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의 미학

2004/09/03 18:48
문신의 미학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조폭들의 전유물에서 관능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머리가 나빠서 이 얘기를 엄마한테 했는지 모르겠다. 3년 전에 문신을 했다. 뉴욕에 출장갔을 때였는데 당시 묵고 있는 호텔이 그리니치빌리지에 있었다. 한때 예술가들과 보헤미안, 밥 딜런 같은 포크 뮤지션들의 보금자리로 유명했던 동네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클럽보다 옷가게나 타투숍이 즐비한 상업 공간으로 쇠퇴해 있었다. 그때 혼자 타투숍에 들어갔다. 결코 술김이 아니었다. 맥주 한잔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샤워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문신 견본이 진열된 두꺼운 책자를 두권이나 봤지만 마음에 드는 문양이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도안을 그려 타투이스트(문신 시술자)에게 보여줬다. 이제는 아무도 외치지 않는 ‘사랑과 평화’. 내 스스로 하트 문양과 ‘Peace’라는 영문자를 연결해 소박한 도안을 그렸다.


△ 사진/ 김태은

세상의 모든 타투이스트들은 스스로를 예술가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화려한 문양을 원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니까 컬러나 음영을 넣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NO Color, No Shadow.”

잉크 묻은 바늘이 내 어깨죽지의 얇은 살갗을 뚫어주길 기다리며 문신 시술대 의자 위에 숫처녀처럼 앉아 있었다. 두렵고 떨렸다. 첫 번째 바늘이 내 살갗을 관통할 때 양팔의 솜털이 곧추섰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 얼얼한 열기가 번졌다. 난 바늘이 살갗을 뚫으며 내 어깨죽지에 ‘사랑과 평화’를 아로새길 때 느껴지는 내 몸의 감각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 감각이 바로 문신의 미학이며 관능이라 여겼다.

예전에는 문신이 조폭 아저씨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확실히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젤리나 졸리, 위노나 라이더, 주드 로, 조니 뎁,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나 베컴과 안정환 같은 축구 스타들의 공이 컸다. 주변에도 멋진 타투를 자랑하는 스타들이 부쩍 많아졌다. 공효진은 가리기도 쉽고 드러내기도 쉽다는 이유로 발등에 별 모양을 새겼고, 양 어깨죽지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넣은 모델 이유의 타투도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특히 얼마 전에 결혼한 이혜영은 엉덩이 부분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인디언 부족들의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새의 깃털을 새겼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나중에 레이저로 문신을 지우거나 다른 그림을 덧입혀 원래 글자를 은폐하려는 ‘헛짓’을 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헌사 또는 같은 할리우드 스타와의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문신을 했던 안젤리나 졸리나 조니 뎁 같은 스타가 그 대표적 예이다. 특히 ‘위노나 포에버’라고 새긴 조니 뎁이나 ‘섹시 새디’라고 새긴 주드 로의 문신이 제일 어리석게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끔 디자인되어 있는데, 동시에 그 사랑 안에 머물지 않게끔 디자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말인가?

나중에 눈꼽만큼이라도 후회할 것 같으면 차라리 헤나를 해라. 진짜 문신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에게 헤나는 쉽게 입고 벗는 양말짝 같은 패션 아이템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레이저로 지울 바에 차라리 헤나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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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우주' 구경하기

2004/09/03 18:46
남의 ‘우주’ 구경하기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제각기 취향 부린 그들의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들이 보인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얼마 전, <한겨레신문>의 김선주 논설위원으로부터 젊을 때는 ‘시간’을 즐기고 ‘공간’은 나이 들어 즐기는 것이라는 멋진 말을 들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10대 때부터 줄곧 공간에 집착해왔다. 10년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엄마 지갑에서 달랑 10만원을 훔쳐서(훔친 건지, 빌린 건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길음동 옥탑방으로 독립할 때부터 줄곧 그랬다. 세계 어디를 가도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걸핏하면 길을 잃었고, 때로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집들을 책으로 구경하며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 사진/ 바자 이보경

그런데 최근에 문화평론가 강영희 선생이 쓴 <한국인의 미의식>이라는 책을 보고 내가 왜 그토록 공간에 집착했는지 깨달았다. 그건 ‘악착같이 벌어서 내 집 장만하자’ 식의 어머니 세대의 구호와는 좀 다른 의미였다. 그 크기로 보나 방식으로 보나 나만의 이런저런 취향을 제 멋대로 부려놓기에 집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집은 책이며 음반, 책상, 꽃과 나무 등 내가 좋아하는 오브제들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놓인 나만의 우주였다. 그러니까 집은 나라는 인간의 가장 가시적이고 가장 거대한 ‘일부’였다.

