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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2/03
    [안산지역단체성명] 우리는 모든 민중의 안전과 희망을 위한 철도파업을 적극 지지한다.
    봉기꾼
  2. 2005/08/02
    [펌] 차베스는 혁명가인가(1)
    봉기꾼
  3. 2005/06/10
    연애의 목적을 보고
    봉기꾼
  4. 2005/06/05
    상쾌하고 맑은 새벽 하늘을 보고 싶다.
    봉기꾼
  5. 2005/05/25
    공감이 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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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5/24
    화창함..
    봉기꾼
  7. 2005/05/21
    무서운 관계
    봉기꾼
  8. 2005/05/21
    쉼없이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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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10/27
    진짜 이쁜 불꽃~
    봉기꾼
  10. 2004/10/11
    가슴에 묻으며 - 강준하(3)
    봉기꾼

[안산지역단체성명] 우리는 모든 민중의 안전과 희망을 위한 철도파업을 적극 지지한다.

[철도파업 지지성명]


                          우리는 모든 민중의 안전과 희망을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을 적극 지지한다!


                - 이명박 정권은 공공부문선진화 폐기하고, 노동탄압 중단하라. -

 

 

 


1. 철도에 이은 공공부문 노동탄압, 공공노동자 길들이기는 이미 실패했다!

철도노조의 파업투쟁이 8일째를 맞고 있다. 철도 60년 역사상 유례없는 단협해지와 장기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농민을 두명이나 때려죽인 살인마 허준영 전 경찰청장 출신 코레일 사장의 입김으로 철도노조 간부들에 대한 긴급체포명령이 떨어지고, 검찰도 역시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배경에는 선진화란 미명하에 공기업을 사기업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정부정책이 있지만, 좀더 가깝게는 11월 28일 공기업선진화워크샵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철도파업에 대해 적당히 합의하고 넘어가지 말라’며 확실히 노동자 길들이기를 하라고 지시한 것에 있다. 뒤이어 1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이 코레일비상상황실에서 또다시 한번 우격다짐으로 불법을 운운하며 헌법을 초월해 노사자율성을 훼손했다.

이미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투쟁과 정부의 무식한 탄압의 양상은, 통합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한 비상식적 탄압에서 예견되었다. 대다수 조합원들의 찬성으로 가결된 민주노총 가입이 결정되자, 조끼를 입지마라, 민중의례를 하지마라고 하더니 결국 통합공무원노조 위원장을 해임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코레일의 허준영이 선봉장이 되어 철도노조와의 단협을 해지하자마자, 자기 순서가 왔다는 듯이 발전 5개사/ 가스공사/ 사회연대연금/ 노동연구원 등이 단협해지를 통보해왔고, 노동연구원은 12월 1일자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정부와 공기업의 정당성없는 탄압과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자들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의 의지를 불붙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2. 목적과 절차, 방식에 있어서 어느것 하나 정당하지 않은 것이 없는 파업.
몰상식한 탄압에는 강력한 투쟁으로 답하겠다!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방안을 밀어붙이기를 위해, 정권의 개들인 검․경이 철도노조의 불법성을 찾아내기 위해 안달을 하고 있다.

목적과 절차, 방식. 그 어느것 하나 부당한 것이 없다고 12월 1일 민주변호사모임을 비롯한 법률가 단체에서 의견서를 내놓은 바 있고, 지난 11월 25일 충남노동위원회에서는 9월에 있었던 철도노조의 시한부파업에 대한 코레일 측 대체인력투입이 단체협약 제177조를 위반한 부당노동행위였다고 결정한 바 있다.

또한, 이번 철도파업의 가장 직접적 원인이 코레일측의 일방적 단협 해지에 있다는 것은, 지나가던 개도 알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투리잡을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꼴은, 스스로 정당성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며 패배를 인정한채 우격다짐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덧붙여, 이처럼 절차와 방식/목적에 있어 하자가 없는 합법파업 이외에도 민중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민중 스스로가 즉각적으로 투쟁하고, 파업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정부정책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으면 징계하고 탄압하겠다는 몰상식에는, 즉각투쟁과 연대투쟁만이 답이다.

