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서울역에 가면 길바닥에서 장기판 벌여 놓은 야바위꾼들이 제법 있었다. 대개는 장기판 벌인 녀석만이 아니라, 돈 내고 장기 두는 손님이나, 둘러서서 분위기 잡는 구경꾼들까지 한 통속으로 보면 틀림없다. 그렇게 거나하게 판을 벌려놓고, 이제나저제나 순진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야바위에 속지 않으려면 그 판에서 자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같은 조직에 속하는 자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말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도 도저히 이길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때는 게임에서 빠져 나와 게임규칙 자체를 뜯어봐야 한다. 게임의 규칙 자체를 남이 이길 수 없게 짜는 게 야바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임은, 그 규칙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균적 아이큐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게임에 무턱대고 들어가기보다는, 그 시간에 야바위꾼의 뒤통수를 갈길 궁리나 하는 게 좋겠다.

박정희 논쟁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이 논쟁은 예외 없이 "박정희의 공(功)과 과(過)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크냐"는 식으로 진행된다. 게임 규칙이 이렇게 놓여지면 그 안에 들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공이 크든, 과가 크든, 25년 전의 죽은 독재자가 졸지에 중요한 인물로 컴백하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 야바위판에서 휘파람 불며 유유히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 "박정희는 죽었다. 아무리 애무해도 그의 물건은 서지 않는다."

신드롬의 이데올로기

5년 전이던가? 그때는 지금보다 더 했다. 때는 바야흐로 IMF 전야, 사람들은 잘 풀리지 않는 경제에 대한 불만을 박정희에 대한 향수로 표출했다. 영악한 언론사들은 바로 이런 대중심리에 영합해 박정희 띄우기에 나섰다. 신문사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박정희 신드롬을 부추겼고, 조선일보에서 아예 한 면 전체를 통으로 써가며 매일 박정희 전기를 내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박정희가 IMF 사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는 일, 잠시 후 박정희 신드롬은 급속히 가라앉아 버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잘 안 풀리면 사람들은 좋았던 시절,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끔찍했던 과거의 좋았던 측면만을 기억하는 법이다. 그래서 다시 박정희 향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정치적 동기까지 겹쳤다. 지금 한나라당의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귀하신 따님이 아닌가. 그러니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박정희 뒤로 결집할 정치적 이유까지 생긴 셈이다. 이게 지금 다시 반짝하고 있는 소위 박정희 향수의 본질이다. 이 논쟁(?), 애써 리바이벌 해야 이미 5년 전에 다 정리된 얘기다.

한때 박정희 신드롬에 고무되어 박정희 기념관 짓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신문을 보니, 국민들의 자발적 후원이 거의 없어 사업 자체가 취소될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이게 대중들의 평가다. 한 마디로 대중들이 입으로 박정희를 높이 띄우는 데에는 어떤 경제적, 혹은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을 떠나서 정작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문제가 되면, 그토록 박정희를 그리워하던 이들이 아주 냉랭한 태도로 돌아서는 것이다.

신화, 민중창작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던가? 자기 책에 그는 "Das Volk dichtet"(민중은 詩作을 한다)이라는 독일어 속담을 인용했다. 한 마디로 민중은 어떤 이야기라도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신화는 민중들의 집단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뜻일 게다. 실제로 수많은 영웅들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그 아득한 그리스의 민중들처럼, 이 땅의 민중들 중의 적어도 일부는 21세기에 접어든 이 시대에도 계속 영웅시를 지으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

'신화'를 의미하는 'mythos'는 원래 '제멋대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신화적 사고방식에 대항해 합리적 사고방식을 내세운 철학자들이 '신화'라는 말에 그런 부정적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어쨌든 신화는 구술문화에 속하고, 철학은 활자문화에 속한다. 이는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개의 상이한 틀 사이의 대립이다. 구술문화에 속하는 이들은 세계를 영웅들의 행위를 통해 이해하고, 활자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세계를 법칙들의 연관으로 설명하려 한다.

가령 폭풍우의 원인을 설명한다고 하자. 활자문화에 속한 이들은 이를 온도, 기압, 증발과 같은 비인격적 용어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반면 구술문화에 속한 이들은 폭풍우 속에서 어떤 인격적 힘을 찾으려 한다. 폭풍우, 그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진노다. 경제발전이나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구술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그것의 '범인'을 찾아 심판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경제발전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그것의 '은인'을 찾아 감사부터 하러든다.

