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주의 벽을 깨부수다

우리의 생각을 바꾼 아인슈타인의 세계관… 세계의 기본단위를 입자 대신 사건으로 설명

▣ 김동광/ 고려대 강사 · 과학사회학

정녕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 흔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에 해당하는 이론체계를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그것이 우리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올해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아인슈타인 기념행사를 접하면서 이런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상대성이론이 우리에게 준 영향은 생각보다 깊고도 근본적이다. 한마디로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큰 폭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4차원의 시공간 ‘시공연속체’

우리는 흔히 이런 변화를 세계관의 변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간단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세계관의 변화는 토머스 쿤의 말을 빌리자면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말 그대로 혁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아인슈타인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점은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개념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배경이자 무대로 항구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서로 분리되지 않은 ‘시공연속체’로 인식했다. 오늘날 우리가 공간 3차원에 시간의 1차원을 더해서 4차원의 시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우주와 나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어느 쌍성계가 거느린 한 행성의 표면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시공연속체 개념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말 그대로 서로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던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통일된 연속체(continuum)로 인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시공연속체의 특성이 관찰자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가지는 중요한 함축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어떤 물체의 속도가 빛에 가까워질 때 나타나는 길이의 수축이나 시간의 지연과 같은 기괴한 효과를 연상시킬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관찰자가 속한 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가령 지구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달리는 우주선의 시계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선에 탄 사람은 자신의 시계가 정상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여서 수많은 공상과학(SF)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인간이라는 주체와 분리되어 ‘저 너머’(out there)에 우리와 무관하게 있는 것으로 생각되던 세계가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로 이어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 발견의 함의는 관찰자인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 모두에게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며, 양자가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인식을 열어주었다. 따라서 세계는 더 이상 인간활동의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인간 역시 데카르트 이래 물질로만 간주했던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단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다시 말해서, 아인슈타인 이전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만물의 기본은 입자였다. 근대물리학의 집성판인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힘과 운동을 통해 세계의 작동원리를 설명했고, 여기에서 삼라만상의 기본단위는 입자였다. 그에 따르면 지상에서는 입자로서의 포탄, 사과 등이 운동 3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천상에서는 입자로서의 행성들이 중력법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이 입자는 손으로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체이며, 근대적인 존재론은 이러한 입자를 기반으로 삼는다.


△ 아인슈타인은 나홀로 입자에서 관계망의 사건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사건의 개념은 뉴턴(오른쪽)의 입자론에 기초한 존재론을 바꾸었다.

이런 뉴턴의 생각이 아인슈타인에 이르면 입자는 그 의미를 잃고 사건(event)이라는 개념이 제기된다. 사건은 사상(事相)이라고도 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입자 개념과는 달리 관계망(network)을 기반으로 삼는다. 따라서 포항공대 소흥렬 교수(과학철학)는 “아인슈타인의 사건이라는 개념이 이러한 기존의 존재론을 바꾸어놓았다”고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과 에너지, 가속도와 중력이 실제로는 하나라고 말한다. 우주 탄생 초기에는 물질과 에너지의 구분이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자연력이라고 생각하는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도 모두 단일한 ‘초힘’으로 통일돼 있었다. 오늘날 표준가설로 받아들여지는 ‘빅뱅 이론’에 따르면, 그 뒤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와 압력이 내려가자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네 가지 자연력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은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전약력’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외따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무수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는 연결망 속에서 끝없이 명멸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결국 오늘날 지구를 지배한다고 자부하는 인류도 우주의 역사라는 척도에서 보면 지극히 일시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오늘날 생명현상 자체를 개체나 종의 실체가 아닌 생태계로 인식하는 생태적 관점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세계가 법칙성에 지배된다고 믿어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아인슈타인이 근대적인 인식론을 철저히 부정한 사람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그는 세계가 조화롭고 법칙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굳게 믿었고, “세계가 가장 불가사의한 점은 우리가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말로 세계에 대한 이해 가능성이라는 신념을 끝까지 견지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기초를 닦은 양자역학의 함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세계가 확률과 우연에 지배된다는 생각을 거부한 사례는 유명하다. 근대과학의 기반을 다진 뉴턴이 물리학에 대한 연구보다 연금술에 대한 연구가 더 많았던 것처럼 아인슈타인도 자신이 열어놓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의 손잡이를 선뜻 쥐지 못했던 셈이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이 남긴 유산은 실로 풍성하다. 우리는 대개 그의 과학이론이 우리 생활에 응용된 기술품이나 과학이론으로 그 영향력을 한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기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그에게 빚진 셈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의 이론이 우리의 인식과 세계의 존재에 대해 갖는 함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는 비틀스에서 환경운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김을 받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옳고 부분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특수상대성이론 100주년을 맞이해서,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본격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한겨레21 2005년03월02일 제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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