내가 취재원 집에 놀러가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취향이나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그 사람이 사는 공간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보였다. 한대수 선생의 집에 가면 샤워할 수 있고 기타를 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히피 뮤지션의 일상이 보였고, 만화가 이우일 집에 가면 영화나 책 같은 자기 취미에 빠져 낙천적으로 사는 어린아이 같은 30대 남자가 보였다.

최근에 방문한 집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집이었다. 자동차로 진입할 수 없는 좁디좁은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낡은 슬레이트 집인데, 집 한복판에 오랫동안 가꾸지 않은 야생의 정원을 품고 있어서 홀로 사색하기 좋아 보였다. 그런데 씨네월드라는 견실한 영화사의 대표이기도 한 이준익 감독은 그 누추한 집의 사랑채를 전세 내어 혼자 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집도 사람도 눈곱만큼도 허세가 없었다. 어느 스태프가 이준익 감독을 두고 “촬영하는 내내 고환에 습진이 생길 정도로 생고생을 다 했는데도 걸핏하면 그 망할 놈의 감독이 자꾸 보고 싶어진다”고 했는데 그의 집도 그랬다. 누추하지만 편안하고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가고 싶어지는 집이었다. 마침 부암동이라는 동네 전체가 그런 고졸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나는 이사할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그 동네에 전셋집을 보러 다닐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

반면 최근에 나를 가장 숨막히게 한 집은 ‘대한민국 1% 아파트’로 불리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였다. 일단 초고층 건물이라 창문을 열 수 없다는 점이 ‘쥐약’이었다. 게다가 집약된 고도의 기술력으로 가장 편리하게 지어졌다는 최고의 홈네트워크 주거 공간이 내게는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거대한 기계장치처럼 보였다. 또 입주하기 전부터 완벽하게 세팅된 곳이라 거주자가 그곳에 자신의 취향을 부려놓을 만한 여지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타워팰리스에 못 살아서 난리일까? 그건 4억원에 분양받는 순간 곧 10억원이 되는 집이기 때문이다. 강영희 선생 말마따나 그 경제성이 공간에 대한 인간의 취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내 눈에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대한민국 상위 1%’가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 ‘닭공장’에 가는 화이트칼라처럼 좀 안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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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운동은 ‘애국’이었나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구한말 계몽주의자들이 추종한 일본인 마당발 오가키 다케오… 친일 환상 부추겼음에도 찬양받아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애국’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행동을 애국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각자가 생각하는 ‘나라’와 ‘사랑’의 내용이 각각 다르기에 애국을 주장하는 두 쪽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예컨대 ‘나라’ 개념의 내용을 이라크에 가서 제국의 총알받이로 죽을 서민층 젊은이를 중심으로 본다면 파병 반대가 애국이 되지만, 파병으로 인한 한-미 동맹(대미 예속)의 강화로 미국 투자가 활성화돼 주식값이 오르리라고 군침을 흘리는 투기꾼이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면 파병은 애국이 될 것이다.


△ 1907년 7월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이토 히로부미와 그 행렬이 궁궐에서 물러나고 있다. 이토의 중요한 협력자는 오가키와 같은 민간인 국수주의자들이었다.

애국항일 계몽지의 놀라운 이면

‘애국’이 주관적인 개념이기에 객관성을 내세우는 사학자들이 애국이라는 수식어를 쓰려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애국이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 것은 1900년대 후반의 이른바 ‘애국계몽운동’이다. 1980~90년대의 민중사학자들이 애국계몽운동 지도자 대다수가 통감부 권력자들과 조화롭게(?) 공존했던 부르주아·지주·관료였음을 입증했는데도, 오늘날까지도 국사교과서를 외워야 하는 학생들은 대한자강회-대한협회(1906년 4월~1910년 9월)나 서우-서북학회(1906년 10월~1910년 9월) 등의 계몽단체 간부들을 ‘애국적인 항일 인사’로 인식하고 있다. 당대의 생생한 증언이라 할 만한 계몽단체들의 출판물들을 읽으면 ‘자강’과 ‘문명’을 부르짖었던 지도자들에게 일제는 위협이면서도 동시에 모방이자 제휴의 대상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900년대 후반 계몽단체의 선구자라 할 만한 대한자강회의 <월보> 제1호(1906년 7월)를 들여다보자. 교과서에서 배웠던 박은식·장지연 등의 이름들이 맨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웬일인가. 머리말 격인 3편의 ‘서’(序)를 쓴 사람 중에는, 회장 윤치호(尹致昊), 대문장가 이기(李沂)와 나란히 일본 이름 하나가 보인다. 러시아에 붙었다가 중국에 붙었다가 하는 ‘독립정신이 없는’ 한국 당국자들을 비난하고, “한국이 군대를 키우지 않아도 된다. 문명 열강들이 한국을 정의로 대해줄 터이니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침략당할 일 없다. 일단 교육과 식산흥업에 힘쓰고 나중에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되찾자”는 취지의 머리말을 쓴 사람은 일본인 오가키 다케오(大垣丈夫·1861~1929)였다.

