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메일] 오 카탈루냐
1903년 인도에서 대영제국 식민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는 고교 졸업 후 그의 부친처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버마의 식민지 경찰이 된다. 그러나 이내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껴 사직한 후 노숙 생활과 접시닦이 같은 밑바닥 생활을 견디며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한다. 바로 파시즘과 공산당 모두를 비판한 정치 우화 <동물농장> (1945)과 감시와 통제의 거대 시스템을 그린 묵시록적 소설 <1984>(1949)로 유명한 조지 오웰(필명)[George Orwell, 1903~1950]의 얘기다. 실천하는 '참여 지식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개인의 삶과 행복을 짓밟는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작품을 주로 썼는데, 르포르타주의 걸작으로 꼽히는 <카탈루냐 찬가> (Homage To Catalonia, 1938) 역시 그 중 하나다.
1936년 카탈루냐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20세기에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주의]이 일시적이나마 정권을 잡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놀라운 사건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북동부에 위치한 카탈루냐 지역에서 일어났다. 오랜 기간 왕당파와 부패한 교권정치로 힘든 시기를 보낸 스페인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염원했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수립된 좌파 인민전선 정부가 토지개혁과 교권분리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자 귀족과 대지주, 가톨릭 교회과 같은 기득권층이 프랑코의 지휘아래 모로코에서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내전이 시작된다. 이에 공산당부터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심지어 중산층 자본가까지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집단이 파시스트 반란군을 막겠다는 하나의 목표아래 집결하였다. 또한 전 세계에서 양심적인 지식인과 청년들이 의용군에 합류하고자 몰려들었다. 특히 카탈루냐에선 일반 시민들이 '무정부주의 시민군'을 형성하여 공산당인 '통일노동당'과 협력, 혁명 정부를 지켜내기 위해 혈전을 벌리고 있었다.
양심적 지식인 조지 오웰과 오합지졸 의용군
혁명에 깊게 경도된 조지 오웰은 자원 입대하기 위해 결혼한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신혼의 아내와 함께 스페인에 입국한다. 카탈루냐의 주도 바르셀로나에 입성했을 때 그가 목격한 것은 거리 곳곳에서 평화와 자유 그리고 희망의 열기가 넘쳐나는 광경이었다. 부자, 거지, 심지어 팁이나 존칭어도 사라지고 도처에서 붉고 검은 깃발이 펄럭이는 믿음 충만한 그곳에서 혁명이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영국독립노동자당이 발급한 여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통일노동당 소속 '카탈루냐 29 사단'에 배속된 오웰. 군기가 아닌 동료애와 충성심을 기반으로 운영되던 이 부대는 군사 계급이나 직위가 없었으며 모두 동등한 음식과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생필품과 무기가 턱없이 부족하고 훈련다운 훈련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어린 대원들은 부대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서툴렀으며, 애초의 결의와 달리 총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무기력한 교착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를 군더더기 없이 묘사한 오웰식 유머는 폭소를 자아낸다. 적이 투하한 폭탄이 터지지 않는 고물인데 아군 대포 규격에 맞아 그것을 되돌려 사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수 차례 터지지 않아 아예 별명이 붙은 것도 있었다는 사실, 손잡이도 없는 삽으로 진척인 땅을 파는데 삽이 너무 형편없어 양철 스푼처럼 잘 휘었다거나, 소총을 든 소년단원 20명 정도면(아니 빨래방망이를 든 소녀단원 이라도!) 자신의 부대를 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 스페인 입성 시 보았던 포스터에 쓰여진 문구, '당신은 혁명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를 떠올리며 속으로 '밥만 축냈습니다'라던 대답, 스페인 내전에서의 실질적인 무기는 소총이 아닌 확성기라는 것 -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적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으므로. 그 중 '파시스타스-마르코네스!'(파시스트-호모)는 압권이다.
적은 파시스트가 아니라 공화군 내부에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대와 달리, 의용군은 주로 가난한 서민이거나 노동자였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불가침조약을 근거로 중립을 지키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해 수세에 몰리게 된다. 사실 스페인이 온통 혁명으로 들끓고 있는데도 서방 언론은 잠잠했다. 혹은 내전을 단순히 '파시스트 VS 민주주의'로 소개할 뿐이었다.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무정부주의 노동자 집단인 공화군을 지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적은 파시스트가 아니라, 다양한 당파와 소속이 '동상이몽'으로 결집되어 있었던 그들 내부에 있었다. 자본가들이 공화군에 가담한 것은 봉건제로 회귀하려던 프랑코를 막기 위한 일시적인 타협일 뿐, 그들은 토지, 교통기관, 건물을 집산시켜 급진적인 혁명을 꾀하려던 무정부주의자들과 결코 함께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소련은 공화군을 돕기는커녕 우익화하고자 애썼다. 오웰은 이를 혁명과정에서 스페인령 모로코가 해방되면 이에 자극 받은 자국의 식민지들이 독립운동을 벌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프랑스와의 동맹관계 때문이라 분석한다. 그로 인한 이익을 중시했던 스탈린은 갑자기 '자본주의 수호자'가 되어 혁명 방해공작을 펼치기 시작했으니, 덕분에 공산당은 우익과 결탁한 '통일사회당'과 혁명을 이어나가고자 했던 '통일노동당'(오웰이 속해 있었던)으로 분열되고 만다. 결국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통일사회당이 증거를 날조해 통일노동당을 불법화했고, 이 과정에서 목숨 걸고 싸운 수많은 애국자들이 누명을 쓰고 투옥되거나 사살되었다. 이렇게 자가 분열한 결과, 공화군은 패했고 희망과 자유를 상징하던 무정부주의 혁명 정부는 프랑코의 36년 독재로 대체되고 말았다.
인간 품위에 대한 믿음은 더욱 공고히
목에 총상을 입은 오웰은 자신이 속해있던 당마저 불법화되자 아내와 야간열차를 타고 탈출한 후 <카탈루냐 찬가>를 썼다. 선뜻 출간하려는 곳이 없었던 이 작품은 출간 이후에도 판매율도 극히 저조한 등 한동안 외면 받았다. 그러나 이는 현재 스페인 내전을 생동감 있게 잘 묘사한 걸작이자, 이후 오웰이 두 명작 <동물농장> <1984>를 집필하는데 강한 자극을 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희망을 안고 참전했으나 온몸으로 좌절을 맛보고 돌아온 오웰 - 그럼에도 그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평등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이 투쟁'이 진정 경험해 볼 가치가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 품위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커졌다고 말이다. 사실 스스로 '오합지졸'이라고 묘사한 의용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시종 따뜻하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어느 정당보다 덜 교조적이고 순수하며, 그들의 자율적 방식이 장기적으로 훨씬 효과적인 것임을 믿었다. 티없는 그들을 연결해 주었던 보이지 않는 끈은 자유와 평등, 불의에의 대항 그리고 휴머니즘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민음사)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http://www.artnstudy.com/sub/community/minerva.asp?clip=C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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