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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군대 가면 똥개 된다

군대 가면 똥개 된다


육군에서 이번 ‘인분’ 사건을 계기로 훈련소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내가 겪은 바에 따르면 정작 훈련소는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실은 마음의 천국이다. 왜냐하면 훈련소 내무반에는 위아래 없이 동기들만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식판에 올라갈 깍두기의 개수를 둘러싸고 싸움은 벌어져도, 일방적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은 자대배치 받은 후에 내무반에서 일어난다.

자대 배치를 받아 간 내무반에서 내가 처음 목격한 풍경도 구타 장면이었다. 무슨 일인지 화가 잔뜩 난 병장이 일등병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야전삽으로 엉덩이를 내리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앞으로 2년을 넘게 살아야 한다니.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에는 “이 문을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고 씌어 있다. 그때는 내무반의 문이야말로 내게 모든 희망을 접어야 할 지옥문처럼 여겨졌다.

이번에는 소대장의 가혹행위가 문제가 됐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군대에서 정작 심각한 폭력은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사병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프란츠 파농은 ‘수평폭력’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식민지의 인민들이 억압자들에게 당하는 폭력에 대항할 수 없을 때, 자신의 폭력성을 동료들에게 폭발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없애자고 해도 아직도 구타가 성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군대의 소통방식에 아직도 위계성과 폭력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증거다.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군대에서는 흔히 “당나라 군대 같다”고 표현한다. 듣자 하니 한국전쟁 때 중공군은 의용군 행세 하느라 사병들의 계급장을 뗐고, 거기서 유래한 표현이란다. 군대에서 듣는 얘기는 워낙 허구가 많이 섞여 있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 설명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나라 군대는 계급의 차이 없이도 얼마든지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 아니, 계급장이 없다니. 그 얼마나 선진적인 군대인가.”

군대 생활 해 보면 알겠지만 장교, 하사관, 사병 사이에는 뚜렷한 기능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병들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거의 없다. 이병이나 일병이나 상병이나 병장이나 어차피 하는 일은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졸병들은 임무 끝난 후에 식기를 닦고, 고참들은 배 깔고 누워 TV 본다는 것뿐. 그런데 왜 계급의 구별이 필요할까? 미군처럼 직업군인이라면 계급의 구별이 월급의 차이라도 의미할 텐데, 우리의 경우는 징병제라 어차피 돈 몇 천원 차이 아닌가.

설사 이병, 일병, 상병, 병장을 구별하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분의 높낮이가 아니라 수행하는 임무의 기능적 차이를 의미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 기능적 차이는 분명하지 않고, 외려 신분의 차별만 남아 사병들의 군대생활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계급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같은 계급 내에서도 입대 날짜에 따라 기수별로 위계질서를 만들어낸다. 꼭 그래야 할까? 국방부는 사병들의 계급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효력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은 군대에서 터졌지만,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끔 개그맨들을 보며 섬뜩할 때가 있다. 개그맨의 원조는 궁정의 광대다. 모든 이가 왕 앞에서 굽실거려도 왕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는 게 광대의 특권. 그런데 누가 대한민국 광대 아니랄까봐 가장 자유로워야 할 광대들까지도 자기들끼리 위계가 아주 엄격한 모양이다. 텔레비전에 나와 ‘선배님, 선배님’ 하며 군대 내무반 뺨치는 위계질서를 흘리곤 한다. 선진 당나라 군대에서 배워야 할 것은 국방부만이 아니다.

“사병의 인권유린.” 이 말은 너무 신선해 생뚱맞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사병이 인간이고, 언제부터 그에게 권리가 있었던가? 어차피 훈련소 문 들어설 때 우리는 인간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배웠다. 툭하면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게 어디 군대 가서 인간으로서 권리를 자각한 개인이 되라는 뜻이던가? 주는 똥 군말 없이 받아먹는 똥개를 ‘사람’의 모범으로 추켜세우는 ‘인간-똥개’들이 짖어대는 한, 사람이 개가 되는 엽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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