미국·영국을 위시한 열강의 적극적인 방조 아래서 일제 침략을 당해 ‘보호국’이 된 나라의 국민들에게 “안심하여 교육이나 힘쓰라”고 훈시하는 것은 그 당시 통감부의 대(對)지식인 선전 방침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이 서(序) 밑에다 이기는 “국가 정의에 대한 이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을 감동시키는 내용이며, 세상을 깨우치게 하는 큰 종(鍾)”이라는 찬양의 코멘트까지 달아놓았다. 이게 애국항일 계몽지 같은가?

<월보>를 계속 정독해보면 놀라움은 더해간다. 13호까지 발간됐다가 정간을 당한 <월보>에 23편(!)의 글을 기고한 오가키야말로 학회의 가장 근면한(?) 필자로 보인다. 기고의 내용은 계몽주의자들의 거의 모든 관심 분야를 아우른다. 예컨대 “40~50년 전에 일본도 한국처럼 미개한 나라였지만 서구 문명을 흡수하고 ‘국혼’(國魂)인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배양했기에 오늘처럼 발전됐으니 한국도 교육·식산흥업에 힘쓰고 한국혼(韓國魂·국민 정신)을 키우면 언젠가 독립을 되찾아 하나의 열강이 될 것이다. 단, 참다운 국민이 정부의 뜻을 받들고 국법을 준수할 뿐이지 독립운동과 같은 ‘무모한 짓’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대한자강회의 창립 때 오가키 연설의 요지였다(<월보>, 제1호).

오가키, 계몽운동의 실세로 통해

또 그는 인종적으로 일본과 같은 뿌리의 한국인들이 교육만 잘 시키면 중국 영향으로 말미암은 나태·사대주의를 극복하여 곧잘 문명개화로 중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통감부하 반(半)식민지의 ‘진보’를 낙관했으며(‘외국인의 오해’-<월보>, 제2호), 대한자강회를 중심으로 잘 뭉쳐서 교육에 열중하면 아예 백인종까지도 능가하여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리라고 내다봤다(‘교육의 효과’-<월보>, 제1호). 인종적인 형제 국가인 일본에 번거로운 외교를 편하게 맡겨놓은 채 실력 양성을 잘하여 국민 정신, 즉 국가에 대한 충성만 잘 키우면 한국이 곧 개명진보의 역에 도착하겠다…(‘한국 목하(目下)의 급무’-<월보>, 제9호).

이것이 대한자강회 잡지에 우연히 실리게 된 일개 일본인의 망설뿐이었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한 동맹론’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찬사까지 얻어(‘論大垣氏同盟說’-1906년 2월25일치 논설) 장지연과 같은 당대의 대표적 문사와 개인적으로 가까웠던, 그리고 <황성신문> 등의 매체를 연설과 기사로 자주 장식했던 오가키가 단순히 대한자강회와 무관한 일개의 궤변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를 고문으로 둔 대한자강회의 상당수 한국인 논객들이 ‘황인종의 연합’과 집단주의적인 ‘국가 정신’, 그리고 ‘선 실력양성 후 독립’ 등을 뼈대로 한 그의 논지를 그대로 따르기도 했으며, ‘이름을 밝혀 이득을 낚으려는’(황현, <매천야록>, 제5권) 계몽주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가 마당발이자 실세로 통하기도 했다. 통상 ‘항일 애국운동가’로 생각되는 계몽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 일제의 속뜻을 대표했던 이 ‘호걸’(장지연의 오가키 평)을 이렇게 환대하게 됐는가?

