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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작년부터 김 훈의 소설에 푹 빠져서 급기야는 [칼의 노래]을 베껴쓰고 있었다.

칼의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매력적이다.

그 와중에 [자전거여행]과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었다.

자전거 여행은 차분하고 끈질긴 여행이었고,

(내 젊은 날의) 숲의 풍경은 장엄했으며, 숲처럼 우거진 (젊은 날의) 인생은 쉼없이 끈적거렸다.

 

작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을 숨도 안쉬고 읽은 적이 있다.

달이 두개 있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외수의 [장외인간]을 보면, 달이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왜 달 이야기일까?......

 

요즘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 책들을 본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정치의 계절은 지나가버린 뒤였다. 한때는 시대를 뒤흔든 거대한 태동으로 보였던 몇몇 물결들도 마치 바람을 잃어버린 깃발처럼 기운을 잃고 색깔을 잃어버린 숙명적인 일상 속에 삼켜져 갔다. (79쪽)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촉촉히 내리는 비가 묘비墓碑처럼 세워진 빌딩 숲을 소리없이 적시고 있었다. (128쪽)

 

그건 오열도 아니었다. 마치 그녀의 기관지에 구멍이 뚫려 숨을 쉴 때마다 거기에서 공기가 새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186쪽)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늘 어떻게든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아.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곤 했어. 거기에서 새로운 인격을 갖추려 했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까지 몇 번이나 그러기를 되풀이해왔지.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성장이었고, 어떤 의미로는 인격의 가면을 교환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 하지만 어쨌든 나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으로서 이제까지 내가 안고 있던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러길 원했고,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다다를 수 없었던 거 같아.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어. 내가 안고 있던 뭔가 빠지고 모자란 결핍은 어디까지나 변합없이 똑같은 결핍일 뿐이었지. 아무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풍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의 톤이 바뀌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내 속에는 늘 똑같은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은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가져다주었어.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갈증 때문에 괴로워했고,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괴로워할 거야. 어떤 의미로는 그 결핍 그 자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난 그걸 알 수 있어. ......(생략). (325-326쪽)

 

방의 공기가 조금씩 옅어지는 것처럼 내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줄어 들어가는걸요. 그럴 때는 죽는 것 따위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죠. (327쪽)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바다에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광활한 바다에,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비는 소리도 없이 해수면을 두드리고, 물고기들조차 그 비를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334쪽)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2007,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문학사상사, ( )는 쪽수.

 

 

- 덧붙임 :  달은 사랑과 죽음을 말하고 있다.

 

1.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등장하는 하지메와 시마모토

 

나는 손을 뻗어 시마모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의 귀를 만지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시마모토의 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마치 생명 그 자체를 흡입하려는 듯이 내 페니스를 쉴 새 없이 빨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마치 뭔가를 그곳에 전하려는 듯이 스커트 아래에 있는 자신의 성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그녀의 입 속에서 사정했고, 그녀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정액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아 마셨다.

......(중략)......

나는 그녀의 원피스를 벗기고 속옷을 벗겼다. 그리고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온몸에 키스했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그 몸을 손으로 만지고 입맞춤했다. 나는 그 몸을 확인하고 기억했다. 나는 아주 긴 시간 동안 그렇게 했다. 오랜 세월이 걸려 가까스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잠든 건 동이 트기 전이었다. 우리는 바닥 위에서 몇 번인가 몸을 섞었다. 우리는 부드럽게 몸을 섞기도 하고, 그리고 격렬하게 섞기도 했다. 도중에 한 번 내가 그녀 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녀는 감정의 끈이 끊어진 것처럼 격렬하게 울었다. 그리고 주먹으로 내 등과 어깨를 세차게 쳤다. 그동안 나는 그녀의 몸을 꼭 껴안고 있었다. 내가 껴안고 있지 않으면 시마모토는 그대로 흩어져버릴 듯이 보였다. 나는 달래듯이 그녀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 맞추고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렸다. 그녀는 이미 냉정하고 자기 자제력이 강한 시마모토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그녀 마음의 저 밑바닥에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 조금씩 녹아내려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듯했다. 나는 그 숨소리와 먼 태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고 그 떨림을 내 몸 안에 받아들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2007,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문학사상사, 287-290쪽)

 

2. 김 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과 여진

 

그날 밤, 나는 두 번째로 여진을 품었다. 그 여자의 몸은 더러웠다. 그여자는 쉽게 수줍음에서 벗어났다. 다리 사이에서 지독한 젓국 냄새가 퍼져나왔다. 그 여자의 입속은 달았고, 그 여자의 몸속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에는 다급한 갈증이 섞여있었다. 새벽에 나는 품속의 여진에게 물었다. 밝는 날 어디로 가겠느냐...... 나의 실수였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그 여자의 목소리는 진실로 베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부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여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담벽에 걸린 칼에 달빛이 비치었다. 칼날의 숫돌 자국 속에서 달빛이 어른거렸다. 그 여자의 머리 속에서 먼지와 햇볕의 냄새가 났다. 나는 더욱 끌어안았다. 그 여자는 몸을 작게 웅크리고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여자의 작은 손이 내 등판의 식은땀을 씻어내렸다. 그 여자의 빗장뼈 밑에서 오른쪽 젖무덤까지, 굵은 상처 자국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등에도 아문 지 오랜 상처 자국이 있었다. 나는 상처에 관하여 묻지 않았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칼날을 비추었다. 달은 칼의 숫돌 무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칼빛이 뽀앟게 살아났다. 칼은 인광처럼 차가워 보였다. 가늘고 긴 목이 내 품속에서 떨리면서, 그 여자는 다시 말했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저를 보내주시어요...... 나는 다시 그 여자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그 여자의 신음은 낮고도 애절했다. 나는 그 여자를 안듯이 그 여자를 베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칼날을 여자의 몸속으로 밀어넣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를 안는 힘으로 세상의 적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몸을 떨었다.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인이 아니었다. 아침 숲에서 새떼들이 깨어나 지껄였다. 아침에 나는 그 여자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김 훈, 2009.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47-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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