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 그리고 사랑
1.
최근에야 나는, 나의 '삶의 무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아온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기쁨과 슬픔이 있었고 많은 회한도 있었다. 지나온 삶의 어떤 순간에는 더없는 부끄러움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시류에 따라 움직였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시대 상황과 나의 경제적 조건, 그리고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말과 자주 읽는 글에 따라 행동한 사람. 나는 나의 소심한 성격과 함께 어떤 때는 당돌한 선택을 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의 학생운동과 그 후 노동운동, 그에 따른 조직활동도 경험하였다. 대학원을 마치고 공직생활을 하고,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이제 다시, 사춘기처럼 나에 대해 묻고 있다.
이런 내 물음의 기저에는 어떤 것에 끄달리거나 기대는 나의 삶의 역린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어떤 것에 기대는 나의 생활이 편할 때와 불편할 때를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 생각들의 마지막에는 가서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이념이나 제도, 질서 등에도 기대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그 스스로의 오랜 생각에 따라 마음을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자기 삶를 사는 것! 나의 삶의 무늬를 직접 그리는 것!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다.
2.
그런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자들도 있을 것이다.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제강점기 의열단원들의 삶. 그들의 삶의 모양과 무늬는 어떠했을까.
의열단은 1919년에 만주 지린(吉林)에서 조직된 반일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일정한 소재지가 없이 일본의 요인 및 그 주구를 암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였고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항상 그들은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백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하였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였으며, 그들의 생활은 '명료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을 하였다. 그들의 사랑은 누구보다도 강렬했다. '모든 조선 아가씨들은 의열단원을 동경하였으므로 수많은 연애사건'이 있었고, 그들이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아가씨들은 러시아인과 조선인의 혼혈이었는데 매우 아름답고 지적'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이 아가씨들과의 연애는 짧으면서도 열렬했다'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의열단원인 김산은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지식인은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3.
그들은 자기 삶의 무늬를 그리면서, 인간의 삶을 지도하는 삶과 추종하는 삶으로 구분한 것 같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이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지도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따라갈 것이다.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 지도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추종하는 자는 자유롭지만 지도하는 자는 그렇지 못하다. 추종하는 자는 책임없이 행동할 수 있지만 지도하는 자는 역사적 결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중략)...추종자였을 때가 더 행복하기는 했다...(중략)...나 또한 죽을 때까지 창조적 역활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추종하는 삶의 안락함보다 스스로 창조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그런 삶, 자기 자신의 삶이 결국 행복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의열단원인 김산에 따르면,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인간정신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비극은 인생의 한 부분'이고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한 인간의 영광'이며, '굴복하는 것은 한 인간의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믿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라고 말했다.***
4.
행복한 죽음이라?...자기 자신의 삶을 산 자의 죽음,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의 죽음은 어떤 것일까. 철학자 스피노자는,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물방울이 바다에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던가?'****라고 소리쳤다.
5.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사실 이런 현실의 굴레를 끊으면서 삶의 무늬를 그리는 사람은 여성들일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종속적인 사회적인 존재 조건 때문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들의 그 자유로운 삶의 처음과 끝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2016, 윌리엄 올드로이스 감독)를 보면, 17살에 돈 몇 푼에 팔려 결혼한 여성이 모든 금기를 깨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자신의 삶을 살 것을 결심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휘두르거나 개입한 남성들-시아버지와 남편, 애인을 살해하고, 넓고 높으며 고요한 저택의 한가운데 앉아서 세상의 정면을 바라보는 삶을 선택한다.
6.
그녀들은 인류가 겪은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이념이나 제도 그리고 국가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삶과 사랑을 선택하기도 한다. 전쟁에 참여한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따르면, 아수라장인 전쟁통에서 그녀들은 '단지 전쟁만이 아니라 그녀들의 젊음과 첫사랑'*****을 시작하거나 만끽하였다. 그녀들은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나 거대한 담론보다는 본래 지니고 있는 인간의 모양를 그리고 있었다.
이에 더하여, 그녀들은 일상의 관습적이고 제도적인 사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전쟁 중에 가지기도 하였다. 영화 '스윗 프랑세즈' (2014, 솔 디브 감독)를 보면, 적군인 독일군 장교를 사랑하는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두 번 만난 남자랑 결혼해 놓고, 그게 사랑이었다고 스스로를 속여 왔어요. 내 마음이 죽어 있었던 거죠"
7.
자신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시대적 담론이나 도덕, 사회적 환경이나 조건, 이런 것들은 사실 시대에 따른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어떤 것들이다. 인간의 삶이, 이런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어떤 것들에 따라, 줄에 묶인 개처럼 시대의 사슬에 매여 있으면****** 서글프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택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 삶의 본래 무늬를 그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것 같다.
* 님 웨일즈, 김산, 2013, [(조선인 혁명가의 불꽃같은 삶) 아리랑], 동녁, 165~166쪽
** 같은 책, 404쪽
*** 같은 책, 464쪽, 467~468쪽, 471~472쪽
**** 스피노자, 야론 베이커스 Jaron Beekes, [스피노자 : 그래픽평전), 2014, 푸른지식, 142~145쪽
***** 스베나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2015,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34쪽
****** "우리의 기억은 결코 이상적인 도구가 아니다. 기억은 제멋대로 인데다 변덕스럽다. 게다가 기억은 줄에 묶인 개처럼 시간이라는 사슬에 매여 있다."(스베나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015,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33쪽)는 문장을 참고하여 필자가 변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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