은총과 믿음

박정희에 대한 논쟁은 그의 '공과 과'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실은 두 개의 사고방식 사이에 벌어지는 문화적 논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사회의 구술문화층과 활자문화층 사이의 공시적 충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좀 산다고 하는 서구의 그 어느 나라에도 자기들이 그만큼 먹고사는 공로를 특정 개인에게 돌리고 감사해대는 어법은 아예 존재하지를 않는다. 이 재미있는 정치적 의인법은 우리 사회에 아직 강하게 남은 어떤 시작(詩作)의 욕구, 즉 영웅서사시를 갖고 있었던 구술문화의 잔재다.

박정희 추종자들의 태도를 보면 재미있게도 우리 어머니의 그것을 닮았다. 독실한 신자이신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님의 은총으로 설명한다. 그 어떤 사건이 터지고, 그 어떤 사안이 걸려도, 어머니는 그 배후에서 결국 주님의 손길을 읽어내고야 만다. 내가 일해서 번 돈도 어머니의 머릿속에서는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설명된다. 운이 좋은 것은 주님의 은총이요, 운이 나쁜 것은 주님이 내리신 시험으로 간주된다. 이 반석 같은 믿음을 과연 어떤 논리로 깰 수 있을까? 또 그것을 깨어서 무엇하겠는가?

경상북도 구미에 있는 박정희 생가에 가면, 아직도 그 초상사진 앞에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노인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박정희 신드롬의 종교적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가끔 대학의 교수들 중에서도 논문식 글쓰기로 박정희 영웅시를 쓰는 해괴한 분들이 계신데, 그들은 모종의 범주 오류에 빠져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가진 전제자체가 '신화적'이라는 것을 의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신화적 내용과 과학적 형식은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주체성의 문제

남이야 마징가 제트를 구세주로 섬기든, 도널드 덕을 하나님으로 모시든, 간섭할 게 못 된다. 박정희 덕분에 먹고산다고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그 믿음을 갖고 살아가면 된다. 그 믿음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는 맘껏 누릴 일이다. 아직도 청학동에서 상투 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존재로써 이 사회를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만드는 것처럼, 21세기 넘도록 박정희를 추종하는 이들도 그 존재로써 인류학적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큰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

박정희는 그 추종자들에게 심리적 '아버지'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자신을 그의 '자녀'로 생각하는 것처럼, 박정희를 가부장으로 모신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자신의 그의 '자녀'로 생각한다. 발달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들은 아직 자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독자적으로 무슨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지 못한다. 자기들은 오직 '지도자'를 만나야 비로소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들의 의식의 바탕에 강하게 깔려 있다.

그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스스로 행동하지 못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서 자신들을 끌어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를 갖는 것이라고, 경제를 되살리는 유일한 길도 훌륭한 지도자를 갖는 것뿐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자기가 자신을 다스리는 자율적 정체, 즉 민주주의의 능력이 없다. 사실 이념적 방향만 다를 뿐, 박정희 추종자는 실은 김일성 추종자와 본바탕이 같다.

경제 문제

경제가 어렵다. 대충 풀릴 경기가 아닌 모양이다. 수출은 늘어도 내수는 살지 않고, 경제는 성장해도 고용은 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푸념을 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구술문화에 속한 이와 활자문화에 속한 이는 이 상황을 각각 다르게 이해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도 각각 다른 식으로 마련할 것이다. 구술문화에 속한 이는 경제문제에 대단히 인격적인 접근을 하고, 활자문화에 속한 이는 그 문제를 건조하게 비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가령 구술문화에 속한 이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것이다. 만약 노무현이 박정희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면, 애초에 경제가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박정희, 전두환 때만큼 경제가 고속으로 성장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이것으로 보아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역시 권위주의적 리더쉽을 다시 도입해야 마땅하고, 그 리더쉽 아래 온 국민을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총화 단결시켜야 한다. 그러면 아직도 고속성장이 가능하다. 박정희 추종자들은 아마 이런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반면 활자문화에 속한 이는 위기의 '범인'이 아니라 그것의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다. 경제에 위기가 왔다면, 그것은 경제적 소통의 어느 지점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소통의 시스템 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길을 찾을 것이다. 아울러 위기를 극복하게 해줄 힘도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끌어낼 것이다. 경제를 발전시켜온 것도, 앞으로 경제를 다시 회생시킬 것도 각각의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판단과 적절한 행동뿐이다.