3. 불법정권이 불법을 운운하는 코메디. 감히 국민의 이름을 사칭하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라!

민중들의 투쟁과 노동자 파업에 대해 시민불편을 얘기하며, 엄단하겠다고 했던 건 어느정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BBK사건부터 시작해 친형을 포함한 친인척 비리문제, 최근 도곡동땅 문제등등 불법성이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고, 미디어법 날치기, 4대강 죽이기 강행 등 이미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이명박정권이『국민』의 이름을 사칭하며 불법을 운운하고 불편을 얘기하는 것은 기가 차는 희대의 코미디이다.

이명박정권이 말하는 그『국민』들은 이미 철도노조 파업 등 갈등의 원인이 이명박 정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언론에서 불법운운하며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에는, 미디어법을 통한 정권의 언론장악때문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 것인가?

제대로된 노동조건을 꿈도꿔보지 못한채 인턴, 비정규직이 되었다가 대량해고 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의 제공자인 이명박 정권이 “청년실업이 8%인데 철도파업은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으니 엄단하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공감할 사람이 누가 있을것인가? 

세종시문제와 4대강사업 때문에 진행한 ‘대통령과의 대화’도 결국 귀막은 원맨쇼로 끝나지않았는가?

진정 그렇게 국가의 앞날이 걱정된다면, 우선 국민들의 의견부터 듣는 귀를 뚫어라! 진정 국가경제가 걱정된다면, 대통령 자신부터 월급도 반납하고 연금도 포기하며 어마어마한 사유재산을 국민들에게 헌납하는 헌신성으로 호소라도 해보라!


4. 준법도 불법이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정권.
공공부문 선진화방안 폐기하고 철도파업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라!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으로서, 준법도 불법이라 우기며 위협하고, 권력자/부자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에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민중들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촛불을 통해 공공부문 선진화(사유화)방안 도입을 반대한다고 수없이 말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철도 노사의 파국을 부추기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라!

이명박정권은 민중들을 우매한 집단으로 취급해, 전근대적 방식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통제하려하지만, 우리는 이미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이 미치는 영향이 공공노동자뿐만 아니라, 전민중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몸으로 겪어 알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혼란을 만드는 것은 서민을 외면하고 부유층만을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임을 명심하고, 철도파업이 원만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라!

5. 이에 안산지역의 노조/시민사회․종교단체를 비롯한 제 시민들은 요구한다!

- 감히『국민』의 이름을 사칭해 국민을 죽이려드는 행위를 중단하라!

- 매번 민중들의 정당한 투쟁을, 불법 꼬리표와 공권력의 폭력으로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시효가 만료된 구시대적 행태임을 명심하고, 즉각 철도노사가 노사자율을 바탕으로 교섭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라!

- 우리는 모든 민중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철도노조의 파업투쟁을 적극 지지하며, 파업을 통해 좀더 안전하고 값싼 공공재로서의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잠깐의 불편은 오히려 행복해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 또한, 이명박정권의 연일 계속되는 강경발언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공기업선진화방안을 폐기하라!

- 나아가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4대강 사업과 비정규직 대량양산 정책을 폐기하여, 사회적 손실을 축소하고 서민복지예산 확대와 사회공공성을 보장하는 정부역할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철도노조에 당부한다.
민중들의 힘을 믿고, 흔들림없이 파업투쟁을 지속하라!

우리는 거리․각자의 공간에서 선전홍보활동 및 각종집회 연대 등등을 진행하며 철도노조 파업투쟁의 정당성을 적극 알려갈 것이며, 동시에 사회공공성 확보와 민중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것이다.


