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인생은 짧지만 저항의 역사는 길게길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사적인 기업왕국인 재벌과 무권리의 비정규직 노동자, "예외 없는 징병제", 악덕기업처럼 학생들을 등쳐먹는 대학기업들과 그들과 똑같이 돼가는 의료기업인 사립병원들이 없는, 복지와 공공성 위주의 한국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 운동을 또 누군가가 이어가서 어차피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좌파정치라는 이름의 저항을, 꼭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답게 살다 죽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현실에서 아무리 져도, 결국 역사의 심판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 박노자의 글방(2012/03/30)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43063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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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3 23:07 2012/04/0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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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원의 아침편지] 마흔의 과제

 

마흔의 과제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소망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스스로 내린 어떤 선택의 결과라도 기꺼이 껴안고 갈 수 있다면,

그래서 멀리서 보기에 푸르러만 보이는 남의 잔디밭이 아니라 내 잔디밭을 열심히 가꾸어 나가기만 한다면,

실패한 삶이란 없다.

그 때는 정해진 소명의 길 따위는 없고

자신이 선택한 모든 길이 저절로 제 소명의 길이 되는 것이다.

 

- 하이힐과 고무장갑의[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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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3 21:58 2012/04/0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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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

 

'아는 사람을 본다'고 하는 단순한 행위마저 어는 정도는 지적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의 외모에, 그 인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채워넣는다. 그리하여 전체 모습을 마음속으로 보았을 때 그 대부분은 역시 이러한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러한 관념이 그 인간의 뺨을 부풀리고, 콧날을 또렷하게 그려내며, 목소리 울림이 하나의 투명한 껍질에 지나지 않는 듯이 그 안에 들어가 울림에 뉘앙스를 섞으므로 실제로 우리가 그 인간의 얼굴을 보고 듣고 할 때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은 결국 이러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Marcel Proust, 민희식 옮김, 201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동서문화사,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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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4 20:17 2012/03/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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