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민주주의를 위하여

2005/03/18 17:57

새로운 문화민주주의를 위하여
-남원시장의 ‘한복 입는 날’ 지정과 관련하여

 

 

의복이란 개인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첫 만남에서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옷을 입는 패션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변화를 통찰할 수 있다. 옷은 개인의 정보이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로인해 그 옷을 입게 된 개인적 동기와 더불어 사회적 동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운 거시적인 왕족의 정치적 역사보다는 가족, 음식, 의복, 주거등과 같은 미시적 사회사를 연구한 페르낭 브로델(Femad Braudel)은 “의상은 욕망과 탐닉의 대상임과 동시에  사회,정치적 영향을 분명히 받고 있으며, 일부 세력은 정치적으로 주도하거나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철학자 푸코(Foucalt, Michel Paul)는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사회변화를 ‘통제사회’라고 했으며, 모든 영역에서 그물망 같은 규율과 통제가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일제시대나 군사독재시절의 교복이나 두발단속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옷은 성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현대 여성들의 평상복인 바지를 입기 위해서 여성들은 100여년간 투쟁했다(Diana Crane. Fashion and its social agenda. 2004). 이처럼 의복은 개인의 욕망과 사회,정치적 의도에 의해 항상 긴장관계에 있다.

 

남원시장은 ‘한복 입는 날’ 지정 운영 계획(자치행정과 공문-2233)에서 춘향제 성공적 개최와 우리고장 홍보를 이유로 3월까지 개별적으로 한복을 구입하여 4월부터 남원시 산하 전직원들은 한복을 입고 근무하라는 ‘협조’공문을 시달하였다.

 

한복을 입고 근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 옷을 입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남원시청은 시장실, 부시장실, 국장실을 제외한 실과소 사무실은 근무자와 근무자간의 여유공간이 부족해 직원들이 지나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로 사무실이 비좁다. 여유로운 생활공간이나 일터가 보장되어야 그 품이 넉넉해 보이는 한복은 자칫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가 있다. 또한 현장에 달려 나가 일을 하는 기술 분야 공무원이나 수로원, 검침원, 주차요원, 공익근무요원들에 대한 배려나 언급이 없다.

 

더구나, 선배공무원을 포함하여 임금이 열악한 하위직 공무원이나 신규직원, 일용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는 20만원을 호가하는 한복을 구입하는 것이 뻔한 봉급쟁이로써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식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종 사소한 혜택에서는 일상적으로 제외되고 차별받는 비정규직에게 지침이나 협조공문으로 그 ‘명령’을 지킬 것을 강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또한 여성들의 한복은 남자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입고 생활하는 것이 까다로우며, 자칫 잘못하면 그 옷차림으로 인해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힘을 얻어 직장내 성평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우리 문화를 지키고, 남원을 홍보하는데 한복을 입는 것은 좋은 생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대안적 생활문화운동으로 차분히 고민되고 실천되는 ‘우리옷 입기’가 아니라, 행사준비를 위한 전시성 행정이라면 그 방향이 옳지 않다고 본다. 옷을 억지로 입혀서 남원이 홍보되는 것은 아니다. 꾸준하고 진지하게 기획되어야 하는 일이다. 설령 급하게 기획되었다 하더라도 한솥밥을 먹으면서 일을 하는 동료공무원들에게 그 의미와 의견을 들어 차분히 준비되어야 한다. 최소한 720명이 넘는 조합원을 대표하는 노조와의 협의나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수렴이 없이 일방적으로 ‘시달’하는 협조공문은 요즘 진행하고 있는 지자체의 혁신사업이나 공직사회개혁과는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 행정절차이다. 아직도 공직사회에서 시장지시에 의한 협조공문은 법보다도 무섭게 하위직 공무원을 위협한다. 공직사회 내부의 상명하복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 안타깝다.

 

옷이나 축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다이아나 크레인이 말하는 ‘의상민주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존의 구태의연한 행정관습을 과감히 버리고 내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봄이 성큼 다가오면서 남원의 춘향제도 가까워지고 있다. 공무원노조 남원시지부는 남원시민과 더불어 2005년 춘향제가 온 국민과 함께 하는 기쁨의 축제, 어울림의 축제가 되기를 바라며 명실공히 전 지역주민이 준비하고 참여하는 축제를 희망한다. 그 축제를 위하여 일방적 지시나 업무하달이 아니라 사소한 부분까지 공무원과 시민이 함께 하고, 새로운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남원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 2005. 3. 17. 이유없이(?) 한복을 구입해야 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북본부 남원시지부]명의로 발표하기 위해 쓴 논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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