"바람이 왜 부는가?" 어떤 이는 온도의 차이에 따른 기압의 차이, 그로 인한 공기의 이동 등등을 얘기할 것이다. 이런 과학적 설명의 건조함을 싫어하는 이들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풍백'이라는 가설을 더 선호할 것이다. 둘 다 맞는 얘기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로 공기가 이동하는 현상이자, 환웅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온 풍백이 일으키는 조화이기도 하다. 이 두 견해 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부처님과 예수님의 대결만큼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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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미학

2004/09/03 18:48
문신의 미학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조폭들의 전유물에서 관능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머리가 나빠서 이 얘기를 엄마한테 했는지 모르겠다. 3년 전에 문신을 했다. 뉴욕에 출장갔을 때였는데 당시 묵고 있는 호텔이 그리니치빌리지에 있었다. 한때 예술가들과 보헤미안, 밥 딜런 같은 포크 뮤지션들의 보금자리로 유명했던 동네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클럽보다 옷가게나 타투숍이 즐비한 상업 공간으로 쇠퇴해 있었다. 그때 혼자 타투숍에 들어갔다. 결코 술김이 아니었다. 맥주 한잔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샤워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문신 견본이 진열된 두꺼운 책자를 두권이나 봤지만 마음에 드는 문양이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도안을 그려 타투이스트(문신 시술자)에게 보여줬다. 이제는 아무도 외치지 않는 ‘사랑과 평화’. 내 스스로 하트 문양과 ‘Peace’라는 영문자를 연결해 소박한 도안을 그렸다.


△ 사진/ 김태은

세상의 모든 타투이스트들은 스스로를 예술가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화려한 문양을 원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니까 컬러나 음영을 넣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NO Color, No Shadow.”

잉크 묻은 바늘이 내 어깨죽지의 얇은 살갗을 뚫어주길 기다리며 문신 시술대 의자 위에 숫처녀처럼 앉아 있었다. 두렵고 떨렸다. 첫 번째 바늘이 내 살갗을 관통할 때 양팔의 솜털이 곧추섰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 얼얼한 열기가 번졌다. 난 바늘이 살갗을 뚫으며 내 어깨죽지에 ‘사랑과 평화’를 아로새길 때 느껴지는 내 몸의 감각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 감각이 바로 문신의 미학이며 관능이라 여겼다.

예전에는 문신이 조폭 아저씨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확실히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젤리나 졸리, 위노나 라이더, 주드 로, 조니 뎁,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나 베컴과 안정환 같은 축구 스타들의 공이 컸다. 주변에도 멋진 타투를 자랑하는 스타들이 부쩍 많아졌다. 공효진은 가리기도 쉽고 드러내기도 쉽다는 이유로 발등에 별 모양을 새겼고, 양 어깨죽지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넣은 모델 이유의 타투도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특히 얼마 전에 결혼한 이혜영은 엉덩이 부분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인디언 부족들의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새의 깃털을 새겼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나중에 레이저로 문신을 지우거나 다른 그림을 덧입혀 원래 글자를 은폐하려는 ‘헛짓’을 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헌사 또는 같은 할리우드 스타와의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문신을 했던 안젤리나 졸리나 조니 뎁 같은 스타가 그 대표적 예이다. 특히 ‘위노나 포에버’라고 새긴 조니 뎁이나 ‘섹시 새디’라고 새긴 주드 로의 문신이 제일 어리석게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끔 디자인되어 있는데, 동시에 그 사랑 안에 머물지 않게끔 디자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말인가?

나중에 눈꼽만큼이라도 후회할 것 같으면 차라리 헤나를 해라. 진짜 문신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에게 헤나는 쉽게 입고 벗는 양말짝 같은 패션 아이템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레이저로 지울 바에 차라리 헤나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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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우주' 구경하기

2004/09/03 18:46
남의 ‘우주’ 구경하기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제각기 취향 부린 그들의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들이 보인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얼마 전, <한겨레신문>의 김선주 논설위원으로부터 젊을 때는 ‘시간’을 즐기고 ‘공간’은 나이 들어 즐기는 것이라는 멋진 말을 들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10대 때부터 줄곧 공간에 집착해왔다. 10년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엄마 지갑에서 달랑 10만원을 훔쳐서(훔친 건지, 빌린 건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길음동 옥탑방으로 독립할 때부터 줄곧 그랬다. 세계 어디를 가도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걸핏하면 길을 잃었고, 때로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집들을 책으로 구경하며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 사진/ 바자 이보경

그런데 최근에 문화평론가 강영희 선생이 쓴 <한국인의 미의식>이라는 책을 보고 내가 왜 그토록 공간에 집착했는지 깨달았다. 그건 ‘악착같이 벌어서 내 집 장만하자’ 식의 어머니 세대의 구호와는 좀 다른 의미였다. 그 크기로 보나 방식으로 보나 나만의 이런저런 취향을 제 멋대로 부려놓기에 집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집은 책이며 음반, 책상, 꽃과 나무 등 내가 좋아하는 오브제들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놓인 나만의 우주였다. 그러니까 집은 나라는 인간의 가장 가시적이고 가장 거대한 ‘일부’였다.