2009년 12월 3일

경기권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동당안산시위원회/ 민주노총경기지역본부안산지부/ 민주주의를사랑하고도모하는안산시흥시민모임/안산노동인권센터/ 안산사회주의노동자정당(준)/ 안산시흥비정규노동센터/ 전국건설노동조합수도권지역본부경기중서부건설지부/ 노래패 ‘정면돌파’/ 진보신당안산시당협의회/ 통일마당/ 평등교육실현을위한안산학부모회 /현장실천사회변혁안산노동전선/희망교회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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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차베스는 혁명가인가

차베스는 혁명가인가


 

어제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에드윈과 차베스 정권에 대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버스가 30분이 넘도록 오지 않는 사이에 저희 바로 뒤에 있던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토론이 시작되었지요. 우리가 서로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사이에는 그 아저씨가 저희한테 술주정을 하지 않았거든요. 흐..
 
그 시작은 어제 블로그에 올렸던 거리의 노점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의 한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토론이었지만, 논쟁꺼리는 거의 없었으니 한번 요약해보기로 하지요. 주제는 차베스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베스가 집권한지 5년이 넘었지만 빈민들은 여전히 물건을 팔기 위해 찻길에서 경찰에 쫓기면서 위험한 곡예를 해야하고, 몇가지 개혁적인 미션이 실시되기는 했지만 빈부격차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베네수엘라의 경제 시스템은 아직도 자본주의에 머물러 있습니다. 만일 차베스가 현재 이 나라에서 근본적인 생산시스템의 혁명적 변혁 없이 미션들만을 계속 늘어놓게 된다면, 그 최고의 성공적인 결과물은 아마도 북유럽의 사민주의 시스템을 만드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가 현재까지 국유화 한 것은 석유 정도이며 그것은 본래부터 헌법에 명시되어있던 사항입니다.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국가 주도의 지원사업정도이지 노동자통제 아래에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생산시스템이 아닙니다.






시내에 가면 선정적인 광고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고, 까라까스 시내의 차까오 지역에 가면 다른 선진국들의 부자들보다도 더 화려하게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부자들을 여전히 만날 수 있습니다. 차까오는 한국의 강남과 거의 흡사한 동네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수월합니다. 그 거리에 있는 화려한 쇼핑몰에는 비싼 수입품들이 가득하고(우리나라의 롯데 백화점 보다 대여섯배는 고급스럽고 더 큰 백화점이 거기에는 몇개씩 있습니다), 다른 선진국 못지 않게 깨끗하며, 그 지역 경찰은 모두 초급 대학 이상 출신자들로서 다른 선진국 못지 않게 친절합니다. 그들이 부자들을 위한 안전한 거리를 만들고 있지요. 거기는 까라까스 시내에서 유일하게 밤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지역입니다. 이 부자들은 이 나라 대부분의 빈민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차베스와 빈민들이 다 죽어 없어져야 할 인종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혁명'이 시작된지 5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차베스는 스스로 사회주의적 혁명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렇게 선전하고 있지만, 과연 그가 정말로 사회주의적 혁명가인가 하는 것에는 자꾸 의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혁명'이라는 이름하에 진행하는 정책들은 사실 거의 혁명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미션들이 진행된다면 정말로 감동의 도가니겠지만, 그 미션들을 '혁명'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근본적인 변혁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가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책은 분명히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이며 개량적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현재 진행되는 미션들은 생산에서 노동자가 주체가 되도록 하는 근본적인 변혁이 아닐뿐더러, 분배에 있어서도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을 정도의 혁명적인 분배정책의 변화는 아직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혜적인 분배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차베스는 혹시 남미의 역사에 여러번 등장했던 포퓰리스트가 아닐까 하는 것이 에드윈과 제가 차베스 정권에 던지는 의문입니다. 에드윈에게 현재 이 나라에서 운동의 주류는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에드윈은 서슴없이 '차베스이즘'이라고 하는군요. 후후..


 
에드윈은 한편으로 혹시 차베스가 히틀러와 비슷한 선동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당도 아니고 1인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으며, 모든 정책은 선동적인 연설을 통해 발표되고.. 군중은 차베스를 연호하고..
 
또 에드윈은 멕시코에도 한때 차베스와 아주 흡사한 대통령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밝히며 민중을 선동하고, 현재 베네수엘라의 미션과 흡사한 몇개의 개혁프로그램을 내놓고, 대중들은 거기에 환호했지만, 결국 그는 자본주의자였다는 거지요. 뒤로는 수많은 자유주의 정책이 지나갔지만 민중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었다는 이야기도 더합니다.
 