오가키의 전기가 일본 국수주의자들인 ‘흑룡회’(黑龍會)가 1936년에 편찬한 <동아선각지사기전>(東亞先覺志士記傳-‘선각지사’는 침략의 주역을 뜻한다)에 실린 것만 봐도 그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국수주의 운동 활동가로서 전형적인 자금 조달 방법인 기업인 공갈협박의 죄로 일본에서 1902년에 형까지 받은 오가키는 원래 지역 정치인이자 ‘국가 원기 회복’을 주장하는 한 국가주의적 신문의 사장이었다.

본인의 말대로라면 1906년 2월에 이루어진 그의 도한(渡韓) 동기는 “국은(國恩)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한국인들의 지도계발을 맡아 제국의 정책에 보탬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백성이 돼가는 한국인에 대한 그의 ‘지도계발’의 전술은 양면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적어도 겉으로- 또 다른 ‘대륙 낭인’(재야 국수주의자)들의 ‘합방론’에 반대하여 이미 허울뿐인 한국의 주권이 명목상 유지돼 일본과 ‘동맹’ 관계가 돼야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성공적으로 차별화하고 한국의 계몽주의자들과의 교분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물론 그가 이야기한 ‘동맹’이란 한국의 대일 종속에 대한 기만적 수사에 불과했다. 그는 초기에 아예 <대한매일신보>에 광고를 내 일본인에게서 구타·임금체불을 당할 경우 자신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억울함을 다 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등(1906년 3월13일 잡보란) ‘착한 일본 해결사’의 노릇을 맡은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미 유행한 ‘황인종 연합론’의 인종주의적인 친일적 환상들을 더 부추기고 국채보상운동에 훼방을 놓고 대한자강회의 강제 해산과 같은 일제의 폭거에 대한 분노를 무마하는 데 공을 들였다. 1907년 8월에 대한자강회가 해산당하자 오가키가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계몽주의자를 결집할 새 단체, 즉 대한협회의 설립허가를 따주고 그 활동을 배후에서 조종했다.

식민지 거물로 거듭난 극우 공갈꾼


△ 오가키와 가장 친했던 계몽주의자 중의 한 사람인 대한협회 부회장 오세창(왼쪽). 위암 장지연(오른쪽)은 오가키를 “천하의 호걸”로 평가하고 그의 ‘황인종 연합론’에 동조했다.

이완용과 결탁한 오가키는 1910년에 ‘합방의 공로’를 독차지하려던 일진회의 한쪽과 한때 공방을 벌여 일본 당국의 제지까지 당한 바 있었지만 결국 식민지의 ‘개명진보’를 찬양하면서 죽을 때까지 서울에서 눌러살게 됐다. 일본의 한 극우적 공갈꾼이 명예직을 두루 거친 식민지 ‘거물’로 거듭났다.

1900년대 말에 오가키에 대해서 ‘사기꾼’ ‘고등 첩자’ 등의 소문이 나돌았음에도 그가 대한자강회의 고문이 되어 윤효정(尹孝定), 오세창(吳世昌), 권동진(權東鎭) 등의 주요 정객들을 친구로 사귀고 계몽담론의 생산자로 기능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가? 현실적으로는 계몽주의자 집단들에게 오가키처럼 그들과 일제 당국 사이의 매개체가 될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도 있었지만, 더 근원적인 이유는 초기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모순적인 대일관(對日觀)에 있었다. 일제에 국권이 넘어가는 현실을 안타깝고 분하게 여기는 의미에서 그들이 애국자였지만, 그들이 대표하는 신흥지배계급(개명관료, 개항장의 부르주아, 쌀 수출의 주역인 지주 등)이 도일 유학과 대일 무역을 부·문화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여기고 일본의 국가주의적 규율을 흠모했던 만큼 그들에게도 일본은 ‘위협’이기에 앞서 ‘인종적 형제’이자 모델이었다.

오가키가 주장한 인종주의적 ‘일한 동맹론’이나 ‘국혼(國魂) 배양’ 식의 집단주의·국가주의, 그리고 반(半)식민지적 현실의 인정과 ‘실력양성론’은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상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이 벌인 운동을, 과연 ‘애국’으로 지칭해야 되는가? 만약 ‘나라’를 침략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으로 해석한다면 침략자들과 ‘인종적 동맹’을 모색했던 운동에 ‘애국’과 같은 수식어를 붙일 여지는 없어지고 만다. 외세의존적인 초기 부르주아의 메이지 일본식의 계몽이 곧바로 식민지 엘리트의 ‘소신친일’의 논리로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일본 극우파를 닮은 수구 기득권층의 군사주의적·국가주의적 논리로 계속 이어져가는 것은 우리가 바로 봐야 할 현실이다.

