 아이들도 오늘은 그나마 편히 쉴 수 있을듯 싶다.

그래도 기륭전자 구로역 첨탑 고공농성에 올라간 이들을 생각하면 맘이 짜안하다.

걱정일랑 관두고 맘 편히 쉴수는 없는게다. 다시 힘을 추스려야할 뿐

유투브에 거리에서 기타치면서 노래부르는 영상을 칼라TV 스텝 성훈씨가
찍어서 올렸고...조회수가 26만정도가 초과한것 같다.

덕분에 나름 기타맨이란 닉네임이 알려진것 같다.
그러한 것이 앞으로 명동성당앞에서의 공연과 시흥 홈에버 투쟁에
결합해있는 남부문예연대의 활동에도 나름 도움이 될거 같다는것이 제일 기쁘다.

무심하게 다니던 사람들이 혹 나를 알아본다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 노래에
그리고 당대의 현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귀 기울여 주겠지.

여튼 우습게도 요샌 꿈을 꿔도 거리에 시위를 하러 나가는 꿈을 꾼다.
기타를 치거나 혹은 카메라를 들고 있거나...
젠장 꿈만큼은 알콩달콩한 꿈을 꾸고싶은데~
이메가정권이 정말 사람 잡는다.

요새 부르고 있는 한 10여년전 쯤에 만들어진 노래다.
최초로 대중앞에서 불렀던것이 아마도 2000년인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파티에서였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 그 가사에는 이땅의 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담은 것이였다.
북의 김일성 공산 왕조로부터 노무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역대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야유였었다.

그것이 이번에 2메가 정권 광우병 소고기 고시에 의해 촉발된 시위에 잘 결합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나름 반응이 좋다.

우울하거나 슬픈 상황에 대한 나열들, 나지막한 읖조림이 내 가사의 대부분이다.

농담삼아 내 노래는 공중파에 적당하지 않아. 18금이야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름답고 말랑 말랑한 가사들 연애나 사랑타령 일색인 대중가요의 노래가사들은
내 취향도 아니고, 또한 단순한 운동 가요 또한 내겐 체질에 맞지 않다.

쏭앤라이프의 작사 작곡가 윤민석씨 역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어째건
그러한 운동권 문화와는 다름을 계속 유지하는게 나름의 화두다.

요사이야 다양한 인디 밴드들이 댄스일변도의 방송과는 다르게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듯하다. 그래도 그안에도 아직은 순수와 참여에 대한
어리석은 논쟁이 있는듯도 싶다. 그런 편가름에 대한 정리는 나로써는
이미 30대 전에 해결이 됬다.

정태춘의 민중성과 하덕규의 감성 그것을 결합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후두득 후두득 내리는 빗소리가 처연하게 들린다.
사람들 가슴속에 져있는 분노의 응어리들이 잘 풀어졌스면 좋겠다.

어째든 얼마전에 썻듯이 사람들이 뫔 고플때
야금야금 뜯어먹고 기분 배불러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식빵같은 노래 만들어 부르고 싶은 게 내 바램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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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는 질서에 우선한다

  • 등록일
    2008/06/02 14:07
  • 수정일
    2008/06/02 14:07
홍세화 선생님의 사설 하나를 뽀려와서  올린다.

새해 벽두다. 새 집권세력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살려야 할 것은 한국 경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다. 많은 입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국민소득 2만달러’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회 양극화’가 명백한 증거로서, 병든 것은 한국 경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인 것이다.


그 질병의 핵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자리’인가가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노동자의 절반을 넘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지 않고는 사회양극화 해소든 사회통합이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망이 어둡다. 참여정부보다 더 시장만능주의, 성장주의에 기운 정권이 법과 질서를 강조한다. 그 법과 질서는 위장과 탈법의 이명박 당선인 스스로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 이 명제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으로 신분 ‘질서’의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태동한 근대 공화국의 핵심 요체다. 사회정의가 이루어진 곳에서 법과 질서는 지켜지지만 법과 질서가 강조될 때엔 항용 사회정의의 요구를 압살한다.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해야 하는 까닭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공화국의 기본정신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건국한 지 60년을 맞는 오늘까지 정착되지 못했다. 사회정의가 죽은 사회에서 약자는 굴종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이 굴종에 맞서 싸운 사람은 항상 소수였다. 그리고 그 소수에 의해 세상은 이나마 바뀌어왔다. 농성 100일째 되는 날 70여명의 다른 조원들과 함께 삭발한 코스콤비정규지부의 정인열 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벌써 실망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 싸움 시작하면서 환상에 차서, 희망에 차서 시작하지 않았거든요. 어느 정도 힘들 거라고 예상했어요. 옳은 것이 먼저예요. 제가 노동조합을 하게 된 것도 ‘이것이 옳은 것이다, 옳은 것이기 때문에 회피하면 안 된다’라는 거였거든요. 그 옳은 것을 해야 제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지금 자신은 하지 못하지만 이 투쟁이 오래 가도 끝까지 할 것 같아요.”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같은 인간인데 이럴 수는 없다.” 옳지 않기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금력에는 힘이 있지만 정의에는 힘이 없다. 사회 진보란 따지고 보면 정의가 힘을 얻어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은 어렵고 더디다. 실로 힘겹고 더딘 싸움을 옆에서 지켜본 사회 구성원들은 처음에는 불편해하면서 싸우는 소수의 편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싸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면 점차 불편함에 익숙해지거나 불편함을 덜기 위해 그 힘든 투쟁을 나무라면서 눈을 돌린다. 사회 구성원의 무관심과 냉대. 기륭전자, 이랜드 뉴코아, 코스콤, 지엠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대학강사 등 ‘비정규 장기투쟁’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싸움은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특단의 해법은 없다. 다만 사회정의를 요구하고 정의의 싸움에 연대하는 것. 사회적 약자들에게 이것 말고는 무기가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지 않고 사회 진보를 기약할 수 없다면, 새해를 맞아 시민사회는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고 후원하는데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멋진 말 하나 더 추가

 


질서의 반대말은 무질서가 아닌 자유다

- 앙리 베르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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