차베스 정권에 대한 영어로 된 대부분의 자료는 두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는 차베스의 정책에 대한 찬양이며, 다른 하나는 그를 군부 독재자로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자료만으로는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통계 자료와 차베스 정책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앞으로 차베스 정권에 대해 각국에 소개할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양측면을 모두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또한 함께 공유한 결론이었지요. 그리고 에드윈은 차베스에 대한 그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칭 차비스트입니다. 후후..
 
 
이 토론 덕에 하루종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보냈는데, 그 토론 내용을 독일에서 온 그리스 아가씨 이레네에게 들려 주었더니 이레나는 아주 명쾌하게 결론 짓더군요. "도대체 너는 왜 차베스가 뭔가 바꿔주기를 기대하는 거야? 언제 혁명이 위에서 내려온 적이 있었나? 경제 시스템은 차베스가 아니라 민중들이 바꿔야 하는 거야. 혁명은 절대로 위에서 내려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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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을 보고


                    

 

 

한낱 영화 따위에 왜 이리 불편한 맘이 드는지 모르겠다.

장르가 에로틱이었던가? 로맨틱 코메디였던가?

쨌든 유쾌한 영화일 거라는 생각으로

영화관에 들어간 나는 내내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박해일의 연기를 보며

다들 좋아라 했지만, (나도 영화 초반엔 좋아라 했었다!)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유림의 모습은 심히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또 누군가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그냥 즐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걸 못본 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이 영화는 같이 봤던 사람들 모두가

손꼽아 기다려왔던 영화라고 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미칠 영향력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젠장! 이렇게 끄적거리기라도 해야 맘이라도 편해질 것만 같다.


이 영화는 일상에서의 모습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 리얼리티가 문제가 아니라,

이 관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 문제다!

철저히 남성적 시각에서의 연애가 정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문제다!

이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 불편하게 봤던 건 수없이 많지만 네가지 정도로 줄여보면,

 

 

1. 연애의 시작이 늘 남성에 의한 성폭력적 상황과 일치되는 것이다. 

 

말했듯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의 일방적인 표현과 접촉 등이 바로 연애의 시작과 일치한다.

여성의 동의 여하와 상관없는 남성의 이런 태도들은

적극적이고 터프한 남성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충만한 사랑의 폭으로까지 확대해석되기도 하지 않는가?

쨌든 여기서 여성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 과연 있기나 한걸까?

영화에서 이유림의 일방적인 이런 태도(성폭력)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홍은

깐깐하거나 인정사정 없는 매몰찬 사람으로 묘사된다. 

 

 


2. 여성의 성욕은 여전히 ‘소수 밝히는 여성들의 것’으로 묘사된다.

 

이유림은 처음 만난 홍에게 서슴없이 같이 자자고 말한다.

그게 안되면 으슥한 골목에서 키스라도 하고 가자고 한다.

이쯤 되면 저 새끼가 미쳤나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쳇!

그리고 결국은 길 한복판에서 동의도 없이 뽀뽀를 해버리고 만다.

이 영화는 남성이 가지고 있는 성욕을 질질 흘려도 되게끔 용인한다.

하지만 반면 여성의 성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결혼할 남자친구가 아닌 이유림과 같이 잤던 홍은 밝히는 여자가 되고

이유림과 결혼을 약속하고 다른 사람과는 절대 그럴수 없다고 했던

이유림의 여자친구는 떠받들어줘야할 고귀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이런 표현이 이유림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게 더 밥맛없다!

여기서 일반적인 남성의 인식수준이 현실 그대로 드러난다고 본다. 

남성의 시각에 의해 밝히는 여자이거나, 다소곳한 여자이거나로 양분되는

여성들은 자신의 욕구과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조작하기에 바쁘다.

조작된 모습을 보이도록 옭아매는 순간부터 권력관계는 시작된거다. 