내가 취재원 집에 놀러가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취향이나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그 사람이 사는 공간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보였다. 한대수 선생의 집에 가면 샤워할 수 있고 기타를 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히피 뮤지션의 일상이 보였고, 만화가 이우일 집에 가면 영화나 책 같은 자기 취미에 빠져 낙천적으로 사는 어린아이 같은 30대 남자가 보였다.

최근에 방문한 집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집이었다. 자동차로 진입할 수 없는 좁디좁은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낡은 슬레이트 집인데, 집 한복판에 오랫동안 가꾸지 않은 야생의 정원을 품고 있어서 홀로 사색하기 좋아 보였다. 그런데 씨네월드라는 견실한 영화사의 대표이기도 한 이준익 감독은 그 누추한 집의 사랑채를 전세 내어 혼자 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집도 사람도 눈곱만큼도 허세가 없었다. 어느 스태프가 이준익 감독을 두고 “촬영하는 내내 고환에 습진이 생길 정도로 생고생을 다 했는데도 걸핏하면 그 망할 놈의 감독이 자꾸 보고 싶어진다”고 했는데 그의 집도 그랬다. 누추하지만 편안하고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가고 싶어지는 집이었다. 마침 부암동이라는 동네 전체가 그런 고졸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나는 이사할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그 동네에 전셋집을 보러 다닐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

반면 최근에 나를 가장 숨막히게 한 집은 ‘대한민국 1% 아파트’로 불리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였다. 일단 초고층 건물이라 창문을 열 수 없다는 점이 ‘쥐약’이었다. 게다가 집약된 고도의 기술력으로 가장 편리하게 지어졌다는 최고의 홈네트워크 주거 공간이 내게는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거대한 기계장치처럼 보였다. 또 입주하기 전부터 완벽하게 세팅된 곳이라 거주자가 그곳에 자신의 취향을 부려놓을 만한 여지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타워팰리스에 못 살아서 난리일까? 그건 4억원에 분양받는 순간 곧 10억원이 되는 집이기 때문이다. 강영희 선생 말마따나 그 경제성이 공간에 대한 인간의 취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내 눈에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대한민국 상위 1%’가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 ‘닭공장’에 가는 화이트칼라처럼 좀 안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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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운동은 ‘애국’이었나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구한말 계몽주의자들이 추종한 일본인 마당발 오가키 다케오… 친일 환상 부추겼음에도 찬양받아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애국’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행동을 애국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각자가 생각하는 ‘나라’와 ‘사랑’의 내용이 각각 다르기에 애국을 주장하는 두 쪽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예컨대 ‘나라’ 개념의 내용을 이라크에 가서 제국의 총알받이로 죽을 서민층 젊은이를 중심으로 본다면 파병 반대가 애국이 되지만, 파병으로 인한 한-미 동맹(대미 예속)의 강화로 미국 투자가 활성화돼 주식값이 오르리라고 군침을 흘리는 투기꾼이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면 파병은 애국이 될 것이다.


△ 1907년 7월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이토 히로부미와 그 행렬이 궁궐에서 물러나고 있다. 이토의 중요한 협력자는 오가키와 같은 민간인 국수주의자들이었다.