[오가키 관련 연구]
- 이케가와 히데가쓰(池川英勝), ‘大垣丈夫について-彼の前半期’, -<朝鮮學報>, 제117호, 1985.
- 다구치 요조(田口容三), ‘大韓自强會-大韓協會の日本人顧問に對する 評價をめぐって’, - <朝鮮史硏究會會報>, 제66호, 1982.
- 정관, <한말 계몽 운동 단체 연구>, 효성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2
- 최미숙, <大垣丈夫 연구-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5.
- 최덕수, ‘대한제국기 일본인의 조선론 연구’, -<宋甲鎬 교수 정년퇴임기념 논문집>,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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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선수촌, 혹은 어덜트 디즈니랜드


최근 미국의 듀렉스 社가 13만개의 콘돔을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에서 무료 배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수촌에는 대회 기간 동안 10,000여명의 선수와 5,500여명의 코치 및 임원들이 머물 것이므로, 남녀 구분 없이 배포한다면 개인 당 6개 정도의 콘돔이 돌아간다. 그 콘돔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

이정화

(편집자 주) 최근 미국의 듀렉스 社가 13만개의 콘돔을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에서 무료 배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수촌에는 대회 기간 동안 10,000여명의 선수와 5,500여명의 코치 및 임원들이 머물 것이므로, 남녀 구분 없이 배포한다면 개인 당 6개 정도의 콘돔이 돌아간다. 그 콘돔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 짐작이야 할 수 있지만 정확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의 일간지 '더 스코츠맨 (The Scotsman)'이 올림픽 스타들의 '체험'을 상세히 보도했는데 기사를 발췌 번역 한다.


현대 올림픽의 비밀은 필드가 아닌 선수촌에 있다. 최근 선수촌 내 비기(?)의 트레이닝이 외부에 알려져 화제다. 선수촌에 입성한 선수들의 '마지막 컨디션 조절'은 수영도, 조깅도, 페달링도 아니다. 바로 섹스다.

열전에 들어선 아테네 올림픽의 올림피아드 선수촌. 최근 US 올림픽 팀 소속인 한 여선수가 평소 출입이 금지된 선수촌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타국 팀 선수들과 섹스파티를 벌인 것이 화제가 되었다. 놀라운 건, 정작 선수촌 내부에서는 이를 '일상다반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 전 선수촌 생활은 고된 트레이닝에 시달려 왔던 혈기왕성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2주간의 초호화판 휴가이자 수천이 넘는 탄탄한 육체들의 향연이죠."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수영 2관왕인 넬슨 디벨(美)의 말이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선수촌에 입성한 각국의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한 마디로 '성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에 가깝다. 24시간 방영되는 스포츠 TV, 언제고 무료로 양껏 즐길 수 있는 최고급의 세계 진미, 드라이브인 콘서트(모든 선수들에게 BMW 한대 씩 대여된다), 수영장, 극장, 볼링장, 디스코 텍 등등이 갖추어진 올림픽 선수촌은 지구 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VIP 전용 휴양지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곳을 누비는 건 라이벌, 코치, 트레이너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잘 빠진 선남선녀들의 육체다.

"코치의 엄격한 통제 하에 고된 운동 스케줄에 시달리던 선수들에게 갑자기, 2주간의 초호화 무상 휴가가 주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건이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하죠." 아틀란타 올림픽 투포환 은메달 수상자인 존 가디나의 말이다. 그들은 200여개국에서 온 혈기왕성한 관광객(?)에 가깝다.

선수촌 입성 후 변화하는 트레이닝 방법도 선수들의 테스토스테론 지수를 높이는데 일조한다. 선수들은 보통 때 정해진 시간에 수영이나 자전거 페달링 등의 트레이닝으로 하루 9천 칼로리를 소모한다. 그러나 선수촌 입성 후,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가 있기 며칠 전부터 트레이닝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간다(이를 '테이퍼링 taper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칼로리 섭취량은 줄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선수촌 선수들은 경기가 가까워올 수록 '놀 시간은 많은데, 원기가 끓어 넘치는' 상황에 처한다. 이른바 클라이맥스에 달한 신체조건에, 건장한 육체들이 종횡무진하는 선수촌만의 풍경이 이들의 성욕지수를 높이게 되는 건 자명하다.