 

3.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치유하는 여성을

‘나쁜년’과 동일시하거나 영원한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영화 흐름상 초중반까지 홍은 무기력한 성폭력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른다.

아마 이런 상태로 영화가 끝나버렸으면 난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깝깝해서! 다행히 홍이 발버둥이라도 쳐주어서 얼마나 고마운 지.. 

홍이 권력을 이용한 폭력에 무력하게 대응하다가

싫다는 표현이라도 할라치면 예전에 있었던 성폭력의 아픔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날카로운 사람 쯤으로 표현된다.

여성의 좋고 싫음의 표현은 아예 없던 것처럼

홍의 목소리는 철저히 파묻혀버린다.

홍은 예전에 아무것도 모른채 사랑했던 사람이 유부남이었고

상습범이라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다가

스토커라는 역공격을 받아 학교까지 그만뒀었다.

그 일에 상처받은 이후로 다신 연애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되뇌인다.

그리고 불면증 때문에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하고,

문도 꼭 걸어잠궈야 맘이 놓인다. 창문이라도 열어놓으면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두렵다고 했다.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내면까지 이해하면서 영화에 담았을까?

그게 얼마나 두렵고 갑갑한 것인지..

짜증나는 이유림은 이런 홍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그 사랑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해버린다. 개새끼!

그러다 영화 후반부에 홍은 자신의 피해경험을 용기내서 내어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의 시선은 ‘나쁜년’이거나,

따먹힌 여성쯤으로 위치짓는다. 안타깝게도 홍은 나쁜년이 됨과 동시에

누군가들이 구제해줘야 할 피해자에 머무른다.


 

4. 결국 성폭력 피해의 경험을 사랑으로 미화시키는 영화의 설정~

 

나쁜 남자를 보고 막 토악질을 해대고 싶었던 설정이기도 하다.

포주와 성매매 피해여성이 사실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 지저분한 결말에 여전히 난 최악의 영화로 ‘나쁜 남자’를 꼽는다.

그런데 이 영화 역시 나쁜 남자의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자신이 미치도록 소유하고 싶어하는 여자가 자기 맘대로 되지 않자

안달복달하면서 성폭력을 가했는데, 

여성도 사실은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는 그렇고 그런 결말!

아찔하게도 잠시 박해일이라는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 때문에

홍도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버렸던 나를 자책한다.

물론 이 영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강요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물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요소들은 더 많다.

함부로 남의 험담 해대고 옮기면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든가,

청소년들 전반을 우매한 집단으로 매도해버리는 설정이라든가..

더 많지만 나의 불편함의 토로는 여기까지만 하려 한다.

밤새야할 것 같다! -.,-



다행히, 이유림에게서 드러나는 불편한 요소들이

홍에 의해 조금은 누그러든다.

자신을 밝히는 여자쯤으로 단정 짓는 이유림에게

여자를 잘 모른다고 말하기도 하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을 성추행하고 강간했던 이유림에게

무작정 무력해지지 않고 용기를 내어 자기 치유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성폭력을 가한 이유림이

자신을 역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안해하거나 (혹은 고마워했을까?)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속이 갑갑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좀더 적극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절절 끓는다.


매번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늘 여성은 없다.

그녀들의 실체도 그녀들의 목소리도 온데 간데 없다.

그런 차원에서 얼마전에 본 박진 감독님(^^)의 그녀들의 사랑이 떠오른다.

이 연애의 목적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조명 했다면 참 유쾌하게 봤을텐데..


쨌든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관을 나와 이글을 쓰기 전까지

불편했던 맘이 글을 통해 조금은 풀어지는 느낌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그 유쾌함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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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하고 맑은 새벽 하늘을 보고 싶다.


 

새벽녘의 이런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름어름 해가 떠오르려 할 때 뭔가 채워지는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도 없을 뿐더러, 뱉어내버리면 안될 것만 같다. 

저 해보다, 물보다, 집보다, 저 하늘의 상쾌함과 맑음을 접하고 싶다.

6월에 일이 좀 끝나고 나면 시간이 생길까? 맘의 여유가 생길까?

멀리는 아니더라도 꼭 저런 새벽하늘을 보러가고 싶다.

