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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바탕 없이 초월 지평 안 열린다


해탈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불행의 극점에서 해탈의 극점까지는 무한분법(無한분법)적인 무수(無數)단계가 있다고 봐야겠지만 표현의 편의를 얻고자 삼분법(三分法)을 써 본다면, 욕구가 좌절되면(좌절됐다고 생각하면) 불행을 느끼고, 욕구가 성취되면(성취됐다고 생각하면 행복을 느끼고, 욕구를 놓아 버리면 해탈을 느낀다.

불교인이 지향하는 바는 해탈의 극점인 묘각(妙覺: 大覺)이다. 이 묘각을 위해서 일체의 욕구를 버리게 한다. 물론 옳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수양 수준이나 근기나 기질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모든 사람에게 "탐심(貪心)을 놓아라. 무상, 무아이지 않느냐"하고 요구하기로는 무리다.


많은 가르침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 사람은 대체로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욕구-좌절-분노-욕구-좌절-분노'의 악숙환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 욕구는 더욱 치열해지고 진심(瞋心)은 더욱 심각해진다.
욕구가 성취되어 기쁨을 느끼는 경우라 할지라도 성취될때까지 지속되는 긴장감은 분노[불유쾌 정서층]의 심각도를 높여 준다. 뿐만 아니라 기뻐함과 동시에 다음 성취를 위한 새로운 긴장이 시작되고 더 큰 성취 욕구로 재무장하고 나서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인생이란 탐(貪), 진(瞋)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탐, 진은 "나는 존재한다" "나는 불만족 상태에 있다" "나는 사랑받아야 한다." "나는 인정받아야 한다" 등의 그릇된 사고 방식[痴]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이는 탐(貪), 진(瞋), 치(痴)를 세가지 독물[三毒] 이라 하여 철저히 제거해야 할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런 심리 구조로 보아 탐, 진의 뿌리인 "나는 존재한다" 등의 삿된 견해를 퇴치하기 위해서 공(空), 무아(無我)와 같은 존재론적 정견이 요청됨은 당연하다.

 

 

지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욕구 좌절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겹겹이 퇴적되어진 무의식 속의 탐, 진의 한(恨)이 무작정 "공이니라" "무아니라" 등의 초워론법으로 용해되기는 어려운 법. 중생 진화의 완료인 묘각을 결정짓는 주(主)바라밀 - 염불선, 간화선, 묵조선, 비파사나, 주력, 공관(空觀), 법계관(法界觀), 일심삼관(日心三觀) 등 - 에 전념하기 이전에, 혹은 현자 주바라밀에 전념하고 있더라도 탐, 진의 한을 완화시키는 정화[카타르시스, 한풀이, 밝은 마음 강화] 작업이 조(助)바라밀로 요청된다. 방편(바라밀)무한이라 했듯이 그 길은 많겠지만 지족(知足)이라는 방편을 좋은 조바라밀로 부각시켜 본다.(주와 조는 정해져 있음이 아니고 공부인이 선택에 달려 있다. 에컨대 '수식관'을 주바라밀로 선택했다면 화두나 묵조도 조바라밀이다- 필자 주.)


지족(知足), 즉 '만족을 아는 것'이다. ,『법구경』에 지족 최부(知足最富)라 했다. 만족을 아는 것이 가장 부자라는 말이다. 사람은 현재 이미 있는 것[旣存], 현재까지 이루어 온 것[旣成]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 없는 것, 아직 이루지 않은 것을 있게 하고, 이루고자 하는 데에 집착함으로 인하여 괴로움의 늪에 빠져든다.
기존기성(旣存旣成)을 누리는 것,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지족이다. 지족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요, 지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지행(知行)이 일치되기 어렵듯이 지족의 중요성은 알되 지족하는 것이 몸에 잘 익어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해탈이니 구언이니 초월이니는 제쳐 놓더라도 세상 사람이 이 '지족'이라는 덕목 하나만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 체득한다면 일반적인 의미의 행복은 보장될 것이다. 불행이란 대체로 '없는 것' '이루지 못한 것'을 향한 지나친 긴장감과 이루지 못했을 때 따르는 실망감을 의미할진데, 지족이 태도는 현재 이미 있는 것, 이루어 온 것[기존 기성]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것이니, 행복이 아니겠는가. 알고 보면 이것이 응무소주(應無所住)를 실천하는 첫 단계일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소승 대승을, 불법을 한마디로 가파하라 하면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基心)이다. 마음이 일체에 머물 바 없느니 자유롭고 그 자유로운 마음[응무소주]로 세상일이 하니[이생기심], 그것이면 전부이지 않겠는가. 지족은 일체의 당하여 만족하므로 마음에 스트레스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 왈 응무소주라! 얼마나 덕목인가.