"글리코겐으로 충만한 만 여명의 사람들이 종횡무진하고 있는 걸 보면, 그들 몸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아요." 시드니 올림픽 배영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BJ 베드포드의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선수촌에 비치된 자판기 중 빈번히 품절표시등이 켜지는 건 소프트 드링크가 아닌 콘돔 자판기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의 경우 매 두 시간마다 품절이 되었다. 시드니 올림픽 때에도 선수촌 운영진 측이 애초 비치한 7만 개의 콘돔이 완전히 동이 나는 바람에 운영진은 황급히 2만개의 콘돔을 추가주문해야 했다. 이렇게 추가로 비치한 콘돔도 경기 스케줄이 종료되는 3일 전에 다 동이나고 말았다. 쿠바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성한 날 처음으로 품절표시등이 켜졌다.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올림픽은 더 가관이었다. 금욕주의로 유명한 몰몬교도들이 절대다수인 솔트레이크 시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 2십 5만 개의 콘돔이 선수촌에 공수된 것이다.

시드니 올림픽 때 투창 경기에 참여한 캐나다 선수 브리오 그리어는 "여기저기서 섹스판이 벌어진다. 몸매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테스토스테론 지수도 올라가기 마련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파인 스키 챔피언인 캐리 셰인버그는 선수촌의 섹스파티가 난잡하다는 설에 반대한다. "하지만 난잡한 섹스파티는 절대 아니예요. 우린 좀더 왕성하게 사교적일 뿐이죠. 자유연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랄까."

인터넷 시대와 함께 선수촌 내의 섹스파티는 보다 가속화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알파인 스키 레이서인 마르코 부첼은 인터넷으로 선수촌에서의 멋진 원나잇스탠드를 경험했다. "인터넷 덕에 선수촌 내의 어떤 선수들과도 즉각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선수들이 선수촌에 도착하면 선수들의 프로필이 기재된 리스트가 나와요. 모든 선수들이 그걸로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죠. 저 역시 그리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온 '아름다운' 스키 레이서들과 접촉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스 스키 레이서에 한 눈에 반해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서투른 영어였죠. 그런데 곧장 답장이 오더군요. '영어가 그다지 능숙하진 않군요. 하지만 만나보고 싶군요.'라고요." 그렇게 접선(?)한 두 선수들은 잊지못할 아름다운 섹스를 나눴다고. "아름다운 국제적 사건(!)이었죠."

선수촌에 오는 선수들은 두 부류다. 금메달을 목표로 오는 성실파, 아니면 일생일대의 호화 리조트에서 2주간의 무상휴식을 노리는 쾌락파 . 성실파에게 섹스는 금기이다. 특히, 메달이 걸린 경기 전날이라면 봐서도, 해서도 안될 게 섹스다.

배영 선수 베드포드는 "내 생활 신조 중 하나가 '회사 앞 부둣가에서는 낚시하지 마라'예요. 세상은 너무 좁아요. 다른 나라에서 온 매력적인 수영 선수와 눈이 맞았다고 해도 원나잇 스탠드와 메달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지를 생각하면 고민할 이유가 없죠."라며 경기 전 섹스는 선수의 커리어를 망치는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경기 전 섹스가 선수의 컨디션과 경기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경기 전 섹스가 메달 획득의 지름길이라는 이색 연구보고가 발표되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기 전, 예루살렘의 섹스 클리닉 담당의들은 이스라엘 팀 여자 선수들에게 경기 전 섹스를 권장했다. 소속 담당의 중 한 명은 "여선수들의 경우 오르가즘을 느끼고 난 후 훨씬 더 향상된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높이뛰기 선수와 주자들에게 섹스는 좋은 에너자이저입니다."라고 말한다.

독일팀 선수 담당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기 전 섹스에 여자, 남자 따로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남녀 선수 모두에게 섹스를 권장하고 있다. 올해 러시아의 한 심리학자는 독일 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올림픽에서 섹스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이는 성차와 상관없다. 섹스를 많이 할 수록 메달을 딸 확률도 더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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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의 단식과 저 위의 그들 : 지율스님 단식 47일째에 붙여

 

비나리(http://www.greens.or.kr/)

요즘은 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한다. 사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잠깐 움직이면, 움직임의 대가로 이틀간을 거의 죽은 것처럼 자야한다. 그래도 여전히 몸이 아프다. 그래서 살살 움직이려 한다.

몇 번 정도 죽을뻔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집에는 전혀 효자와는 상관없는 나한테 부모님들이 약간의 방황을 참아주는 건, 그래도 살아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괜히 그런 생각을 해본다.