동지들과 함께였으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혼자라도 가고 싶다!

싸이 메인사진으로 깔아놔야겠다. 매일매일 상큼해지게! 매일매일 행복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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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가는 글~


“우리는 패밀리 아이가?”

     
운동단체들은 무엇을 ‘노동’으로 보고 있나

조주은 기자
2005-05-23 22:50:45


3년 전에 남녘 끝자락에 위치한 노동운동단체로부터 여성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요청을 받았다. 당시 나는 그 분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남성노조간부는 다시 내게 간절하고 급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왔고, 그들의 집요한 요구에 더 이상 거절하기가 힘들어 덜컥 “하겠노라”고 대답해 버렸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단 2시간의 강의’라는 내 노동은 무려 20시간 이상의 비가시적인 노동을 필요로 하였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는데 20분도 걸리지 않지만 식탁에 음식을 차리기까지 메뉴작성서부터 장보기, 음식 만들기까지 가려지는 노동시간이 200분이 넘는 것처럼. 원래 계획되었던 일정 변경하기,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본부에 찾아가 자료를 구입 해서 공부하는 일, 아이들 돌보는 문제 등 신경 쓰고 미리 준비해야 할 노동들이 한 두가 지가 아니었다.



‘강의제공’이라는 노동력에 대한 대가는?

그 노조간부는 내게 장문의 메일을 통해 그 지역의 노동운동 현황과 더불어 원하는 강의내용을 보내왔다. 나는 궁금한 게 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중요한 강의를 내게 부탁하면서 강사료로 얼마를 주겠다는 거지? 공항도 없는 오지인 그 지역에 내려가게 되면 하룻밤 자고 와야 할 터인데 숙박은 해결해 주는 건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질문을 뒤로 한 채, 강의 당일 곤하게 자고 있는 아이 둘을 깨워 새벽기차를 타고 남녘 땅으로 출발했다.

두 시간의 강의는 금방 끝이 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강사료가 든 봉투를 열어보며, 나는 민망함을 맛봐야 했다.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남도의 노조가 강사노동자인 내게 지불한 강사료는 터무니 없이 적었다. 그들은 단지 ‘2시간의 강의노동에 대한 대가’만을 주었던 것이다.

그 속에는 왕복 교통비, 온전히 내 하루 24시간을 소비하고 다음날까지 회복되지 않는 여독으로 인한 영향, 강의를 준비하기까지의 비가시적인 노동과 감정노동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들만의 노조발전을 위해 잠시 소모품으로 사용되었을 뿐 강의라는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내가 한 행위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동지애(love)’를 발휘한 것이지 노동으로 취급 받지 못했다.



‘동지애’, ‘자매애’ 속에 가려지는 다양한 노동

여성들은 자신의 계획을 일정 정도 포기하거나 미루고서 가정에서 일을 하고 자녀들을 돌보지만, 사회는 그것을 ‘모성본능’에 입각한 ‘자녀사랑’이지, 보살핌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가사노동의 현주소처럼, 역설적이게도 노동운동단체들이 더 ‘노동’에 둔감한 면이 있다. 그들에게 노동이란 오로지 작업장, 교실, 사무실에서 공식적인 임금을 받고서 수행하는 행위로 국한된다. 나머지는 오로지 자신들의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하부에 귀속될 따름이다.

장기파업으로 인해 지친 노동자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특정 강사를 불러 강의시키고 문화운동단체를 불러들여 풍물공연, 노래공연도 요구하고 영상단체에 문의해 영상을 틀어달라고 급박하게 요청하는 단체들. 이 때 강사노동자, 문화일꾼들은 자신들의 더 큰 노동운동에 복무해야 할 하부단위이지 노동자가 아니다. 행여 그들이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에 걸 맞는 공연료나 강사료를 요구했다가는 ‘돈에 맛이 간’ 사람,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낙인 찍힐 따름이다.