애국항일 계몽지의 놀라운 이면

‘애국’이 주관적인 개념이기에 객관성을 내세우는 사학자들이 애국이라는 수식어를 쓰려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애국이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 것은 1900년대 후반의 이른바 ‘애국계몽운동’이다. 1980~90년대의 민중사학자들이 애국계몽운동 지도자 대다수가 통감부 권력자들과 조화롭게(?) 공존했던 부르주아·지주·관료였음을 입증했는데도, 오늘날까지도 국사교과서를 외워야 하는 학생들은 대한자강회-대한협회(1906년 4월~1910년 9월)나 서우-서북학회(1906년 10월~1910년 9월) 등의 계몽단체 간부들을 ‘애국적인 항일 인사’로 인식하고 있다. 당대의 생생한 증언이라 할 만한 계몽단체들의 출판물들을 읽으면 ‘자강’과 ‘문명’을 부르짖었던 지도자들에게 일제는 위협이면서도 동시에 모방이자 제휴의 대상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900년대 후반 계몽단체의 선구자라 할 만한 대한자강회의 <월보> 제1호(1906년 7월)를 들여다보자. 교과서에서 배웠던 박은식·장지연 등의 이름들이 맨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웬일인가. 머리말 격인 3편의 ‘서’(序)를 쓴 사람 중에는, 회장 윤치호(尹致昊), 대문장가 이기(李沂)와 나란히 일본 이름 하나가 보인다. 러시아에 붙었다가 중국에 붙었다가 하는 ‘독립정신이 없는’ 한국 당국자들을 비난하고, “한국이 군대를 키우지 않아도 된다. 문명 열강들이 한국을 정의로 대해줄 터이니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침략당할 일 없다. 일단 교육과 식산흥업에 힘쓰고 나중에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되찾자”는 취지의 머리말을 쓴 사람은 일본인 오가키 다케오(大垣丈夫·1861~1929)였다.

미국·영국을 위시한 열강의 적극적인 방조 아래서 일제 침략을 당해 ‘보호국’이 된 나라의 국민들에게 “안심하여 교육이나 힘쓰라”고 훈시하는 것은 그 당시 통감부의 대(對)지식인 선전 방침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이 서(序) 밑에다 이기는 “국가 정의에 대한 이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을 감동시키는 내용이며, 세상을 깨우치게 하는 큰 종(鍾)”이라는 찬양의 코멘트까지 달아놓았다. 이게 애국항일 계몽지 같은가?

<월보>를 계속 정독해보면 놀라움은 더해간다. 13호까지 발간됐다가 정간을 당한 <월보>에 23편(!)의 글을 기고한 오가키야말로 학회의 가장 근면한(?) 필자로 보인다. 기고의 내용은 계몽주의자들의 거의 모든 관심 분야를 아우른다. 예컨대 “40~50년 전에 일본도 한국처럼 미개한 나라였지만 서구 문명을 흡수하고 ‘국혼’(國魂)인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배양했기에 오늘처럼 발전됐으니 한국도 교육·식산흥업에 힘쓰고 한국혼(韓國魂·국민 정신)을 키우면 언젠가 독립을 되찾아 하나의 열강이 될 것이다. 단, 참다운 국민이 정부의 뜻을 받들고 국법을 준수할 뿐이지 독립운동과 같은 ‘무모한 짓’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대한자강회의 창립 때 오가키 연설의 요지였다(<월보>, 제1호).

오가키, 계몽운동의 실세로 통해

또 그는 인종적으로 일본과 같은 뿌리의 한국인들이 교육만 잘 시키면 중국 영향으로 말미암은 나태·사대주의를 극복하여 곧잘 문명개화로 중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통감부하 반(半)식민지의 ‘진보’를 낙관했으며(‘외국인의 오해’-<월보>, 제2호), 대한자강회를 중심으로 잘 뭉쳐서 교육에 열중하면 아예 백인종까지도 능가하여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리라고 내다봤다(‘교육의 효과’-<월보>, 제1호). 인종적인 형제 국가인 일본에 번거로운 외교를 편하게 맡겨놓은 채 실력 양성을 잘하여 국민 정신, 즉 국가에 대한 충성만 잘 키우면 한국이 곧 개명진보의 역에 도착하겠다…(‘한국 목하(目下)의 급무’-<월보>, 제9호).

이것이 대한자강회 잡지에 우연히 실리게 된 일개 일본인의 망설뿐이었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한 동맹론’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찬사까지 얻어(‘論大垣氏同盟說’-1906년 2월25일치 논설) 장지연과 같은 당대의 대표적 문사와 개인적으로 가까웠던, 그리고 <황성신문> 등의 매체를 연설과 기사로 자주 장식했던 오가키가 단순히 대한자강회와 무관한 일개의 궤변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를 고문으로 둔 대한자강회의 상당수 한국인 논객들이 ‘황인종의 연합’과 집단주의적인 ‘국가 정신’, 그리고 ‘선 실력양성 후 독립’ 등을 뼈대로 한 그의 논지를 그대로 따르기도 했으며, ‘이름을 밝혀 이득을 낚으려는’(황현, <매천야록>, 제5권) 계몽주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가 마당발이자 실세로 통하기도 했다. 통상 ‘항일 애국운동가’로 생각되는 계몽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 일제의 속뜻을 대표했던 이 ‘호걸’(장지연의 오가키 평)을 이렇게 환대하게 됐는가?