천성산 문제에 대해서 올 1~2월경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져 있는 천성산의 문제는 쉽게 이것이다 저것이다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1. 유마힐의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얼마 전에 유마경을 읽었다. 삼보일배를 떠날 때의 수경스님이 유마경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얘기가 뭔지 잘 몰랐다.

석가 시절에 이미 깨달은 사람이 있었다. 이미 부처인 사람의 이름은 유마힐이었다. 병문안을 가라고 석가가 제자들에게 얘기를 했다. 예전에 한 번씩 유마힐한테 쫑코, 요즘 식으로 하면 선문답에 한바탕 당한 제자들이 병문안을 가기를 꺼려했다. 석가의 10 제자 중 막내인 문수가 유마힐에게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한다.

문수는 유마힐에게 병문안을 가서, 유명한 세상 만물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중생들이 아픈데 석가가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들은 문수는 부처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마지막 중생까지 해탈할 때까지 세상에 머물기를 자청하고, 그래서 문수는 문수보살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세상 어디에선가 아픈 중생들을 해탈시키기 위하여 떠돌고 있다...

이게 유마경과 관련된 얘기이고, 실제 법전에는 나머지 9명의 제자가 왜 병문안을 가지 못하는지 핑계대는 얘기가 나와있다. 온갖 좋은 얘기나 가치도 다 뻥이라는 소리로 들린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이게 유마경이 우리에게 던져준 질문이다.

2. 지하수법과 습지의 문제

우리나라의 지하수법은 건설교통부 소관사항으로 되어있고, 기본적인 법의 정신은 지하수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어떻게 관리사항으로 유지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관점에서 지하수는 시선에서 멀어져 있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 한참 터널을 시공할 때 지하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가 논란거리에 있다고 보면 된다. 대형 택지개발과 지하수의 관계는 아직 법에서 어떻게 처리할지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건설교통부의 자하수 담당관을 한 달 전에 직접 만났다. 착하게 생긴 아저씨다... 눈 껌벅껌벅 거리면서 터널은 어떤 식으로 갈래가 잡힐 것 같다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민원인 신분이다. 택지에 대한 건, 선생님이 어떻게 좀 해결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오히려 나에게 담당관이 부탁을 한다. 마음이 답답했다.

지하수 문제가 앞으로는 사람들의 시건 한 가운데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큰 흐름에서 보면 지금 생태를 주장하는 소위 '경관생태(land-scape ecology)'와 식생 중심의 생태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 지하수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경관생태를 가장 활용한 사람으로서 이명박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다. 녹색이라는 이미지로 '녹색서울'이라고 얘기할 때는 조경으로서의 생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은 생태계의 1/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녹색이라는 사실이나 나무 몇 그루 심는다는 것이 생태계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천성산에 터널을 관통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지하수 문제 때문이다. 터널을 관통하면 상당히 보존가치가 높고 - 그야말로 괜찮은 - 천성산의 습지가 말라버리게 된다. 다른 산은 괜찮을까? 물론 다른 산도 무턱대고 터널을 뚫으면 터널을 통해서 지하수맥이 이리저리 잘려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크게 보면 천성산 문제와 서울시의 은평 뉴타운에서의 지하수 문제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터널을 뚫으면서 천성산의 습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하나는 진관내동, 진관외동의 북한산 바로 밑에 30층 짜리 건물을 짓는다고 지하 10미터 이상을 파내려갈 때 다른 지역에서 - 이 경우는 산 - 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천성산의 습지의 경우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동의하는데, 이게 고속철 통과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개별 습지에 대해서는 보호해야 한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보호의 대가가 천성산을 고속철이 통과해서 안된다고 하는 순간에 그렇다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작은 것에 대한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한가운데 떡하고 들어앉은 것이 도롱뇽, 정확히 얘기하면 제주도롱뇽이 천성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은 중요하지 않고 도롱뇽만 중요하냐고 하면 별 할 말은 없지만, 제주도롱뇽은 멸종을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보호법의 시행규칙이 내년 1월에 발효될 예정이다. 여기에 의하면 제주도룡뇽은 2급 보호대상이다. 1급도 아니고 2급 보호대상의 동물가지고 이런 난리를 펴냐고 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이 시행규칙은 내년 2월에나 발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이런 법리 해석의 문제로 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기에서 불법적인 요소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애초의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태조사가 제대로 되었다면, 그래서 제주도롱뇽을 비롯한 인근의 식생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되고, 그리고도 환경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없다고 해서 시행이 된 것이라면 적어도 적법성에 대한 논란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3. 47일째의 단식과 환경영향평가