이렇듯 지족(知足)이란, 『법구경』 어느 귀퉁이에 있는 한 개 단얼 치부해 버리고 지나칠 수는 없다. 지족 철학은 경전이 많은 곳에서 이런 저런 표현으로 드러나 있지만 중대한 정견(正見) 덕목 하나로 부각하고 있지는 않은 현실인 듯 하여 유감이다. 지족(감사, 기존 기성의 확인)은 이처럼 현재의 행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지족못하여 쌓여온 탐, 진, 치, 삼독을 녹여내는 좋은 방편이다.

그러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놓으면 편리하겠지만 어느 쥐가 어떻게 그 방울 다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성자들의 가르침이 뭇 중생에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의, '그림 속의 떡'과 같은 식의 현실성 없는 공리 공담(空理空談)이 되고 있다. 지족! 그 중요성을 열번 백번 알아도 지족하는 인격이 되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관행(觀行)이다. 내면화를 위한 명상이다. 동사섭(同事攝)법회에서 법쇠 시간 45시간 중 10시간 정도를 할애해서 지족의 이론과 그 실습을 하고 있음도, 그것이 인격으로 정착되도록 돕자는 것이다.

 

 

지족 명상

 

지족의 관행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방법론은 많은 것이다. 하나의 대안을 말해 보겠다. 지족[감사] 명상은 혼자 있을 때는 참선하는 식으로 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할 적에는 스피치 식으로 해도 될 것이다.

지족 명상, 곧 감사 명상이란, 내 인식 주체가 인식 객체에 대해서 "OO이 여차여차해서 감사하다" 식으로 생각[말]하는 것이다. 즉 인식 객체란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일 터이니, 자신의 마음을 원점으로 해서 마음, 몸, 기능, 업적, 가족, 이웃 등의 사람들, 가정, 환경, 사회, 국가, 국제 사회, 삼라만상, 태양계, 은하계 등을 동심원(同心圓)적 단계로 긍정 명상해 들어간다. 명상문을 미리 작성해 놓고 읽억면서 명상 생활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이다. 나에 대한 정체(正體) 개념이 애매하거나 나에 대한 가지 평가가 좋지 않은 것이 온갖 불행의 씨앗이다. 정체감이 애매하고 자아 개념이 낮은 사람은 매사에 주체성이 없어 우유부단하고, 열등감이 많아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특히 주로 많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우호감이다. 인생은 사람과 만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는 시각이 발달돼 있다면 늘 사람들 때문에 기분 저조한 불행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나' 와 '사람'에 대한 긍정(肯定) 명상[지족명상, 감사 명상]을 강력하게 해서, 굳어 잇는 어리석은 사고대(思考帶, 痴)를 긍정적으로 교정해야 한다.

 

긍정명상은 자신의 마음부터 시작함이 좋을 듯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까운 사람, 남편이든 아내든 아들이든 친구든 대상으로 해서, 혹은 아무 물건이든 하나의 물건을 앞에 놓고 감사거리를 발견해 보아도 된다. 동사섭 법회에서는 방 가운데 주전자이든 볼펜이든 죽비든 놓고 감사거리를 발견해서 표현하게 해 보면 그 단순한 물건 하나에서 수십 수백가지의 감사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모든 수련생이 감동한다. 수련생들은 대체로 "하찮은 저 볼펜 하나에 이토록 긍정점이 많이 있는데 하물며 OOO은 어떠하겠는가?"하면서 기존의 부정의 시각을 녹여내고 긍정 토대를 정립하게 된다.

 

 

긍정 명상의 요령

 

1. 마음에 대한 긍정 명상

(1) 마음은 우주하고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함을 명상한다.

 

(2) 마음의 무한 가능성을 명상한다.(무한한 환희의 가능성, 무한한 지혜, 자비, 힘의 가능성,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가능성 등등.)

 

(3) 마음이 초차원성, 해탈성을 명상한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라하고 신성(神性), 불성(佛性)을 멀리 찾지 않는다.

 

2. 몸에 대한 긍정 명상

(1) 일단 생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근거가 되는 육체에 감사한다.