오가키의 전기가 일본 국수주의자들인 ‘흑룡회’(黑龍會)가 1936년에 편찬한 <동아선각지사기전>(東亞先覺志士記傳-‘선각지사’는 침략의 주역을 뜻한다)에 실린 것만 봐도 그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국수주의 운동 활동가로서 전형적인 자금 조달 방법인 기업인 공갈협박의 죄로 일본에서 1902년에 형까지 받은 오가키는 원래 지역 정치인이자 ‘국가 원기 회복’을 주장하는 한 국가주의적 신문의 사장이었다.

본인의 말대로라면 1906년 2월에 이루어진 그의 도한(渡韓) 동기는 “국은(國恩)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한국인들의 지도계발을 맡아 제국의 정책에 보탬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백성이 돼가는 한국인에 대한 그의 ‘지도계발’의 전술은 양면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적어도 겉으로- 또 다른 ‘대륙 낭인’(재야 국수주의자)들의 ‘합방론’에 반대하여 이미 허울뿐인 한국의 주권이 명목상 유지돼 일본과 ‘동맹’ 관계가 돼야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성공적으로 차별화하고 한국의 계몽주의자들과의 교분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물론 그가 이야기한 ‘동맹’이란 한국의 대일 종속에 대한 기만적 수사에 불과했다. 그는 초기에 아예 <대한매일신보>에 광고를 내 일본인에게서 구타·임금체불을 당할 경우 자신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억울함을 다 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등(1906년 3월13일 잡보란) ‘착한 일본 해결사’의 노릇을 맡은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미 유행한 ‘황인종 연합론’의 인종주의적인 친일적 환상들을 더 부추기고 국채보상운동에 훼방을 놓고 대한자강회의 강제 해산과 같은 일제의 폭거에 대한 분노를 무마하는 데 공을 들였다. 1907년 8월에 대한자강회가 해산당하자 오가키가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계몽주의자를 결집할 새 단체, 즉 대한협회의 설립허가를 따주고 그 활동을 배후에서 조종했다.

식민지 거물로 거듭난 극우 공갈꾼


△ 오가키와 가장 친했던 계몽주의자 중의 한 사람인 대한협회 부회장 오세창(왼쪽). 위암 장지연(오른쪽)은 오가키를 “천하의 호걸”로 평가하고 그의 ‘황인종 연합론’에 동조했다.

이완용과 결탁한 오가키는 1910년에 ‘합방의 공로’를 독차지하려던 일진회의 한쪽과 한때 공방을 벌여 일본 당국의 제지까지 당한 바 있었지만 결국 식민지의 ‘개명진보’를 찬양하면서 죽을 때까지 서울에서 눌러살게 됐다. 일본의 한 극우적 공갈꾼이 명예직을 두루 거친 식민지 ‘거물’로 거듭났다.

1900년대 말에 오가키에 대해서 ‘사기꾼’ ‘고등 첩자’ 등의 소문이 나돌았음에도 그가 대한자강회의 고문이 되어 윤효정(尹孝定), 오세창(吳世昌), 권동진(權東鎭) 등의 주요 정객들을 친구로 사귀고 계몽담론의 생산자로 기능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가? 현실적으로는 계몽주의자 집단들에게 오가키처럼 그들과 일제 당국 사이의 매개체가 될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도 있었지만, 더 근원적인 이유는 초기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모순적인 대일관(對日觀)에 있었다. 일제에 국권이 넘어가는 현실을 안타깝고 분하게 여기는 의미에서 그들이 애국자였지만, 그들이 대표하는 신흥지배계급(개명관료, 개항장의 부르주아, 쌀 수출의 주역인 지주 등)이 도일 유학과 대일 무역을 부·문화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여기고 일본의 국가주의적 규율을 흠모했던 만큼 그들에게도 일본은 ‘위협’이기에 앞서 ‘인종적 형제’이자 모델이었다.