문제인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이 중재에 나선 것은 KTX와 법정소송의 2심에 올라가 있는 사건의 당사자인 지율 스님 사이에서 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고, 그 주된 내용은 도롱뇽을 비롯한 생태계의 식생조사 부분을 다시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의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얘기가 불거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고, 두 번이나 재검토 약속이 있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던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보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2차에 걸친, 그리고 지금의 47일 단식이 가운데 들어가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얘기가 좁혀진 것은 3개월 조사, 6개월 조사라는 두 가지 기간과 누가 할 것이냐의 문제 사이에 협상의 핵심이 들어가 있다. 잘못된 결정이라도 정부가 번복하는 일은 없다는 오만함(!)이 환경영향평가의 주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된 경우에 어떻게 한다는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사를 새로 하더라도 시민사회 혹은 불교계에서 알아서 한다가 첫번째 문제이다.

두 번째 문제는 하더라도 3개월 내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가 사업시행측에서 가지고 있는 불편한 점은 현재로서는 딱 한 가지이다. 4계절 평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봄이나 가을에 시작하면, 3계절 평가만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시공사들은 대개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환경영향평가를 미리 시작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착공일자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월이라도 두 달 동안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는 어렵다. 이걸 3개월로 줄이면, 현실적으로 조사인단을 꾸리고 또 조사를 위한 용역비를 마련하고 하여간 하다보면 한 달이 그냥 지나가게 된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여기에 조금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본질보다 더 본질에 가까운 문제가 그 동안에 공사를 중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천성산 공사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공사 진행과 조사 사이의 위계 문제 같은 것들이 불거져 있다.

4. 생명...

협상을 결렬되었고, 지율스님은 단식에 묵언 하나를 추가하였고, 매일 두 시간씩 사람들과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하신다.

불교계가 여기에 대해서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불만감은 현 정부와 사찰 사이의 관계인데, 전국토에 대해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사를 벌여서 경제를 단기부양하겠다는 정부의 긴급처방이 산마다 사찰을 가지고 있는 불교계와의 힘겨루기 양상을 가지고, 차제에 아예 정부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거 아니냐는게 불교계가 가지고 있는 그ㄴ본적인 불만감이다.

예전 식으로 표현하면 곡기를 끊고 고단했던 삶을 정리하기로 결심을 하신 지율스님을 보면서 과연 모순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가 다시 한 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생명... 생명이란 과연 무엇일까? 도롱뇽 몇 마리라고 이해하는 것과 제주 도롱뇽 몇 마리가 현 사회에서 그리고 현 정권에서 죽어가는 것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생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한 사람의 생명이 계산상 많은 경우에 20억 정도 작은 경우 10억 정도를 계산에 포함시킨다. 도롱뇽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개 한 마리의 가치를 이런 가치환산법으로 계산하면, 한 근에 4,000원에서 8,000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도 이렇게 계산했다. 도롱뇽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과연 옳은 질문인가 그리고 옳게 생각하는 방식인가에 대해서 뿌리 깊은 회의를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방식이 사유가 '합리적인 사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합리적인 사유로 토론하자...

동일한 방식의 사유가 김선일씨의 죽음에서도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율스님의 환경영향평가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은폐와 법리적 순서가 잘못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생명의 합리성... 과연 생명에 대해서 합리성이라는 말을 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통합적'으로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고, 천성산의 의미는 도룡뇽의 의미만도 아니고, 도롱뇽이 살고 있는 깨끗한 물을 가지고 있는 습지의 문제만도 아니고, 산 자체의 의미도 아니다. 도롱뇽이 살 수 없는 곳에 다른 것들이 살기 어렵다는 의미와 함께 돈으로 표현된 모든 것만이 가치라고 하는 생각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생명과 평화...

5. 대체노선에 대한 논의와 현재의 논의

천성산을 관통하지 않는 또 다른 노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대체노선에 대한 논의의 제기가 있었지만, 이런 얘기가 별로 힘을 받지 못한 이유는 대체 노선과 관련된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게서 또 다른 문제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의 이유도 있지만, 실제로는 별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47일... 얼마나 더 갈지 모르지만, 현재의 단식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적... 도대체 문제의 출발이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논의는 지율스님을 어떻게 양보하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한 스님의, 한 선각자의 고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야말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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