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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와 축산노동자의 연대?!

bad_dancer님의 [ 삼겹살 집 딸 중에 채식하시는 분?] 에 관련된 글.

말레이시아에 와서... 채식주의자들과 함께 살다보니...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채식주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두부콩(dubucong, bad_dancer)의 글을 반갑고 재밌게 봤습니다.
저 역시 초보 채식주의자인지라... 이번 기회에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잘 정리가 안되네요... ㅠㅠ
하지만 언제 정리될지 알수가 없는 지라.. 그냥 글 쓰다만 단상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제목과 내용이 많이 달라졌는데... 이미 트랙백을 보냈는지라... 그냥 바꾸지 않았습니다.

1.
 '삽겹살 집 딸'과 '남의 살 먹으며 힘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는데...
그 사람들의 정확한 범주의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삽겹살 집 딸’이야, 정 안되면 자기집 가게에서만 고기를 먹으면 딸로서의 의무는 다하는 것이라고 보구요…
‘남의 살 먹으며 힘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것이 '채식을 하면 힘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채식주의자들이라면 당연 잘못된 상식이라 할 것이고... 적어도 논쟁 중인 문제를 쉽게 가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의아합니다.
'채식하는 흑인? 채식하는 노동자? 채식하는 이민자?' 등의 문제는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마치 흑인, 노동자, 이민자.. 등의 사람들이 아나키스트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나키즘이 힘을 내는 데 불리해서 그런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2.
두부콩님이 글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 질문이...
채식주의는 ‘육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채식주의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것으로 제 마음대로 해석한다면…

‘육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범주는 ‘축산노동자’가 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도축노동자는 물론, ‘삼겹살 집 주인’이나 정육점 노동자와 같은 육류 유통업 노동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축산노동자 말입니다.
과연 채식주의자에게 축산노동자는 어떤 존재인가?
채식주의자에게 축산노동자들은 혐오의 대상이자, 악의 근원이고 ‘채식주의자 세상’이 되면 모두 사라져야 할 대상인가?

물론 ‘축산 자본’은 혐오의 대상이고, 악의 근원이고, 사라져야 마땅하죠.
그리고 사실 축산자본은 육식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축산자본이 자본인 이상 그들이 ‘채식 자본’으로 변신하는 것은 일도 아니죠.
맥도날드가 채소가 듬뿍 든 새로운 햄버거를 개발하는 것처럼요.
실제로 대부분의 ‘건강’, ‘웰빙’ 채식 담론은 축산자본과 경쟁하기 위한 채식자본의 이데올로기 이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3.
‘공정한 돼지고기, 자유로운 닭고기, 억압없는 쇠고기’를 생산하는 문제는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를 생산하는 노동이 공정하고, 자유롭고, 억압없게 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돼지, 닭, 소와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말이죠.
음… 대화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겠군요. 동물들에게 생명은 타협의 대상이 아닐 테니까요.

결국, 채식주의자는 음식의 소비 뿐만이 아니라 생산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채식의 생산은 물론 육식의 생산도 말입니다.

4.
사실 저는 채식/육식의 구분은 무엇보다 생물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낙과-과실-채소-우유-달걀-생선-닭-돼지-소-개-사람의 단계를 임의대로 나열하고 어디까지는 먹어도 되는가, 어떤 동물까지가 인간의 친구인가라는 논쟁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반자본주의적 채식주의 역시 육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와 똑같은 정도로, 채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를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 의의를 잃어버린다고 봅니다.

식물도 만만치않게 불쌍하기도 하고... 그 생산의 문제도 심각하죠.
다음 글을 강추합니다.
다국적 곡물 자본에 점령된 세계의 밥상.

5.
그래서... 결국 문제는... 다음으로 귀결...
채식주의자는 어떻게 음식(채식이든 육식이든)을 생산할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울 것인가?
만약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다면, 어떤 농업(축산업을 포함해서) 생산방식을 지지하고, 어떻게 농민(축산노동자를 포함해서)을 지지하고 연대할 것인가?

6.
‘공정한 돼지고기, 자유로운 닭고기, 억압없는 쇠고기’는 마치 '억압없는 자본주의'와 같이 형용모순이거나 기만적인 언표다.
'고기는 먹고 싶은데, 좀 다른 고기가 없을까?'라고 하는 어쩌면 단순한 사고의 결과?
여기에는 '나는 어떤 고기를 생산할 것인가?' 다시 말해, '나는 어떻게 동물을 죽일까'라는 생각이 빠져있다.
생산을 생략한 채 소비 차원만을 사고한 결과.

7.
저는 만약 모든 사람들이 동물을 죽이는 노동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동물을 죽여서 음식으로 만든다면, 육류의 소비는 현재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하는 편입니다. 
동물을 죽인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테니까요.
물론 이러한 감정과 선호의 문제는 사람마다 다르고, 문화에 따라 다르겠죠.
자신이 동물을 죽여서 육식을 하는 것을 전혀 거리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 먹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봅니다.

8.
제목으로 쓴  '채식주의자와 축산노동자의 연대?!'는 여기 말레이시아 친구의 글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이 친구는 스스로를 아나키스트이자 비건(Vegan)이라고 소개합니다. 채식주의가 자신의 여러 종교 중에 하나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편이죠.
이 친구가 내는 zine에 도축노동자의 문제가 나오더군요. 아주 재밌고 정확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두부콩님이 글을 보고 제목으로 차용했죠.
(여기서 zine은... magazine하고 구분해서 쓰는 이 친구들의 용어로서... 개인이나 집단이 소규모로 부정기적으로 만들고, 여기저기 행사때마다 배포하는 일종의 팜플렛입니다. 여기서는 활동가들 사이의 중요한 소통과 선전의 도구로 쓰입니다.)

즉, 도축노동자는 동서고금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혐오받고, 신분이나 계급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어느정도는 본질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는 사회적으로(특히 상류 계급에 의해) 요구되는 행위임에도... 터부시되고 혐오받고 있다.
공장에서 동물들이 잔인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도축노동자들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에 의해서 멸시와 혐오를 받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채식주의자는 도축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뭐 이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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