오가키가 주장한 인종주의적 ‘일한 동맹론’이나 ‘국혼(國魂) 배양’ 식의 집단주의·국가주의, 그리고 반(半)식민지적 현실의 인정과 ‘실력양성론’은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상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이 벌인 운동을, 과연 ‘애국’으로 지칭해야 되는가? 만약 ‘나라’를 침략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으로 해석한다면 침략자들과 ‘인종적 동맹’을 모색했던 운동에 ‘애국’과 같은 수식어를 붙일 여지는 없어지고 만다. 외세의존적인 초기 부르주아의 메이지 일본식의 계몽이 곧바로 식민지 엘리트의 ‘소신친일’의 논리로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일본 극우파를 닮은 수구 기득권층의 군사주의적·국가주의적 논리로 계속 이어져가는 것은 우리가 바로 봐야 할 현실이다.

[오가키 관련 연구]
- 이케가와 히데가쓰(池川英勝), ‘大垣丈夫について-彼の前半期’, -<朝鮮學報>, 제117호, 1985.
- 다구치 요조(田口容三), ‘大韓自强會-大韓協會の日本人顧問に對する 評價をめぐって’, - <朝鮮史硏究會會報>, 제66호, 1982.
- 정관, <한말 계몽 운동 단체 연구>, 효성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2
- 최미숙, <大垣丈夫 연구-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5.
- 최덕수, ‘대한제국기 일본인의 조선론 연구’, -<宋甲鎬 교수 정년퇴임기념 논문집>,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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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선수촌, 혹은 어덜트 디즈니랜드


최근 미국의 듀렉스 社가 13만개의 콘돔을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에서 무료 배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수촌에는 대회 기간 동안 10,000여명의 선수와 5,500여명의 코치 및 임원들이 머물 것이므로, 남녀 구분 없이 배포한다면 개인 당 6개 정도의 콘돔이 돌아간다. 그 콘돔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

이정화

(편집자 주) 최근 미국의 듀렉스 社가 13만개의 콘돔을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에서 무료 배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수촌에는 대회 기간 동안 10,000여명의 선수와 5,500여명의 코치 및 임원들이 머물 것이므로, 남녀 구분 없이 배포한다면 개인 당 6개 정도의 콘돔이 돌아간다. 그 콘돔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 짐작이야 할 수 있지만 정확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의 일간지 '더 스코츠맨 (The Scotsman)'이 올림픽 스타들의 '체험'을 상세히 보도했는데 기사를 발췌 번역 한다.


현대 올림픽의 비밀은 필드가 아닌 선수촌에 있다. 최근 선수촌 내 비기(?)의 트레이닝이 외부에 알려져 화제다. 선수촌에 입성한 선수들의 '마지막 컨디션 조절'은 수영도, 조깅도, 페달링도 아니다. 바로 섹스다.

열전에 들어선 아테네 올림픽의 올림피아드 선수촌. 최근 US 올림픽 팀 소속인 한 여선수가 평소 출입이 금지된 선수촌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타국 팀 선수들과 섹스파티를 벌인 것이 화제가 되었다. 놀라운 건, 정작 선수촌 내부에서는 이를 '일상다반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 전 선수촌 생활은 고된 트레이닝에 시달려 왔던 혈기왕성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2주간의 초호화판 휴가이자 수천이 넘는 탄탄한 육체들의 향연이죠."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수영 2관왕인 넬슨 디벨(美)의 말이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선수촌에 입성한 각국의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한 마디로 '성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에 가깝다. 24시간 방영되는 스포츠 TV, 언제고 무료로 양껏 즐길 수 있는 최고급의 세계 진미, 드라이브인 콘서트(모든 선수들에게 BMW 한대 씩 대여된다), 수영장, 극장, 볼링장, 디스코 텍 등등이 갖추어진 올림픽 선수촌은 지구 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VIP 전용 휴양지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곳을 누비는 건 라이벌, 코치, 트레이너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잘 빠진 선남선녀들의 육체다.

"코치의 엄격한 통제 하에 고된 운동 스케줄에 시달리던 선수들에게 갑자기, 2주간의 초호화 무상 휴가가 주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건이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하죠." 아틀란타 올림픽 투포환 은메달 수상자인 존 가디나의 말이다. 그들은 200여개국에서 온 혈기왕성한 관광객(?)에 가깝다.