 

(2) 부붐적으로 모든 기관과 조직, 곧 머리끝으로부터 발끝까지 머리, 눈, 귀, 코, 입, 살, 팔, 다리, 손, 발, 허파, 염통, 혈관, 위장, 소장, 대장, 간장, 신장, 췌장, 비장, 대뇌, 소뇌, 간뇌, 척추, 신경, 모공 등등을 가능하다면 샅샅이 관찰하여 그 기능의 신비를 찬탄하고 그 건재함을 감사한다.

 

3. 업적에 대한 긍정 명상

(1) "나는 이름을 쓸 줄 안다" "나는 삼곱하기 칠은 이 십 일임을 안다"와 같이 극히 사소한 듯한 것들을 업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그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가치 부여를 튼튼한 바탕으로 해서 자신이 이루어 온 큰 성취(?)에까지 샅샅이 통찰 명상하여 자아 개념을 높인다.

 

(3) 업적 면에서 자기보다 큰(?) 업적을 이루어 온 이웃과 비교 평가하여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일은 금물이다. 지혜 하나로는, 상대 평가를 피하고 절대 평가 시각으로 10등이라면 15등보다는 우수하지 않느냐식으로 기대 수위[집착수위]를 가능한 한 밑으로 내리어 만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매사에 100은 '지향 목표'로 바라다볼지언정 '집착 목표'로 놓고 매달릴 일은 아니다. 직찹 수위는 밑으로 거듭 내리어야 한다. 만일 집착 수위를 '0'으로 끌어내리고 산다면 그것이 곧 도인의 삶이다. 집착수위를 0으로 하여 사는 사람은 나날이 좋은 날이요, 순간순간이 환희요, 경이로움일 것이다.

 

4. 이웃 사람에 대한 긍정 명상

사람 긍정 명상은 우선 우호감이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떠올리는 것이 좋다. 한 사람을 떠올리고 조용히 있어 본다.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하여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 본다. 극히 자연스런 흐름이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나, 공통되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1) 아마 영접하고 있는 분을 향하여 맨 먼저 일어나는 마음은 "안녕하세요"하는 인사이지 않을까 한다. 인사는 정성이 가득할수록 좋다. 내가 대하고 있는 바로 이 사람을 부처로, 하늘로, 소중한 존재로 받들지 못한다면 부처를, 하늘을 귀한 존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자세로 최대한 공경의 절을 올려본다.

 

(2) 절을 올리고 가만히 있노라면 자연히 기도가 나오지 않을까. "OO님 행복하세요. 몸 건강하시고 소원하는 것들 두루 이루시고, 마음 크게 자유로워지시고 주변에 사람을 베푸시는 존재되십시오" 식으로 간절하게, 가능한한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3)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지 않을까. 태어나서 부터 지금까지 그분이 주변에 기쁨과 유익함을 일으켜 주었던 일 등등에 대해서, 아는 것은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정보를 모르는 것은 상상력을 통해서 감사한다.

 

(4) 마지막으로 그분의 존재 자체의 신성함에 대한 찬탄이 나오지 않을까. 그 육체이 신비, 눈, 귀, 입, 팔다리, 심장, 폐장, 위장, 간장 등 많은 기관과 조직의 신비를 음미하며 찬탄한다. 특히 그분 속의 주인공[혼]의 신비는 그 어떤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 찬탄한다 해도 다 찬탄하지 못할 만큼 불가사의 한 존재이다.

 

(5) 사람에 대한 긍정 명상 소재는 이 외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니 다채로운 사람 명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 소리내어 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5. 기타 긍정명상

전기 전화를 비롯한 무수한 문화, 문명의 혜택에 대해서, 물, 공기, 풀, 나무, 산, 강 등의 대자연, 태양계로 부처 뭇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중중 연기(重重緣起)하는 대질서의 파노라마를 밀밀하게 느끼면서 감사찬탄한다.

'아미타불' 한 명호에만 전념키로 한 수행자라도 공부 에너지 십분의 일만 할애하여 긍정 명상을 한동안 해둔다면 공부 능률이 배가될 것이다.

모든 종교인은 긍정의 바탕이 허술하면 현재의 행복은 물론, 초월의 지평이 (잘) 안 열린다는 자각하에서 개이적, 집단적, 사회적 긍정시각 열어가기 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어찌, 세상에 걸을 길이 없던가, 걷고자 하는 의지가 약할 뿐이지.)

 

 

* 출처 : 용타스님 명상록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 대원사

* 주니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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