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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 이 글은 누룽지님의 [[고병권] 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빈곤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유 시장경제의 일상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처음 올라온 내 눈을 휘둥그레 만든 것은 대우 빌딩이 아니라 곳곳에 누워있던 노숙자들이었다. 대학로에서 생활할 때는 마로니에 공원에 길게 늘어선 급식 줄을 바라보며 아이엠에프 이후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제 종묘 산책을 즐기는 내 눈에 점심 한 끼를 얻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은 익숙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교통체증으로 늘어서 있는 종로의 자동차들을 보듯이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줄을 그렇게 보고 있다. 아, 한 개인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한 사회의 익숙한 풍경으로 간주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나는 빈곤을 풍경처럼 보는 내 눈이 무섭다. 잘 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이 더 못살게 되는 것을 보면서도 경제가 어렵다는 허망한 말에 수긍하는 내 고갯짓이 놀랍다. 잘 사는 소수를 만드는 과정이 비참한 다수를 만드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는 나의 신속한 패배주의. 빈곤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악랄한 방해자가 이것이다.


 

지난 달 말 미국 인구통계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빈곤층은 3500만명을 웃돌고, 18살 미만을 기준으로 여섯 명 중의 한 명이 빈곤 아동이라고 한다. 사실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지구 전체가 ‘슬럼투성이’다. 20세기 말 지구의 지니계수는 낮추어 잡아도 0.67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세계의 상층 3분의 1이 모든 것을 갖고, 하층 3분의 2는 굶어죽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올봄에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도와 빈곤율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1996년과 2000년 사이 절대빈곤층은 두 배로 늘었고, 전체가구의 15%, 즉 6~7가구 중 한 가구는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히도 한국개발연구원이 되뇌는 것은 빈곤 양산의 주범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그것이다. 시장의 폭력으로 생겨난 빈곤층을 없애기 위해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자는 ‘시장활성화론’, 정부의 복지 지원이 자칫 사람들의 버릇을 나빠지게 해서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근로복지연계론’. 빈곤 상황에 대한 보고보다 우리를 더 암담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제안들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디파치오는 지구적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담론이 없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가 빈곤 문제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잘 지적했다.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복지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비용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복지 담당자들은 재정경제부 눈치를 보고, 시민단체들은 예산을 따내기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산을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은 빈곤을 끝내는 게 아니라 연장하는 것이다. 구걸하다시피 해서 따낸 예산이나 기부금이 축소된 복지를 만회해 줄 수도 없지만, 빈곤에 대한 그런 접근이야말로 빈곤층을 사회적 부를 축내는 문제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며, 빈곤층을 양산한 자본과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빈민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왜 빈민운동이 없는가. 디파치오는 이렇게 답했다. 빈민을 돕고 대변한다는 자들이 무엇보다도 빈민을 양산하는 원리에 눈감으며, 빈민을 대신해 자본과 국가에 구걸해주는 선행으로 빈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세력화를 막았다는 것.


 

결국 빈곤을 둘러싼 투쟁에서 나오는 새로운 비전이 없다면 우리의 패배주의적 시각과 고갯짓은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1% 나눔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진정 빈곤을 없애고자 한다면, 그 수익을 빈민들의 생계지원이 아니라,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와 자본을 향한 빈민들의 투쟁 자금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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