선수촌 입성 후 변화하는 트레이닝 방법도 선수들의 테스토스테론 지수를 높이는데 일조한다. 선수들은 보통 때 정해진 시간에 수영이나 자전거 페달링 등의 트레이닝으로 하루 9천 칼로리를 소모한다. 그러나 선수촌 입성 후,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가 있기 며칠 전부터 트레이닝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간다(이를 '테이퍼링 taper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칼로리 섭취량은 줄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선수촌 선수들은 경기가 가까워올 수록 '놀 시간은 많은데, 원기가 끓어 넘치는' 상황에 처한다. 이른바 클라이맥스에 달한 신체조건에, 건장한 육체들이 종횡무진하는 선수촌만의 풍경이 이들의 성욕지수를 높이게 되는 건 자명하다.

"글리코겐으로 충만한 만 여명의 사람들이 종횡무진하고 있는 걸 보면, 그들 몸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아요." 시드니 올림픽 배영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BJ 베드포드의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선수촌에 비치된 자판기 중 빈번히 품절표시등이 켜지는 건 소프트 드링크가 아닌 콘돔 자판기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의 경우 매 두 시간마다 품절이 되었다. 시드니 올림픽 때에도 선수촌 운영진 측이 애초 비치한 7만 개의 콘돔이 완전히 동이 나는 바람에 운영진은 황급히 2만개의 콘돔을 추가주문해야 했다. 이렇게 추가로 비치한 콘돔도 경기 스케줄이 종료되는 3일 전에 다 동이나고 말았다. 쿠바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성한 날 처음으로 품절표시등이 켜졌다.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올림픽은 더 가관이었다. 금욕주의로 유명한 몰몬교도들이 절대다수인 솔트레이크 시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 2십 5만 개의 콘돔이 선수촌에 공수된 것이다.

시드니 올림픽 때 투창 경기에 참여한 캐나다 선수 브리오 그리어는 "여기저기서 섹스판이 벌어진다. 몸매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테스토스테론 지수도 올라가기 마련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파인 스키 챔피언인 캐리 셰인버그는 선수촌의 섹스파티가 난잡하다는 설에 반대한다. "하지만 난잡한 섹스파티는 절대 아니예요. 우린 좀더 왕성하게 사교적일 뿐이죠. 자유연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랄까."

인터넷 시대와 함께 선수촌 내의 섹스파티는 보다 가속화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알파인 스키 레이서인 마르코 부첼은 인터넷으로 선수촌에서의 멋진 원나잇스탠드를 경험했다. "인터넷 덕에 선수촌 내의 어떤 선수들과도 즉각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선수들이 선수촌에 도착하면 선수들의 프로필이 기재된 리스트가 나와요. 모든 선수들이 그걸로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죠. 저 역시 그리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온 '아름다운' 스키 레이서들과 접촉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스 스키 레이서에 한 눈에 반해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서투른 영어였죠. 그런데 곧장 답장이 오더군요. '영어가 그다지 능숙하진 않군요. 하지만 만나보고 싶군요.'라고요." 그렇게 접선(?)한 두 선수들은 잊지못할 아름다운 섹스를 나눴다고. "아름다운 국제적 사건(!)이었죠."

선수촌에 오는 선수들은 두 부류다. 금메달을 목표로 오는 성실파, 아니면 일생일대의 호화 리조트에서 2주간의 무상휴식을 노리는 쾌락파 . 성실파에게 섹스는 금기이다. 특히, 메달이 걸린 경기 전날이라면 봐서도, 해서도 안될 게 섹스다.

배영 선수 베드포드는 "내 생활 신조 중 하나가 '회사 앞 부둣가에서는 낚시하지 마라'예요. 세상은 너무 좁아요. 다른 나라에서 온 매력적인 수영 선수와 눈이 맞았다고 해도 원나잇 스탠드와 메달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지를 생각하면 고민할 이유가 없죠."라며 경기 전 섹스는 선수의 커리어를 망치는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경기 전 섹스가 선수의 컨디션과 경기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경기 전 섹스가 메달 획득의 지름길이라는 이색 연구보고가 발표되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기 전, 예루살렘의 섹스 클리닉 담당의들은 이스라엘 팀 여자 선수들에게 경기 전 섹스를 권장했다. 소속 담당의 중 한 명은 "여선수들의 경우 오르가즘을 느끼고 난 후 훨씬 더 향상된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높이뛰기 선수와 주자들에게 섹스는 좋은 에너자이저입니다."라고 말한다.

독일팀 선수 담당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기 전 섹스에 여자, 남자 따로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남녀 선수 모두에게 섹스를 권장하고 있다. 올해 러시아의 한 심리학자는 독일 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올림픽에서 섹스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이는 성차와 상관없다. 섹스를 많이 할 수록 메달을 딸 확률도 더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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