그러나 각종 문화공연과 강연 역시 공식적인 일터에서의 노동만큼이나 소중한 노동들이다. 다양한 운동조직에 가서 그들의 코드에 맞는 강연노동, 문화공연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들을 불러대는 노조나 운동단체들은 몇 안 되는 강연노동자, 문화일꾼들을 먹여 살려줄 일정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비 등 일정수준 이상의 수입이 있는 운동단체들은 조합원과 회원들을 위한 교육용 강연, 영상과 문화공연을 집요하게 불러들이지만 노동의 대가인 공(상)연료, 강사료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 노동을 빼먹는 데는 엄청나게 집요하고 재빠르다.

문화일꾼들이 그 놈의 동지애 때문에 얼마를 주는지도 모르고 가고, 주는 대로 받고, 그나마 그것도 약속된 날짜에 입금이 안돼서 어렵게 연락했을 때 “우리가 드려봐야 차비밖에 안될 텐데 뭘 받으려고 하냐”고 반문하는 노동운동단체들. 그들이 생각하는 ‘노동’은 과연 무엇일까? 또한 여전히 운동단체에서조차 남성토론자에게 여성토론자의 몇 배에 해당하는 예우를 하는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을 수행하지만 여전히 ‘사랑’, ‘동지애’, ‘자매애’ 속에 가려져, 오히려 (조직을 운영하는 일정수준 이상 재정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조직들에 의해 차마 말 못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돌보는 노동자, 여성 강사노동자, 문화일꾼들이 하는 다양한 노동의 의미를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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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함..


 

다시 이런 화창함이었으면 좋겠다.

충분히 설레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화사하진 않더라도 밝을 수 있는 그런 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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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관계

 

 

무서운 사진이다. 앞에서 웃고있으면서 뒤로는 삐죽거리는..

난 혹시 이러지 않았을까?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진 않았을까?

진심을 다해 사람을 대한다면 이런 이중성은 없을텐데..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자!

웃든, 울든, 화를 내든 뒤에서 하지 말고, 앞에서 하자!

상대방과의 충분한 교감과 교통이 가능하다 판단될때 그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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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이 걷기!


      

 

이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불안하고 그렇다.

몇개월 전에 설레였던 것과는 달리 불안한 이유는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자꾸만 안정이란 놈을 찾게되는 것이 나를 갉아먹게 만든다.

어디로든 길을 떠나야하는 지금! 쉼없이 걸으련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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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쁜 불꽃~

 

멀리서 제대로 못봐서 참 안타까웠었는데, 인넷에 돌아다니는 사진과는 달리

진짜 내가 본 걸 담은 것 같은 느낌이어서 참 좋다. *^^*  기자분이라 다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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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으며 - 강준하



♪ 가슴에 묻으며 (강준하) ♪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죽어라 이 노래를 들어댄다.

가사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분위기가 참 맘에 든다.

일렉기타, 그 부분이 매우 맘에 든다. *^^*

왠지 양옆으로 쫙 펼쳐진 울긋불긋한 나무사이를

빠져나가는 영상을 떠올릴 수 있을 듯 하다.

 

 

(가사)  

 

서둘러 차를 돌리던 그대

난 뒤돌아 볼수가 없었어

힘든 미소로 감추던 그대 눈물을

닦아줄 수 없기에

많이도 휘청거리던 그대

다 잊는단 거짓말을 하며

시간지나면

나도 그대를 다 잊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언제까지 변하디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보내야만 하네요 

내 사랑했던 모든 기억을 가슴에 묻으며

 

알아요 지쳐가던 그대를

또 어쩔 수 없었던 현실도

우린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참 많이도 다퉜지

그래요 그댄 알고 있었죠

내가 그댈 잡을 수 없단 걸

그 말 들으며 담담한 척한

내 무너지는 마음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언제까지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보내야만 하네요

내 사랑했던 모든 기억을 가슴에 묻으며

 

아직도 내 생각을 하면서 우나요

아직도 날 잊지 못했나요

난 가끔 후회도 해요

이렇게 돌릴 수 없단걸 알지만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이런 날 용서할 수 있나요

그대가 행복하기만을 난 바래요

내 사랑했던 모든 기억을 가슴에 묻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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